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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 남원 지리산 바래봉에 오르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전라도 2022. 2. 20.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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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산행을 하고 싶어서 남원을 찾았다.

    저번에 노고단 눈꽃 산행을 다녀오고 이번에는 지리산 바래봉에 오르기로 마음 먹었다.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곳까지 달려가서 주차를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눈이 쌓여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눈이 혹시라도 있을까봐 눈오리 만드는 도구를 챙겨왔다.

    두근두근, 과연 눈오리를 만들 수 있을까?

    흙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던 것 같다.

    길 양쪽으로는 가지만 덩그러니 남은 철쭉들이 많았다.

    봄에 꽃 필 즈음에 온다면 이 길도 무척 아름다울텐데 지금은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지리산 바래봉이 철쭉으로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길 양옆은 물로 먼 곳 내려다 보이는 산 모두 철쭉 나무로 가득했다.

    잠깐 눈 쌓인 길이 나와서 신이 났다.

    눈이 보고 싶어서 겨울 산을 찾은 것이어서 눈이 너무 반가웠다.

    눈오리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뻤다.

    저벅저벅 눈 밟는 소리를 들으며 걸어갔다.

    눈길을 지나가고 나니 이제 돌길이 계속 이어졌다.

    사실 돌길보다는 눈길이 걷기에 편했다.

    눈이 폭신폭신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쌓인 눈 덕분에 경사도 덜 진거 같아서 걷기 좋았다.

    그런데 해가 잘 드는 곳은 눈이 다 녹아버린 것 같았다.

     

    바래봉으로 오르는 길은 만만찮았다.

    생각보다 더 경사가 급했고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산 속을 오르는 것과 약간 다른 느낌이었다. 잘 정비된 도로 위를 걷는 느낌이랄까?

    돌로 아주 잘 정비되어 있었지만 너무 급경사라서 힘들었다.

    나중에는 등 뒤로 땀이 흘러내릴 정도여서 외투를 벗고 가야했다.

    숨을 헐떡이며 위로 많이 올라왔다.

    멀리 산과 논이 내려다 보였다. 높이 올라서니 푸릇푸릇한 조릿대들도 보였다.

    간간히 길 주변에 쌓인 눈들이 보였다. 위로 올라갈수록 눈들이 꽤 많았다.

    중간에 잠깐 쉬어가는 공간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기로 했다.

    텀블러에 싸들고 온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붓고 동네에서 포장해 온 김밥을 꺼냈다.

    라면과 김밥은 찰떡궁합이다. 특히 이렇게 산에 올라와 먹으면 너무 맛있다.

    배도 든든하게 채웠으니 다시 오르기 시작한 우리.

    바래봉 삼거리까지 왔다.

    이제 정말 바래봉이 점점 가까워져간다.

    바래봉을 향해 가다가 눈이 가득 쌓인 빈터를 발견했다.

    밟은 흔적이 거의 없는 아주 포실포실한 눈이 쌓인 공간이었다.

    우리는 신이 나서 눈밭으로 달려갔다.

    푹푹 신발이 눈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가득 쌓인 눈을 보니 신이 나서 열심히 눈오리와 눈공룡을 만들어댔다.

     

    몇마리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한마리가 두마리가 되고,

    두마리가 세마리가 되고 그렇게 오리와 공룡이 쌓여갔다.

    남편과 나난 차례차례로 눈오리와 눈공룡을 만들어 나무 위에 쌓아 올렸다.

    우리는 정신없이 눈 오리와 눈 공룡을 만들었다.

    어찌나 재밌던지 모른다.

    정말로 오랫만에 이렇게 눈을 만져보고 노는 것 같았다.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것이지,

    정말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재미나게 눈과 함께 놀았다.

    다시 바래봉을 향해 올라가다가

    또 다시 눈오리의 유혹에 빠져 하얀 눈을 가지고 놀았다.

    푸르딩딩한 조릿대 밑에 오리 두 마리를 놓아두고 왔다.

    곧이어 전나무 숲이 나타났다.

    쭉쭉 뻗은 나무 모양이 아주 멋있었다.

    눈이 소복히 쌓여 있었으면 더 멋있었을텐데

    눈이 더 많이 내린 날에 바래봉을 또 찾아와야겠다.

    전나무 숲을 지나니 이제 끝없이 펼쳐진 나무 계단이 나타났다.

    이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은 느낌이었다.

    봉우리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무계단을 한참 오르다가 뒤를 돌아 보았는데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높다란 산들이 내 발아래에 펼쳐져 있었다.

    산 군데군데에 하얀 눈들이 쌓여 있었고

    우뚝 솟은 전나무들이 푸르렀다.

    늘 보던 산은 그저 초록빛이었는데

    겨울에 오니 하얀 밀가루를 덮어 쓴 모양이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뿌옇게 쌓여 있었다.

    곧 비라도 내릴마냥 말이다.

    이제 고지가 눈앞이었다.

    꼭대기에는 까마귀들이 잔뜩 앉아 있었는데

    우리가 다가가자 날개를 퍼득이며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자꾸 올라가며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겨울 지리산이 참 멋있었다. 눈에 자꾸 담고 싶었다.

    마침내 바래봉에 도착했다.

    꼭대기에 있던 나무 데크 위에는 바래봉이라는 글씨가 적힌 작은 비석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바래봉 옆에서 기념 사진을 찰칵 남겼다.

    돌아가는 길,

    올라가는 길보다 내려가는 길이 훨씬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길이 녹은 눈 때문에 미끄러워서 그랬다.

    아이젠이 없었다면 미끄러워서 내려갈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젠 덕분에 조심조심 잘 내려갔다.

    내려가는데 갑자기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내리는 눈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이렇게 펑펑 내리는 눈이 얼마만인가?

    하늘을 올려다 보니 눈송이가 내려오는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나에게는 이 눈이 바로 첫눈 같았다.

    눈이 펑펑 내리니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우리 둘은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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