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여행 중 당일치기로 들렀던 아라시야마.
란덴열차를 타고 아라시야마 역에 도착해서, 기모노를 입고 텐류지에 들렀다 치쿠린에 오게 되었다. 텐류지 북쪽 출구로 나가면 곧장 치쿠린으로 이어져서 같이 둘러보기 좋다.
하늘로 높이 솟은 엄청난 숫자의 대나무들이 우릴 반겨 주었다. 어찌나 높이 솟았는지 고개를 높이 들어 올려도 그 끝이 보일까 말까였다. 높이 솟은 나무 줄기 끝에는 이파리들이 빽빽하게 나있어서 하늘을 꽉 채우고 있었다.
텐류지는 덜 붐벼서 좋았었는데 치쿠린에는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길 위는 사람들로 빽빽했는데, 다들 발걸음이 느렸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거대한 대나무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나라의 담양 죽녹원과 비슷한 느낌의 장소였다. 다만 이곳 치쿠린은 이국이고 지나다니는 이들 또한 낯선 외국인들, 그리고 내가 입고 있는 옷도 기모노였으니 느낌이 좀 남달랐다.
푸르른 녹색으로 가득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매일 바라보던 컴퓨터 화면이 아닌 푸르른 자연을 보는 지금, 비로소 내 자신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리도 높이 솟은 대나무들은 언제부터 이곳에 서 있었을까나?
바람에 기다란 대나무 줄기가 흔들릴때면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다. 푸릇푸릇한 여름의 빛깔이 온세상에 가득했다. 아직 봄이지만, 여름을 상상해보게 되었다. 땀이 뻘뻘나는 무더운 여름, 치쿠린에 걸어 들어 왔다면 이곳이 천국같았을 것 같다.
천천히 대나무 숲 길을 걷다가 아름다운 음악 소리를 듣게 되었다. 쇠에 부딪히는 맑은 종소리 같았다. 숲 전체에 몽환적인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악기 연주자 앞에 모여 연주를 듣고 있었다.
파란 옷을 입은 연주자는 둥그런 쇳판을 두드리며 연주를 하고 있었다. 핸드팬이라는 악기였는데 소리가 아주 청아하고 맑았다. 그 소리가 지금 우리가 서있는 대나무 숲과 무척 잘 어울렸다.
한동안 연주를 듣다가 숲을 빠져 나왔다. 낯선 음악과 낯선 공간, 신비롭고 낯선 다른 세상에 있다가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번잡했지만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에 마음이 잔잔해졌던 치쿠린.
치쿠린은 아라시야마에 올 때마다 들르고 싶은 곳이 되었다.
길을 걷다가 어느 할아버지가 금빛 천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가, 그림 한 점을 사왔다.
지금도 우리 집 서재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아라시야마의 벚꽃이 담긴 그림. 가끔가다 저 그림을 볼 때면 교토의 봄날이 스르륵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