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서 차박을 하려고 찾은 경주 나정 고운모래 해변. 정말 이름 그대로 모래가 아주 고왔다. 부들부들 고운 모래 위에서 수영을 하면 기분이 째질 것 같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았던 탓에 수영은 패스했다. 그저 먼 바다를 바라보며 힐링하는 걸로 만족하기로 한다.
구름이 얼룩덜룩하게 낀 날이었다. 바람도 꽤나 불어서 수영하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해변의 파라솔들을 보면 왠지 휴양하러 온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밀짚 모자를 쓴 것 같던 파라솔 근처에 차를 세워 두었다. 해변에 가깝게 주차할 수 있어 바다를 보며 차박하기 딱이었다.
이제 제법 차박 셋팅에 능숙해진 우리는 후다닥 차 트렁크를 열고 차박 텐트를 설치했다. 그리고 안에 매트를 깔아 놓고 테이블과 버너 등등 캠핑 용품들을 차례차례 밖으로 꺼냈다. 그리고 출출한 배를 달래러 요리를 시작했다.
편의점에서 산 저렴한 화이트 와인 한 병, 냉동 닭꼬치, 토마토, 무화과를 준비했다. 그리고 와인과 함께 먹을 요량으로 치즈도 챙겨왔다.
지글지글 구이바다로 구워먹는 닭꼬치는 정말 맛났다. 버너의 불길이 직접 닿아서 그런지 불맛이 최고였다. 육즙 촉촉히 담긴 닭꼬치를 맛나게 먹고, 토마토와 무화과를 구워먹었다. 뭐든지 구우면 맛이 배가 되는 것 같다. 닭기름에 구운 토마토와 무화과는 꿀맛이었다.
1차로 닭꼬치를 먹고 2차로는 돈마호크를 구워 먹었다. 커다란 돼지고기를 그릴 위에 올려 놓고 구워 먹었다. 지글지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돼지고기 구이가 완성되고, 와인과 함께하니 너무 맛있었다. 돈마호크는 근처 정육점에서 사온 것이었는데 연기 걱정 없이 센 화력에 화르륵 구울 수 있어 좋았다. 집에서 해먹은 것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다.
먹다 보니 서서히 세상은 어두워졌다.우리는 작은 조명을 꺼내서 불을 켰다. 온통 시커매서 먼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파도소리는 잔잔하게 계속 귓가에 들려왔다. 누군가가 해변에서 불꽃놀이를 시작했다. 우리는 의자에 앉아서 누군가가 쏜 불꽃들을 바라 보았다. 검은 하늘 위에서 밝게 타오르는 불꽃, 아름다웠다.
파도소리를 듣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영화 한편을 보았다. 집에서 챙겨온 노트북이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어떤 영화를 볼까하다가, 방금 전에 본 불꽃을 보며 떠올랐던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기로 했다.
남편은 본 적이 없는 나만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였다. 내용은 잘 기억 안나는데 불꽃이 터지던 장면은 또렷하게 기억났다. 좋은 영화에 좋은 장소와 좋은 사람, 행복한 기억들이 덧붙여졌다. 바람 맞으며 밖에서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너무 좋아 앞으로 노트북을 계속 들고다녀야겠다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강렬한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비가 어찌나 많이 오던지 차창 밖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휘몰아치던 비가 조금씩 그치고 세상이 좀 보이기 시작할 때 주섬주섬 밖으로 나와서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아침식사는 집에서 챙겨온 인스턴트 카레와 햇반. 구이바다에 슥슥 비벼서 볶아 먹었다. 구이바다를 사고 아주 오래도록 우려 먹고 있다. 라면도 끓이고 밥도 볶아 먹고 고기도 구워먹고,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할 것 같은 구이바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텐트를 접고 철수를 시작했다. 날이 좋은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