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에서 이른 아침을 맞이했다. 일어나 보니 6시 40분 쯤이었다. 숙소가 참 안락하고 편안했는데 이상하게도 잠을 설쳤다. 침대 위에 누워 잠에 들려고 하니 모든 자세가 불편하게 느껴져서 자꾸만 뒤척였다. 그래도 일찍 일어났으니 여유롭게 나갈 준비를 마쳤다.
방에서 나와 설렁설렁 복도를 지나 1층으로 내려왔다. 고요한 잘츠부르크의 아침, 조식을 먹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여느 숙소에서 먹었던 조식들과 비슷하게 빵과 햄, 치즈, 과일과 야채들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커다랗고 하얀 티팟이다. 티팟에 원하는 차를 양껏 우려서 자리에 가져다가 마실 수 있었다. 쌀쌀한 아침에 따뜻한 캐모마일 티를 마시니 몸이 따뜻하게 녹아 내렸다. 하지만 너무 많이 마신 탓일까 나중에 화장실이 급해서 곤란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에는 캐모마일을 몸 속에 들이 부은 나를 엄청 저주했었다.
내가 앉은 자리 오른편으로는 아름다운 종탑과 분수대가 보였다. 이런 곳에서 내가 아침을 먹고 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꿈만 같은 일이다. 종소리가 귓가에 들려올 때면 어찌나 황홀하던지! 잘츠부르크라는 도시를 꼭 다시 찾자 그리고 그 때도 이 곳에 묵으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게스트하우스 임 프리스터세미나(Gästehaus im Priesterseminar Salzburg). 이 곳에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미리 예약해놓은 숙소들 때문에 일정을 변경할 수가 없었다. 혼자하는 여행이었고 예산도 빡빡했던터라 유럽에 오기 전 미리 한국에서 모든 숙소들을 예약했었다. 저렴하고 괜찮은 숙소들은 인기가 많아 여행 중 예약이 불가능할 수도 있으니까. 일정을 변경할 수 없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다음 유럽 여행에서도 똑같이 할 것 같다.
숙소를 나와서 미라벨 궁전 쪽으로 걸었다. 언제나 나와 함께하는 길잡이는 구글맵이다. 실시간 위치를 열심히 눌러가며 비내릴 것 같은 축축한 공기의 잘츠부르크를 걸었다.
가는 길에 갑자기 나타난 장터는 무척 신기한 광경이었다. 천막 아래에서 싱싱한 야채와 과일들, 치즈, 햄, 각종 식료품들을 가득 팔고 있었다. 잘츠부르크에서 일주일 정도 살아볼 기회가 생긴다면 여기서 재료를 듬뿍 사서 요리를 해먹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어짜피 혼자라서 재료들을 사봤자 잔뜩 남고 처치곤란, 한국에서처럼 결국은 사먹겠지? 흐흐.
담벼락 안으로 들어서니 거대하고 화려한 정원이 나타났다. 미라벨 궁전 앞 정원은 꽃이며 나무며 모든 것들이 사람의 손을 타서 잘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푸른 잔디 위로 노랗고 붉은 선명한 빛깔의 꽃들이 한가득 피어 있었다. 위에서 바라보면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일 것 같았다. 정원을 거닐며 보이던 대리석 조각들에서는 오랜 세월이 느껴졌다.
궁전이 지어졌을 당시에는 '알테나우(Altenau)'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가 '미라벨(Mirabell)'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여기에는 꽤나 복잡한 이야기가 얽혀있다. 이 궁전은 1606년에 잘츠부르크의 주교 볼프 디트리히(Wolf Dietrich)가 그의 연인 살로메 알트(Salome Alt)를 위해 만든 것이다. 알테나우라는 궁전 이름은 그녀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성직자는 오직 신만을 섬기고 사랑해야 했으나 주교는 상인의 딸이었던 살로메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둘 사이에는 열명이 넘는 자식이 있었다고 한다.
훗날 볼프 디트리히 주교는 호엔잘츠부르크 성에 5년간 감금되었다가 죽음을 맞게 된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로 보인다. 주교는 잘츠부르크를 '로마'처럼 만들고 싶은 욕심에 여러 공사들을 무리하게 진행했었고 자신의 연인과 자식들을 위해 화려한 궁전을 지었다. 게다가 독일 바이에른과의 소금 전쟁에서 불명예스럽게 도망을 가버렸다. 그는 끝내 해임되어 성에 갇혔고 그를 대신해 마르쿠스 시티쿠스(Markus sittikus)가 주교가 되었다. 마르쿠스 주교는 전임 주교의 불명예스러움을 떨쳐버리고 싶었던 것인지 궁전의 이름을 미라벨(Mirabell)로 바꾸었다.
이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던 아름다운 장면은 호엔잘츠부르크성이 올려다보이고 그 앞으로는 푸른 잔디와 꽃, 분수가 뿜어져나오는 풍경이었다. 궁전을 만든 이는 저기 멀리 보이는 성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나는 그 덕분에 지금 이자리에 서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이겠지. 사리사욕을 위해 궁전을 짓고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았을텐데, 지금 와서는 이 궁전을 보러 수많은 사람들이 잘츠부르크를 찾아오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간다.
생각의 꼬리의 꼬리를 물다가 씁쓸함을 맛볼 때면 굳이 내가 이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멀리서 온 이방인이고 그저 내 눈앞에 놓인 아름다움을 즐기고 가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마냥 좋을텐데 왜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인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누군가의 고통으로부터 만들어진 것 같아 슬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