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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오는 날 수원 여행, 수원 화성 행궁 야간 개장
    우리나라 방방곡곡/서울, 경기 2023. 7. 2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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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 수원 여행을 오게 되었다. 숙소를 미리 예약해두지 않았더라면, 비가 오니 그냥 여행을 취소했을 것이다. 그런데 숙소를 예약해둔 상태였고 비가 온다고 숙소가 취소 되는 것도 아니라서 일단은 수원으로 떠났었다. ​

    수원에 와서 꼭 보고 싶었던 것은 수원 화성이었는데, 그리고 화성 행궁 야간 개장하는 걸 보고 싶었는데 보긴 봤지만 뭔가 1% 부족한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날씨 좋고 좀 선선해진 가을 즈음에나 다시 들러보고 싶다.


    차는 호텔에 주차해두고 걸어서 화성 행궁까지 왔다. 호텔에서 10여분 정도 걸었던 것 같다. 별로 걷지 않았는데도 비가 와서 그런가 사람이 축축 처지고 쉽게 지치는 날이었다. 성인 기준 1,500원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화성행궁 야간개장이 진행 중이라고 들어서 왔는데, 사실 아직 어두워지기 전이라서 딱히 야간 느낌이 나진 않았다. 곳곳에 켜진 불빛들이 그나마 야간 개장이라는 느낌을 억지로 좀 불 붙여 주는 듯 했지. 비가 꽤 많이 내렸는지 궁 안의 흙 바닥이 물 웅덩이로 가득 차 있었다.


    행궁은 왕이 궁궐을 벗어났을 때 머물렀던 공간으로 화성 행궁은 정조가 여러 차례 수원 행차를 하며 머물렀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 다른 용도로 건물이 쓰이면서 많이 훼손되었는데, 지금의 모습은 옛 모습대로 복원을 해놓은 모습이라고 한다.​

    흙바닥은 물 웅덩이라서 흙길을 피해 돌길로 열심히 돌아다녔다. 비가 계속 내리는 와중이라서 우산을 쓰고 돌아다녔다. 하늘에는 허연 구름들이 가득 껴있어서 흐리멍텅했지만, 궁궐 지붕과 돌들은 축축하게 젖어서 색이 더 짙어 보였다.


    아름다운 산 아래 자리 잡고 있던 행궁.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회갑연을 했다는 봉수당도 있었다. 사람 모형을 그럴싸하게 만들어 놓아서 놀랬다. 진짜 사람이 앉아 있다고 해도 믿겠는걸? 처마 끝에서 빗방울이 톡톡톡톡 떨어졌다. 비를 맞지 않으려고 그 아래를 골라서 걸어다녔다. 내리는 빗소리가 평화롭게 느껴졌다. 비 오는 날 행궁을 걷는 것도 재미난 경험인 것 같다.


    행궁 안에 스템프가 있어서 남는 종이에다가 스템프를 하나 찍었다. 시뻘건 색의 스템프였는데 아주 잘 찍히더군. 여행 다니며 기념할만한 무언갈 남기는 걸 좋아하는 우리는 보통 일기장을 들고 다니는 편인데, 이 날은 일기장을 들고 오지 못해서 아무 종이나 꺼내서 도장을 퐝 찍어 두었다.


    행궁 뒷편에 작은 출구가 있었는데 그리로 나가면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왔다. 길 옆에는 청사초롱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조금 더 어두웠다면 길이 참 아름다웠을 것 같더라. 너무 이른 시간에 왔나 싶기도 했다. 청사초롱이 매달린 돌 계단을 따라서 위로 올라갔다. 쭉 길을 따라서 가면 아까 행궁에서 위를 올려 보면 보이던 언덕 위 정자가 있을 것 같았다.


    키가 큰 소나무들이 우거진 숲에 들어섰다. 소나무들이 하늘을 가려서 세상이 어둑어둑해졌다. 어두워지니 청사초롱이 더 아름답게 빛이 났다. 소나무 아래에는 푸릇푸릇한 맥문동들이 가득했다. 돌로 닦인 길을 따라서 언덕 위로 올라갔다.


    마침내 정자 위에 올랐다. 미로한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래된 정자였다. 지금 모습이 그 때의 모습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늙어서 한가하게 쉰다는 뜻이 담긴 미로한정, 정조의 말년이 떠올라서 뭔가 슬프더라. 편안한 노년을 보내고 싶었을텐데, 끝이 좋지 못했으니. 역사가 좋아서 한참 공부했을 때 정조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아서 조선을 이끌었다면 우리나라는 좀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정조 시대에 화가 김홍도가 그린 그림이 남아있다고 한다. 주변에 국화가 가득 핀 가을날의 미로한정의 모습을 그렸다는데, 정자 앞 안내판에서 그의 그림을 엿볼 수 있었다.


    정자 안은 비를 피하려는 사람들로 만석이었다. 정자에 앉아있기는 어려워서 정자 앞 쪽 언덕에 서서 잠깐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완전 찌뿌둥했다. 구름들이 가득 차서 뿌연 하늘 아래 펼쳐진 행궁, 그리고그 뒤로 펼쳐진 도시의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뭔가 포스터의 한 장면 같던 풍경들이었다. 멀리 보이는 행궁의 모습 그리고 정자 사이로 후두두둑 떨어지는 빗방울들과 소나무들의 모습. 화성행궁 안을 걸었던 시간들 보다 이렇게 언덕 위에 올라와서 보냈던 시간들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정자를 내려와 행궁으로 돌아왔다. 이제 행궁을 떠나려는데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한 세상. 이제야 궁이 반짝반짝 빛날 것 같았는데 너무 피곤하기도 했고 배가 고프기도 하여 서둘러 행궁을 떠났다. 다음에 선선한 가을 날에, 그리고 청명한 날에 행궁을 다시 찾아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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