우리나라 방방곡곡/경상도

합천 가야산 소리길 걷기, 해인사에서 만난 팔만대장경 (홍류동 탐방센터 ~ 길상암 ~ 해인사 원점 복귀)

WOONA 2024. 2. 25. 10:36
728x90
반응형

날씨 좋은 날 그냥 걷고 싶을 때 우리가 자주 찾는 길이 있다. 바로 가야산 소리길이다. 대장경 테마파크에서 시작해 해인사까지 이어지는 6km에 다다르는 긴 길인데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살랑살랑 편하게 걷기 좋아 종종 찾고 있다.


대장경 테마파크에서 출발하면 해인사까지 왕복 거리가 너무 길어(12km 정도) 완주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이번에는 홍류동 탐방 지원센터 부근에 주차를 하고 소리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겨울날 찾은 소리길, 계곡 위에는 소복하게 하얀 눈이 쌓였고 꽁꽁 언 얼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가슴 속이 상쾌해지는 차가운 공기와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 정말 걷기 좋은 길이다!


계곡물을 따라 걷다가 다리를 건너고 푸릇푸릇한 소나무 아래를 걸었다. 그러다 보면 '농산정'이라는 정자 만나게 된다.


홍류동 계곡은 신라 말 유학자 최치원이 수도하던 곳이라 한다. 계곡 바위에 새겨진 최치원의 시를 기념하며 만들어진 정자라는데, 언제 만들어진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의 정자는 1930년대 보수한 뒤의 모습이다.​

여러번 보아서 익숙해진 정자를 지나서 딱딱하게 굳은 겨울 길을 걸어갔다.


홍류동 계곡은 가을 단풍이 붉어서 흐르는 계곡물도 붉게 보인다 하여 '홍류동'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지난 가을날에 이곳을 찾았을 때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있었다. 겨울날 찾은 계곡은 새하얀 눈과 얼음이 뒤섞여 있어서 붉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아름다웠다.

소리길에서 우리 곰돌이들 사진을 찍어주었다
계곡가에서 만난 작고 검은새


길을 걷다가 계곡 근처 나무 테이블이 있어서 잠시 앉았다. 베낭에 넣어온 김치 사발면이랑 드립커피백을 꺼냈다. 사발면에 물을 부어 두고 기다리는 동안 커피를 내렸다. 커피 향기와 사발면 냄새가 퍼지는 동안 우린 군침을 흘리며 라면이 익기를 기다렸다. 흐르는 물소리가 듣기 참 좋았다. 후루룩 따끈한 라면을 먹고 커피를 홀짝이는데 행복감이 밀려왔다.

드립커피와 김치 사발면


살랑살랑 걸어가고 있는데 어라, 멀리 노란 띠가 둘러진 모습을 보게 되었다. '우회 탐방로'라고 적힌 안내판이 붙어 있었는데 왜 이리로 가야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길이 무너졌나? 돌이 떨어졌나? 괜히 노란 띠를 제끼고 갔다가 큰일이 날지도 모르니 시키는대로 우회 탐방로를 따라 걸어갔다.

(나중에 길상암에 이르러서 보니 낙석 때문에 우회 탐방로가 생긴 것이었다.)


근데 우회 탐방로라고 표시된 구역을 바라보니, 엄청난 돌 무더기들을 딛고 높은 곳에 올라가야만 했다. 이게 길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돌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던 길이었다. 그래도 돌 위에 올라서 걷다 보면 뭔가 길처럼 보이는(?) 느낌이 나는 곳으로 발을 딛고 자연스레 걷게 되었다.


그리고 그 우회 탐방로의 끝에는 '길상암'이 있었다.

가야산 소리길을 여러번 와보았는데 길상암은 스쳐 지나가기만 했지 이렇게 와보기는 처음이었다. 해인사까지 이르는 가야산 소리길을 걸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길상암에서 멍하니 하늘과 산과 나무를 바라보았던 때이다. 정말 좋았던 곳이었는데 우회 탐방로 덕분에 오게 되었으니, 굴러 떨어진 돌에게 감사를 해야할까나?

길상암
계단 끝에 오르면 보이던 오래되어 보이던 종
계단 꼭대기에 올라와 난간에 기대에 한참 풍경을 바라 보았다
아름다웠던 나무 한 그루


고요한 산 속에서 순간이 멈춰버린 듯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으니, 세상 번뇌가 다 사라지고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붙잡고 있던 많은 고민들이 얼마나 부질없게 느껴지던지.


한참동안 난간에 기대어 서 있다가 계단 아래로 내려왔다. 길상암의 대장전이라는 곳에 '윤장대'라는 것이 있었는데 윤장대를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안내판에 그리 적혀 있었다. 궁금해서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나무로 만든 뱅뱅뱅 돌아가는 구조물이었는데, 구조물 속에 경전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구조물의 외관은 화려한 장식들로 꾸며져 있었는데 나무로 조각한 모습이었다.  새나 소나무, 매화, 모란 등 다양한 이미지들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아주 멋있는 예술 작품 같았다.


윤장대를 슬슬슬 돌려보며 아름다운 조각들을 구경했다. 공덕이 쌓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윤장대를 돌리며 멋진 조각 작품을 보아서 좋은 시간이었다.


길상암 아래로 내려와 소리길을 이어서 가려고 했는데, 드디어 우회로에 대한 정체가 밝혀였다. 안내 현수막에는 낙석현황이라는 문구 위에 큰 돌덩어리가 떨어진 길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노란띠를 무시하고 우회로 아닌 길로 갔으면 큰일날 뻔 했다.


길상암을 지나서 걷는 길, 해가 저물어가는지 계곡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해인사까지 아직 길이 더 남았는데, 해가 저물면 안되니 서둘러서 걸어갔다. 돌아올 길도 생각했어야해서 발걸음이 바빠졌다.


잘 깔린 나무 데크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아름다운 폭포와 웅덩이를 만나게 된다. 지난 가을날에 찾았을 때는 단풍 천국이었는데 지금은 새하얀 얼음들이 가득 껴서 색다른 모습이었다.

 


웅덩이 가장자리는 꽝꽝 얼어 있었고 바위 위에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흐르던 폭포는 그대로 얼어 버려서 고드름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삐죽삐죽 솟아 나와 얼어붙은 고드름들이 어찌나 날카로워 보이던지, 가까이 다가가면 찔릴 것 같았다.

4주유소와 카페를 지나 1.3km를 더 걸어야했다


해인사 입구에서 일기장에 스템프도 찍고 기념 사진도 찍고 안으로 들어갔다. 해인사 방문은 이번이 두번째였다. 소리길은 여러번 찾았어도 해인사까지 안오고 그냥 버스타고 돌아가기도 했었으니,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대적광전 올라가기 전에 보이던 석등과 석탑. 색색깔 연등이 하늘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흔들거리고, 그 아래 연등 그림자들이 일렁거리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올 때마다 이 석탑과 연등의 모습에 반하는 것 같다.

대적광전 앞에 있는 이 탑은 통일신라 말기에 만들어진 탑으로 추정하며, '정중탑'이라 불린다고 한다.


1985년 11월 14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54호로 지정되었다.

전체적으로 신라 석탑의 기본 형식이 나타나 있고 조각 수법 등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높이 6m로 큰 탑에 속하며,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3층기단(基壇) 위에 3층 탑신(塔身)이 있고 정상에 상륜부(相輪部)가 있는데, 원래는 2층 기단이었으나 1926년 중수할 때 1층이 더해졌다.

기단부는 상층 기단 양쪽에 우주(隅柱)와 장주를 하나씩 모각했으며, 탑신에는 우주 이외의 별다른 조각이 없다.

옥개받침은 모두 5단으로 되어 있고, 옥개석의 전각에는 후대에 설치한 풍경(風磬)이 달려 있다. 처마 끝의 반전은 심하지 않으며 탑의 상륜부에는 노반, 앙화, 구륜(九輪), 보주(寶珠)가 남아 있다. 1926년 6월 중수할 때 상층 기단의 석함(石函) 속에서 9개의 작은 불상이 발견되었는데, 중수가 끝난 뒤 다시 석탑 안에 봉안했다. 석탑 앞에 놓여 있던 안상과 연화무늬가 새겨진 직사각형의 봉로석(奉爐石)은 석등(경남유형문화재 255) 앞으로 옮겨놓았다.

-해인사 홈페이지-

 


신발을 벗고 대적광전 안에 들어가서 불상들을 둘러보고, 천장과 벽과 기둥을 살펴 보았다. 절에 오면 이렇게 오래된 나무들을 만져보고 빛 바랜 장식이나 그림들을 바라보면 좋더라. 대적광전 내부는 실내 촬영 금지라서 아쉽게도 사진으로는 담지 못하였고 눈으로만 담았다.


한사원의 큰 법당에는 부처상이나 보살상이 모셔져 있는데 큰 법당의 이름은 그 안에 모신 주불에 따라 결정된다. 그 주불이 바로 그 사원의 정신적인 지주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해인사는 화엄경을 중심 사상으로 하여 창건되었으므로, 거의 모든 절이 흔히 모시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 대신에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그래서 법당의 이름도 대웅전이 아니라 대적광전이다. '비로자나'는 산스크리트어인 바이로차나 Vairocana에서 온 말로서, 영원한 법 곧 진리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대적광전은 부처님의 진리의 몸이 화엄경을 언제나 두루 설하는 대적광토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해인사 홈페이지-

 


대적광전을 나오니 내리쬐는 햇살이 참 따스하게 느껴졌다. 겨울답지 않은 그런 따뜻함이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서 사람들의 소원지가 흔들렸다. 색색깔 등들과 사람들의 소원들이 나부끼는 모습을 보며 다들 원하는 바가 다 이루어졌으면 하고 생각했다.


해인사에 왔으면 꼭 보아야 할 대장경을 보러 장경판전에 들렀다. 저번에 왔을 때는 우리가 늦은 시간에 찾아서인지 문디 굳게 닫혀 있어서 들어가보질 못했는데, 이번에는 안에 들어가 볼 수 있어서 대장경을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이 건물은 대장경을 보관하는 데에 절대적인 요건인 습도와 통풍이 자연적으로 조절되도록 지어졌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장경각의 터는 본디 그 토질 자체도 좋거니와, 그 땅에다 숯과 횟가루와 찰흙을 넣음으로써, 여름철의 장마기와 같이 습기가 많을 때에는 습기를 빨아들이고, 또 건조기에는 습기를 내보내곤 하여서 습도가 자연적으로 조절되게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그 기능을 더 원활하게 하려고, 판전의 창문도 격자창 모양으로 하였으며, 수다라전의 창은 아랫창이 윗창보다 세배로 크게 하였고 법보전의 창은 그 반대 꼴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아주 과학적인 통풍 방법으로서, 오히려 건축 방식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따라가기 어려운 우리 선조들의 슬기를 잘 보여 준다.

-해인사 홈페이지-


어릴 때부터 어디선가 주워 듣거나 정규 교육 과정 속에서 배웠거나, 어쨌든 '팔만대장경'은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그런 문화재일 것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점에서 먼저 놀랍다. 사계절이 뚜렷해서 날씨가 변화무쌍한 우리나라에서 이 오랜 세월을 버틴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무 격자마다 담겨 있는 대장경. 우리가 출입할 수 없던 공간 안으로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나무 기둥마다 긴 그림자가 졌다. 그 안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대장경들이 지내온 세월에 빗대면 우리의 시간이 멈춰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자연과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가, 마지막에는 뭔가 마음이 엄숙해져서 돌아갔던 것 같다. 다음번에 해인사를 찾게 된다면, 대장경은 또 그 자리에서 그대로 우릴 맞아주겠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