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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끼리 순창 단풍놀이 (순창 피치마을, 칠보식당, 금산객잔)
    우리나라 방방곡곡/전라도 2021. 9. 23.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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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내장산이었다. 내장산 단풍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들어서 주말에 큰맘먹고 다녀오려고 했다. 내장산 근처에 구할 수 있는 숙소가 없었던지라 우리는 담양에서 하루 자고 내장산으로 향했다.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가다가 갓길에 차들이 엄청 세워져있는 것을 보고 얼떨결에 우리도 따라 세웠다.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차에서 내려 아찔한 바위 위에 서서 바라본 전망이 아주 근사한 곳이었다. 울긋불긋 물든 아름다운 산세가 한눈에 보였다.




    그러나 내장산으로 가는 길, 아직 단풍터널 쪽까지 한참 남았는데 차가 밀려서 도저히 앞으로 갈 수 없었다. 우리가 내장산을 너무 얕보았다. 쉽게 갈 수 있는 산이 아니었다. 차는 앞으로 전진하는 시간보다 가만히 멈춰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이렇게 몇시간 걸려서 주차장으로 가도 차를 세울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는 내장산을 포기하고 다른 산에 가보기로 결심했다. 아까 잠깐 멈춰서서 얼핏 내장산을 보았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고 내년을 기약하기로 했다. ​

    길게 선 줄에서 빠져나와 반대방향으로 달렸다. 어디를 갈까 지도를 뒤적이다가 '강천산'이 눈에 띄어 그리로 향했다. 그런데 겨우 도착한 강천산도 마찬가지였다. 주차장이 보이는 곳까지는 어찌저찌 왔으나 차를 세우려면 몇시간 더 기다려야할 분위기였다. 도로 가장자리는 차들로 꽉찼고 북적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곳에서 단풍을 봐도 인파 때문에 제대로 즐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또 다시 차를 돌렸다. 이번에는 진짜 목적지가 없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일단 아무 길로 내달렸다.​

    달리다가 보니 '피치마을'이라는 곳에 당도하게 되었다. 마을 이름이 피치라니, 복숭아를 말하는 것인지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알길은 없었으나 신기한 이름에 마음이 동해서 들어갔다. 그러다가 닿게된 어느 호수 같이 보이던 곳, 우리는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돗자리와 책들을 꺼내들고 호숫가 가까이 다가갔다. 눈 앞에 보이는 조그만 산들, 햇빛을 머금고 반짝이는 잔물결, 살랑거리는 바람, 모든 것들이 다 좋았다.



    더 오래오래 여기에 있고 싶었으나 배가 고파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했다. 근처에 식당이 하나도 없어서 순창 시내 쪽으로 향했다. 지도를 뒤적이다가 어느 돼지김치찌개 사진에 혹해 '칠보식당'이라는 곳을 찾아갔다. 마침 주인 아주머니께서 들어오시던 참이었다. 아주머니는 약간은 퉁명스런 목소리로 우리보고 왜 여기왔냐고 물으셨다. 김치찌개 먹으러 왔다고 하니 들어와 하시면서 문을 열어 주셨다.




    아주머니는 젊은 사람을이 이곳에 무슨일이냐고, 어찌 이 식당에 찾아왔냐고 물으셨다. 담양과 순창 여행 중에 어쩌다 보니 오게 되었다고, 그런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우리 옆 테이블에도 손님이 차고 약간 소란스러워질 즈음에 어떤 아저씨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셨다.​

    아저씨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누나라 부르며 말을 붙였다. 아주머니는 아저씨가 몇마디 할 때마다 욕을 한바가지 퍼부으셨다. 둘은 어릴적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 것 같았는데 어쩌다보니 우리 테이블에 모두 앉아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저씨는 멀리 전주에서 고향을 찾아온 곳이라 하였다. 이곳에 오는 이유는 마음이 편해서, 욕을 먹어도 마음이 편해서라고. 아주머니는 아저씨 전용 안주라며 어디선가 생고구마를 꺼내 주셨다. 그리고는 낙지를 두마리 잡아 우리가 먹던 김치찌개에 넣어주셨다.



    아주머니도 뽕주를 먹고 나도 뽕주를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굴곡진 삶과 알 수 없는 인연. 우연찮게 이곳에 와서 나와는 정말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삶은 소설같이 느껴졌다. 내가 책에서 읽던 그런 이야기들, 나는 참 좁은 세상에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를 드리고 나가는 길, 주인 아주머니와 손을 맞잡았는데 아주머니의 눈빛이 흔들렸다. 뭔가 눈물을 쏟을 것만 같은 눈이었는데, 다시는 못 볼 곳만 같은 스쳐가는 인연의 마지막이라 느껴져서였을까?

    칠보식당 바로 옆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가까이 있는 금산 객잔이라는 카페.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인데 카페도 겸하고 있다. 들어가서 커피나 한 잔 하고 나오자 싶어 들어갔다.




    가을이긴 가을인가보다. 담쟁이들이 붉게 물들어 벽면을 가득 채웠다. 안으로 들어가서 커피를 주문하려고 하니 어라, 커피가 다 떨어졌다고 했다. 별수없이 다른 메뉴를 시켜야 했다. 맥주 하나와 소시지, 그리고 마살라 짜이를 시켰다.




    주문이 밀려있어서 한참 있다가 주문한 음료와 음식이 나왔다. 그동안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구경하느라 기다림은 꽤 괜찮았다. 소시지는 보통의 맛, 맥주는 남해의 어떤 양조장에서 가져온 것이라 했는데 맛이 좋았다.​

    특히 좋았던 것은 마살라 짜이. 스파이시한 홍차에 우유를 섞은 맛이랄까나? 약간 달달하기도 했다. 요새는 일반 카페에서도 차이티나 차이티라떼를 많이 팔고 있어 접해본 맛이다. 한모금 넘기니 따뜻하게 몸을 데워주어 좋았다.



    금산객잔을 나와서 집으로 돌아갔다. 비록 내장산 단풍은 못보았지만 정감어린 식당을 발견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우리끼리 단풍놀이도 하고, 읽고 싶었던 책도 읽었고, 푸른 하늘도 원없이 봤고 가을 날씨도 제대로 느꼈던 그런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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