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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만난 클로드 모네의 수련작품들
    나홀로 유럽 여행기/프랑스(France) 2022. 5. 3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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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날 지쳐서 잠에 빠져든 나는 알람도 없이 눈을 번쩍 떴다. 한인 민박집에서 준 아침 메뉴는 카레였다. 야무지게 밥을 먹고 숙소에 같이 머물던 언니들과 수다를 떨며 차를 마시다가 10시 즈음에서야 밖으로 나왔다. 오늘의 행선지는 바로 오랑주리 미술관.

    지하철을 타고 콩코르드 광장 근처에서 내려 미술관으로 걸어갔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이 전시된 곳으로 유명하다. 수련 작품들을 직접 보기 위해 오랑주리 미술관에 들르고 싶었다.

    프랑스 남부를 돌아보기 전 파리를 여행하다가 파리 근교인 지베르니에 다녀왔었다. 그곳에는 모네가 여생을 보내던 집과 수련 연작의 배경이 된 모네의 정원이 있다. 정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왔으니 정원을 보고 느끼며 모네가 그린 그림들을 꼭 보고 싶었다. 그럼 나의 파리 여행이 더 감동적으로 남을 것 같았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어주는 분이 아주 유쾌했다. 젊은 남자 직원이었는데 영어가 유창하고 친절해서 막간의 대화가 즐거웠다. 갑자기 나이를 물어보길래 말했더니만 할인이 가능하다고해서 여권을 보여주고 표를 더 싸게 끊을 수 있었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는 시작부터 예감이 좋았다.

    전시실에 들어가니 우와, 나는 절로 입이 딱 벌어지고야 말았다. 새하얀 전시실 사방에 가득한 수련 작품들. 사진으로만 보다가 이렇게 실물로 보게 되니 형연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수련 작품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그래서 그 크기에 일단 먼저 압도 되어서 왠지 모르게 난 숙연해졌다.

     
     

    그림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붓의 터치가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유화 물감의 꾸덕거리는 질감이 손에 느껴지는 듯 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저 휙휙 무심하게 칠한 것 같이 보였다. 그런데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 멀리서 그림을 다시 본다. 그러면 모든 붓자국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이른 새벽 은은한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물의 정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연꽃은 잎과 꽃이 물 위로 쭉 늘어져서 자라는 반면에 수련은 잎과 꽃이 물에 동동 떠있는 것 같은 모양이다. 수련은 꽃도 이쁘지만 물 위에 동동 떠있는 모양도 참 이쁘다. 수련의 꽃은 한낮이 되면 화르륵 향기를 내뿜으며 활짝 피어나고 밤이 되면 잠에 빠지는 듯 제몸을 오므린다.

     

    그의 그림을 바라보니 스르륵 얼마 전 다녀왔던 지베르니의 물의 정원이 떠올랐다. 모네는 그의 정원을 수련들로 가득 채웠다. 내가 보았던 물의 정원은 온통 연둣빛이었다. 푸르른 이파리를 대롱대롱 매단 버드나무들이 물가에 닿을 듯 말 듯 했고, 물 위에는 동글동글한 수련 잎들이 가득했다. 연못 안에는 파란 하늘이 담겨 있어서 바다처럼 푸르렀고, 버드나무 이파리들이 둥실 물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에 비친 아름다운 정원의 반영이 머릿 속에 살며시 떠올랐다.

     

    지베르니에 갔었을 때 거닐었던 수련과 버드나무 우거진 물의 정원

     

    미술관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한참동안 수련 작품들을 바라보았다. 새벽 아침 동이 틀 무렵 푸르스름한 시간부터 해질 무렵 하늘이 붉게 물드는 시간까지, 그림들에는 흘러가는 다양한 시간이 담겨 있었다.

    연못 위로 어지러이 흩어진 붓자국들을 보면 버드나무 잎사귀들이 바람이 흔들리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못 안에 비치는 수풀들을 이렇게 표현했구나. 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지는 듯 했다. 얼룩덜룩한 그림자들을 보면 일렁이는 햇살도 느껴졌다. 전시관 안인데도 내 몸과 마음은 지베르니에 와있는 것처럼 항홀했다.

     

    햇살을 잔뜩 머금은 구름들이 연못 위를 둥둥 떠다녔다. 커다란 버드나무는 가지를 연못 위에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동동 뜬 수련의 잎사귀들,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도 보였다.

     
     

    어둡지만 빛을 머금은 고요한 연못의 모습은 해가 떠오르기 전 새벽일까 아니면 해가 저물 무렵일까? 내가 느끼기에는 해가 넘어간 뒤 밤으로 흘러가는 때인 것 같다.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오랑주리 미술관에는 모네의 수련 연작 말고도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도 많이 전시되고 있었다. 르누아르, 세잔, 고갱, 마티스,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등.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인상적인 작품들은 수련을 그린 모네의 그림들이었다. 거대한 수련 작품을 마주한 첫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미술관 샵에서 모네의 수련이 그려진 엽서들과 수련 연작이 담긴 모네의 화집을 하나 사들고 미술관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표를 사려는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일찍일찍 다니길 참 잘했다, 나 스스로를 칭찬하며 이제 어디로가지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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