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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 성삼재~노고단 산행 아름다운 눈꽃길을 걷다, (시암재, 성삼재 휴게소, 노고단)
    우리나라 방방곡곡/전라도 2022. 2. 12.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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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펑펑 내리던 추운 겨울날, 얼마 뒤 우리는 노고단에 오르려고 구례를 찾았었다.

    그런데 눈 때문에 성삼재쪽으로 가는 길이 통제되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눈이 많이 오면 위험하기 때문에 성삼재 가는 길이 자주 막힌다고 한다.
    하지만 우린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아쉽지만 노고단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천은사에라도들렀다 오기로 했다.
    눈을 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천은사에 도착했는데 성삼재까지 올라가는 길이 뚫려 있었다.

    우리는 차 방향을 틀어 성삼재 휴게소 방향으로 올라갔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가다 보면 성삼재 휴게소가 나오기 전에 시암재 휴게소가 먼저 나온다.
    예전에 시암재 휴게소에서 배를 채우고 노고단에 갔었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을 살려 이번에도 시암재 휴게소에서 밥을 먹고 노고단에 오르기로 했다.


    배가 무척 고팠던 우리는 산채비빔밥과 라면을 하나씩 시켰다.
    으슬으슬 추운 날 난로 옆에서 허겁지겁 음식들을 먹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음식들이 개눈 감추듯이 사라졌다.

    화장실도 들리고 군것질 거리들도 몇개 사들고 나서 다시 차에 올랐다.
    이제 성심재 휴게소로 갈 차례이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성삼재 휴게소에 왔다.
    도로는 개통되었으나 도로 위에는 눈들이 꽤 쌓여 있어서 조심조심 올라가야 했다.

    원래 성삼재 휴개소에서 먼 곳을 내려다보면 지리산이 멋드러지게 보였는데
    구름이 꽉 끼어서 잘 보이지가 않았다.

    오늘은 노고단에 올라봤자인 날인가?

    그래도 여기까지 온김에 그냥 가보기로 했다.


    와, 노고단으로 향하는 길 위에 눈이 소복히 쌓였다.

    대구에서는 참 보기 힘들었던 눈을 여기서 온통 다 볼 수 있었다.

    동절기에는 4시까지만 입산이 가능한데
    우리는 밥을 먹고 오느라 2시 30분 즈음에야 노고단 코스에 들어섰다.


    분명 출발할 때만 해도 구름이 꽉 끼어 있는 흐린 날씨였는데
    위로 오르면 오를수록 날씨가 점점 더 맑아졌다.

    분명 눈앞의 산들이 희미하게 보였는데
    이제는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새파래졌고 나뭇가지마다 맺힌 눈꽃이 선명하게 보였다.
    멀리 우리가 갈 노고단은 그림처럼 온통 하앴다.


    하얀 밀가루를 나무 위에 잔뜩 뿌려 놓은 것 같았다.
    설국이란 말을 이런 때 쓰는 것일까?
    너무너무 아름답고 황홀했다.
    걷는 다리에 힘이 불끈 솟았다.

    이렇게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풍경도 예술인데
    위에서 내려다 본다면 또 얼마나 멋있을까?


    줄줄이 이어진 나무 계단을 오르다가 돌들이 쌓인 오르막길을 걸었다.
    눈이 소복히 쌓여 있어서 평소보다 더 걷기 쉬웠다.
    켜켜히 쌓인 눈이 부드럽고 경사를 완만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새파란 하늘에 눈꽃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햇빛에 보석처럼 눈꽃들이 반짝반짝였다.


    드디어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대피소에서 물건도 팔고 숙박도 되었던 것 같은데
    코로나 때문인지 텅 비어 있었다.

    대피소에 도착하니 거의 다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멀리서 보이던 눈꽃 가득 핀 하얀 언덕같은 산이 이제 가까이 보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이 가까웠다.


    오르막 돌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어느새 우리는 멀리서 보던 설국 안에 들어와 있었다.

    푸릇푸릇한 조릿대 위에 눈꽃이 가득 핀 나무들,
    그리고 파란 하늘이 한데 어우러졌다.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졌다.

    가방 안에 넣어 둔 생수통을 꺼내 보니
    병 입구에 얼음이 만들어져 있었다.
    물을 한모금 삼키는데 어찌나 시원하고 맛나던지 모른다.


    마치 하늘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길의 끝에
    드디어 노고단이 나타났다.

    노고단에 입장하려면 미리 국립공원탐방시스템에 접속해서
    탐방 예약을 해두어야한다.
    원래 노고단에 오려고 예약을 해두었는데 눈 때문에 포기했었다가
    이렇게 결국 오게 되었으니
    천은사에 가보기로 했던 것이 참 잘한 일이었다.


    마치 우리는 하늘 위 세상을 걷는 것 같았다.
    켜켜히 쌓인 구름 위에 놓인 다리를 따라 걷는다면
    아마도 이런 기분일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얗게 꽁꽁 얼어 있었다.
    온통 하얀데 하늘은 새파랗게 푸르러서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아름다운 눈꽃을 자세히 바라보며 걸어갔다.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그대로 눈이 나뭇가지에 붙어 얼어버린 것 같았다.

    손으로 툭 치면 눈이 작게 쪼개져서 땅 위로 우드드 쏟아져 내렸다.
    마치 눈이 내리는 것처럼 말이다.


    멀리 보이는 노고단 정상을 향해
    끝없이 이어진 것 같은 계단을 따라서 걷고 걸었다.
    우리는 하얀 세상 위를 걷고 있었다.

    걸어가는 내내 탄성이 나올 뿐이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너무너무 아름답고 황홀한 풍경이었다.

    마침 눈이 왔었고 길도 뚫려서
    이렇게 운좋게 설경을 구경하게 되어 노고단에게 너무 감사했다.
    오늘 이곳에 오게 된 것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노고단에 올랐을 때,
    우리는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우리 발 아래 옆에 켜켜히 쌓인 구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넓게 펼쳐진 하얀 구름들이 바다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크고 작은 산 봉우리들이 마치 수묵화처럼 다른 농도로
    겹겹히 서로 이어진 것처럼 보였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왜 이리 갑자기 날씨가 좋아졌나 싶었는데
    우리가 구름 위에 올라서서 그런가 보다.

    하얀 구름들이 마치 바다처럼 보였다.
    수평선처럼 하얀 구름 더미들이 하늘과의 경계를 만들어 냈다.
    망망대해를 보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노고단의 비석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다 내려가 버려서 노고단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단지 우리 둘 뿐이었다.

    이 세상에 우리만 남겨진 것 같았다.


    꼭대기에 오르니 바람이 어마무시하게 불었다.
    하늘은 이렇게나 맑은데 바람은 파란 하늘과 정반대였다.
    모자를 쓰지 않고서는 귀와 코, 눈이 떨어져 나갈듯이 추웠다.
    패딩을 싸매고 목도리로 목을 동여맸다.


    켜켜히 쌓인 돌에는 하얀 눈이 얼어 붙어 있었다.
    이 거센 바람에 미동도 하지도 않는 것을 보니,
    돌들이 저 모양 그대로 얼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려가야할 차례다.
    입산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더 올라오는 이가 없었다.
    이 넓고 아름다운 공간에 우리밖에 없다니,
    노고단을 우리가 빌린 것처럼 느껴졌다.

    올해 정말 고마운 선물을 받았다.
    이 기억을 안고 2022년 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내려가는 길을 햇님이 반겨 주었다.
    햇님도 멀리 땅 속으로 저물어가는 중이었다.
    오후 4시가 까마득하게 넘은 시간,
    겨울이라서 5시만 넘어도 어둑어둑해지니 하산을 서둘렀다.


    노고단 대피소에 와서는
    눈이 가득 쌓인 공터에 누워서 눈의 천사를 만들었다.
    남편도 풀쩍 눈 밭 위에 누워 팔다리를 흔들어댔고,
    나도 풀쩍 그 옆에 누워서 팔다리를 흔들었다.

    두 천사가 눈밭 위에 생겼다.


    노고단 대피소에는 기념 도장이 있었다.
    따로 일기장을 들고오지 못해서 주머니에 있던 휴지 조각을 꺼냈다.
    빳빳한 종이가 아니어서 찍기가 어려웠다.
    여러번의 시도 끝에 꽤 도장을 잘 찍을 수 있었다.


    기념 도장을 찍은 휴지 조각을 남편 지갑 안에 조심스레 넣어 두었다.
    나중에 꺼내서 일기장에 붙일 생각이었다.

    아까 성삼재 휴게소에서 편의점에 들러 사온 양갱을 씹어 먹으며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갔다.
    올라오는 길은 풍경도 새롭고 눈도 봐서 신이 났었는데
    내려가는 길은 이미 다 봤던 길이라 그런지 좀 지루하고 왠지 더 오래걸리는 기분이 들었다.


    해가 저물어가고 있어서 눈이 노랗게 보였다.
    지는 햇살을 잔뜩 머금어서 그런가 보다.
    곧 하늘이 노랗게 물들었다. 해가 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오늘 하루 맑은 날을 선사해줘서 하늘에게 참 고마웠다.
    처음에 노고단에 오를 때만 해도 구름만 보겠구나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설경을 보게 되었고 이렇게 지는 노을까지 보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주 곤욕스러웠다.
    우리가 올라왔던 길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내려갔는데,
    거의 차가 기어가다 싶이 내려갔다.
    도로 위에는 눈이 켜켜히 쌓여 있었는데 차라리 눈 쌓인 길이 나았다.
    조금이라도 눈이 녹아 얼어버린 길에서는
    차가 말을 잘 듣지 않아서 10km 도 안되는 속도로 천천히 내려가야 했다.

    다행이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차가 한 대도 없어서,
    조심스럽게 잘 내려갈 수 있었다.
    마침내 달궁 거리에 도착했을 때 어찌나 기쁘던지,
    불 켜진 민박집과 식당들을 보고 나서 우리 둘다 환호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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