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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맨틱 가도 로텐부르크(Rothenburg)에서
    나홀로 유럽 여행기/독일 (Germany) 2021. 5. 2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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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뉘른베르크에서 묵었던 숙소에는 고양이가 두마리 있었다. 아침에 짐을 좀 챙기고 있는데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왔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이 아이가 왜 나에게 다가오는지, 무얼 원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데 무척 귀여웠다.

    숙소에서 주는 컵라면과 쌀밥을 먹고 배를 채운뒤 뉘른베르크 중앙역으로 향했다. 오늘은 로텐부르크로 떠나는 날이다. 전날 지하철 티켓 머신기에서 구입했던 타게스 티켓(Tages Ticket Plus)을 이용해 가기로 했다. 타게스 티켓을 구입한 후 아래쪽 빈칸에 이름을 쓰고 기차를 탈 때 소지하고 있으면 된다. 기차에서는 항상 검표를 하기 때문에 무임승차는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다.




    로텐부르크로 출발!

    다행스럽게도 어제 밤베르크행 기차처럼 연착하지 않고 제 시간에 출발했다. 로텐부르크로 갈 때 조심해야할 것이 하나 있다. 타게스 티켓이 아닌 편도 표를 끊어서 간다거나 기차 시간을 확인할 때 목적지를 'Rothenburg ob der Tauber(타우버 강 위의 로텐부르크)' 로 설정해야 한다. 만약 'Rothenburg' 라고 목적지를 설정해놓고 기차를 탄다면, 우리가 보통 알고있는 로텐부르크가 아닌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된다.




    이날 저녁 뉘른베르크 숙소로 돌아갔을 때 밤늦게 체크인을 하고 내가 자던 방에 두 언니가 들어왔다. 그 언니들이 하는 이야기가 'Rothenburg' 라고 종착지를 설정하고 기차표를 끊어서 가는 바람에 이상한 곳으로 가게 되어 열차 안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미리 예약해둔 숙소를 포기하고 급하게 뉘른베르크에 숙소를 잡아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뉘른베르크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40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로텐부르크에 도착했다. 로텐부르크 중앙역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따라 걷다 보니 구시가지에 다다랐다.

    로텐부르크는 중세시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중세의 보석'이라 불리운다. 그 명성 때문일까 은근한 기대감을 가지고 아이보리빛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로 들어섰다. 아치형 성문을 지나서 성벽을 통과하니 마치 다른 세상에 넘어온 듯 했다.




    뉘른베르크에 도착한 첫날은 구름이 꽉 낀 흐린 날씨였는데 그 이후 근교로 떠날 때마다 감사하게도 늘 날씨가 좋았다. 따스한 햇살과 푸른 하늘 덕분에 형형색색의 건물들이 더 톡톡 튀었다. 밤베르크나 로텐부르크는 뉘른베르크 보다 더 다채롭고 화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날씨의 영향도 좀 있었던 것 같다.





    로텐부르크는 독일의 유명한 관광루트인 로맨틱 가도(Romantische Strasse)를 이루고 있는 여러 도시(프랑크푸르트, 퓌센, 뷔르츠부르크 등)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곳이다. 그 유명세에 걸맞게 무척 아름다운 도시였던 로텐부르크. 알록달록한 건물들과 화려한 색감의 꽃들이 곳곳에 있었다. 가게마다 매달려있는 독특한 간판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였다.






    어디선가 바이올린 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쫓아 가보니 정돈된 하얀 콧수염이 매력적인 할아버지께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계셨다. 낭만적인 바이올린 선율 덕분인지 여행의 흥이 한껏 달아 올랐다. 그저 걷기만 해도 마냥 좋은 날이었다.




    길을 걷다가 한적한 골목길 너머로 보이는 푸르른 풍경에 마음을 뺏겼다. 나도 모르게 발길은 골목 끝으로 향했다.




    골목 끝에 다다른 나는 성벽에 기대어 멀리 보이는 풍경을 바라 보았다. 눈앞에 붉은 지붕으로 가득한 로텐부르크와 드넓은 초록빛 포도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바람, 신선하고 상쾌한 바람이 부드럽게 내 살결에 닿았다.

    우우웅 - 바람소리만 가득하던 고요한 공간. 이 곳은 과연 어디일까? 어디였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멍하니 바라 보았다.





    끝도 없이 이어진 성곽이 로텐부르크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성곽을 따라서 정처없이 쭉 걸었다. 걷다 보니 홀로 고적히 서있는 탑이 보였다. 높다란 탑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좋은 풍경을 쫓아 걷다 보니 아름다운 정원에 닿게 되었다. 이곳은 부르크 정원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부르크(Brug)는 독일어로 성이란 뜻이니, 결국 성의 정원이란 의미일테다. 녹음이 짙은 한적한 공원이었다.







    초록빛으로 물든 정원은 눈부신 햇살을 가득 품고 있었다. 햇살이 좋은 날은 그림자도 아름다웠다. 나뭇가지 마다 매달린 잎사귀들의 그림자가 길 위에 물결처럼 일렁였다. 정원을 거닐다 보니 울긋불긋한 꽃들이 보였다. 사랑스러운 장미꽃들이 곳곳에 피어 있었다.





    좀 더 정원 깊숙히 들어가 보았다. 푸르른 녹음이 우거진 숲이 나타났다. 일렁이는 나뭇잎 그림자들 사이로 걸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아름다운 하프 선율이 들려왔다. 하프 소리를 따라서 걸어가 보았다.

    온통 초록빛 동화 속 같은 세상에 상쾌한 공기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 하프 연주는 배경음악처럼 귓가에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나무 벤치에 앉아 일기장을 꺼내어 글을 끄적였다.







    로텐부르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람이었다. 살랑 부는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날려 얼굴을 간질였다. 그리고 바람에 나뭇잎들이 부대끼며 내는 소리가 하프 소리에 뒤섞여 들려왔다. 나는 햇살이 일렁거리는 일기장 위에 로텐부르크의 바람이 참 좋다고 적어 넣었다.




    부르크 정원을 돌아본 뒤 뉘른베르크로 돌아가기 위해 로텐부르크 기차역으로 되돌아 갔다. 로텐부르크로 오기 전 이곳의 여러 관광지들을 미리 다 알아보고 돌아볼 곳들을 정해두고 왔었는데, 결국에는 이 부르크 정원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그런데 너무 좋은 기억을 안고 간다. 먼훗날 로텐부르크를 다시 찾게 된다면 부르크 정원에 꼭 다시 와보리라. 여행은 항상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아 더 재밌다.




    로텐부르크에서 뉘른베르크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뉘른베르크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 하루를 되돌아보며 일기장을 다시 펼쳐 보았다.




    침대 위에서 지나간 하루를 되돌아 보니 부르크 정원을 거닐었던 때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걸음걸음마다 살결에 와닿았던 싱그러운 바람과 햇살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로텐부르크의 어느 인형가게에서 데려온 토끼 인형에게 '바람'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홀로 떠났던 여행, 지치고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내 곁을 지켜주던 바람이. 갑자기 나에게 여행 친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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