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각사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
해가 질랑말랑하는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이 시간이 되면
길게 늘어진 그림자와 노란 햇살 덕분에
온 세상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은각사(긴카쿠지) 근처에
아름다운 길이 하나 있다.
철학자의 길(哲学の道 데쓰가쿠노미치)이라 불리는 곳이다.
봄이면 벚꽃이 한가득 피어나고
개천위로 하얀 눈송이같은 녀석들이 흩날린다.
가을이면 단풍으로 물들어
황홀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길이다.
지금은 벚꽃도 단풍도 없는 초록 여름.
뭐 어때?!
햇살이 좋으니 신록을 만끽하며
철학자의 길을 천천히 걸어보았다.
일본의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이 길을 자주 산책했다고 하여
철학자의 길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가 누군지 잘 모르니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다.
예전에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갔었을 때
철학자의 길을 걸었었는데
같은 이름이지만 풍기는 느낌은 전혀 달랐다.
개천이 흐르는 반대편으로는
조그만 가게들이 줄지어있었다.
어딜 들어가든 다 맛있을 것만 같았다.
난 배가 무척 고팠으니까...
이름을 지어주기 전에는
그냥 많은 길들 중에 하나였을 뿐일테다.
철학자의 길이라는 색이 입혀지며
특별한 장소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었다.
이름이 붙여지고
그래서 특별해졌어도
이곳에 찾아오지 않았다면
내 기억속에서 서서히 잊혀졌을 것이다.
이렇게 찾아왔고
때문에 의미있는 곳이 되었고
그러니 아마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난 또 다시 이 곳에 찾아오겠지?
다시 찾아올 날에는
왠지모르게 나 혼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이고 싶었다.
혼자 여행도 좋지만 둘도 좋고 셋도 좋다.
좋은 풍경들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올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는다.
편의점에 들러 사과쥬스를 하나 골라서 나왔다.
목이 말랐던터라 쭈우욱 들이켰다.
행복한 하루가 끝나간다.
멀리 파란 하늘에는 달이 떠있었다.
떠오르는 날과 지는 태양
철학자의 길을 따라 걷다가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