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설악산을 만나기 위해 새벽부터 부지런히 출발한 결과, 소공원 주차장에 주차 성공! 케이블카 매표소로 가서 줄을 좀 서다가 오전 7시 27분에 탑승하는 표도 끊었다.
조금 기다리다가 곧 탑승장에 다가설 수 있었다. 한 케이블카에 50명 정도가 탈 수 있었다. 5분마다 케이블카를 운행하는데, 끊임없이 사람들을 위로 실어 나르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시간 맞춰서 탑승구에 가면 되는데, 우르르 많은 사람들이 탑승하다 보니 경치를 구경하며 가려면 미리 와서 대기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몇 분 안되어 도착해버리니, 좋은 경치는 위에 가서도 실컷 볼 수 있으니 그냥 맘 편히 타는게 더 나은 것 같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며 창밖으로 멀리 울산 바위가 보이고 반대편 먼 곳으로는 해가 떠오르는 하늘과 푸르른 바다도 보였다. 그리고 케이블카 아래로는 알록달록한 가을산의 풍경이 펼쳐졌다. 두근두근, 올라가면 얼마나 더 멋있는 풍경이 펼쳐질지 기대 만발이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권금성을 향해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짙게 깔린 구름 뒤에 태양이 떠올라 있는지 붉게 타오르는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먼 바다 위로 붉은 빛깔이 일렁였다. 위에 올라서니 이렇게 바다가 보이는구나, 참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알록달록한 단풍들을 보며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멀리 권금성의 봉화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권금성은 신라시대 권씨와 김씨가 난을 피하기 위해 쌓아 '권금성'이라 불린다고 전해진다. 고려 말 몽골의 침입을 피해 이곳에 숨어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어 오래도록 이곳에 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은 허물어져 흔적만 남았다. 어찌 이런 암산 꼭대기 위에 성을 쌓았는지 믿기지가 않는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손쉽게 올라왔지만, 두 발로 왔다면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아름다움을 이리도 쉽게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큰 복인가 싶었다. 눈앞에 펄쳐진 절경을 보니 새벽부터 부지런히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 싶었다. 감실감실 졸려서 감기던 눈도 번뜩 떠지는 멋진 풍경들이었다.
암벽 끝에 올라서니 만물상(萬物相)이 눈앞에 펼쳐졌다. 만가지 형상을 띈다는 이름답게 그 모습이 화려하고 다채로웠다. 수직으로 곧게 뻗어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암석들이 켜켜히 쌓여 있었다. 삐죽삐죽 솟아난 암석 사이사이로는 붉게 물든 단풍들이 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알록달록 푸르른 소나무들과 노랗게 붉게 물든 나무들이 암산을 수놓았다. 멀리 삼각뿔 모양으로 뾰족하게 솟아 오른 장군봉도 보였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힘들이지 않고 케이블카를 타고 와서 쉽게 볼 수 있어 세상에 감사했다. 케이블카가 생기기 전에 태어나 자랐더라면 이런 비경을 평생 보지 못했을 것만 같다.
우리가 발을 디디고 서있던 산이 어찌나 높은지, 산 그림자가 멀리 있는 다른 산골짜기에 닿았다. 우리는 그만큼 높은 곳에 와 있는 것이었다. 불어오는 바람은 아래에서 느끼던 것과 달랐다. 바람이 통하는 길 한복판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계속 휘몰아치는 바람은 강하다가도 약해지며 오락가락했는데 절대 멈추지는 않았다.
우뚝 솟은 장군봉 옆으로 깊은 골짜기도 내려다 보였다. 먼 곳을 바라보니 아찔했다. 추락주의라는 경고판이 여기저기에 매달려 있었는데 그 말과 상관 없이 어딘가에 서서 먼 풍경을 바라 볼 때면 저절로 오금이 저렸다. 발을 조금만 헛디디면 멀리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아서 엄청 조심조심 다녔고 무리한 행동도 하질 않았다.
멀리 울산바위가 보였다. 울산바위에 관한 전설은 어릴 때 어디에선가 들었던거 같기도 하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애니메이션으로 보았던 것 같기도 하다. 생긴건 잘 몰라도 그 전설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옥황상제가 금강산을 만드려고 전국에 흩어진 아름다운 바위들을 모집했다. 울산에 있던 바위가 금강산으로 향했는데 힘이 들었는지 잠깐 이곳에서 쉬어갔다. 그런데 금강산에 바위들이 다 모여 자리가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그래서 울산 바위는 아름다운 이곳에 그냥 머물기로 했다는 이야기.
이리도 아름다우니 그냥 머물렀을 법도 하다. 가을 설악산을 보니 봄 그리고 여름, 겨울 풍경도 궁금해졌다. 아무래도 다른 계절에 이곳을 다시 찾아와야게겠다 싶었다. 열심히 눈으로 풍경을 담고 사진으로도 담고, 산과 함께 기념 사진들도 남겼다.
병풍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기암괴석들을 바라 보다가 반대편으로 건너가 보았다. 반대편 암석 위에 올라 서면 멀리 흐릿한 수평선이 보였다. 수평선 아래는 푸르른 바다였다. 널찍한 하늘 아래 산들이 발 밑에 깔린 것처럼 내려다 보였다.
높은 곳에 올라서서 한참동안 설악산 비경을 구경하다가 넓적한 바위 위에 앉아 간식을 까먹었다. 어젯밤 미리 사놓은 요거트 음료와 귤, 그리고 남편이 집에서 만들어 온 두부로 만든 당근케이크와 어두운 새벽 펜션에서 직접 내려온 따뜻한 커피. 진수성찬이다.
멋진 풍경을 보면서 먹으니 모두 꿀맛이었다. 산 위에서 먹는 음식들은 왜 이리도 맛난지! 약간 쌀쌀했는데 따뜻한 커피가 몸 속에 들어가니 참 좋았다. 커피를 따르고 텀블러를 뒀는데, 갑자기 바람에 쓰러지더니 데굴데굴 바위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호다닥 남편이 달려가서 텀블러를 주워 왔는데 정말 큰일이 날 뻔 했다.
간식을 챙겨 먹고 배를 조금 채우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설악산을 돌아 보았다. 우리가 간식을 먹는 사이 해가 하늘 위로 더 떠올랐는지 어두웠던 봉우리들에 훤한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아침 햇살을 받으니 기암 사이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단풍들이 더 돋보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이 풍경들으 보고 있자니 그냥 떠나기는 뭔가 아쉬웠다. 가을을 맞은 설악산, 이리도 어렵게 왔는데 더 오래 있다가 가야지 싶었다. 우리는 만물상이 잘 보이는 어느 돌덩이 위에 앉아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우리 둘은 먼 풍경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불어오는 바람을 들이 마시며 설악산의 기운을 가슴 깊이 담아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절경이다. 사진 속에는 눈으로 보는 것만큼 웅장함과 아름다움이 담기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는 멋진 풍경이구나!
이 멋진 순간을 기념하고 싶어서 일기장을 펼치고 펜을 꺼내 후루룩 눈앞의 풍경을 그림으로 담았다. 손이 시려와서 도중에 멈추고 말았지만, 나중에 일기장을 들춰보면 지금 이 순간이 떠오르겠지, 그런 생각이 드니 웃음이 나왔다.
권금성 일대에서 2시간여를 보내고 돌아가는 길 어여쁜 단풍 이파리를 주웠다. 가을의 빛깔들이 골고루 담긴 귀여운 이파리를 손에 쥐어 들고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갔다. 내려갈 때는 따로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고, 내려가고 싶을 때 탑승장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면 되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서는 근처 식당에서 맛난 음식들로 배를 채우고 산을 타보기로 했다. 원래 계획하기로는 케이블카에 비선대 코스까지만 걷기로 해서 우린 등산화도 신지 않았고 등산 스틱도 안챙겨왔다.
그래도 가을 설악산 언제 이렇게 다시 와보겠냐며 운동화 신고서라도 오련폭포까지만 가보자 결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