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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주 산골 영화제에서 보낸 하루
    우리나라 방방곡곡/전라도 2021. 6. 2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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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제9회 무주 산골 영화제를 찾았다. 코로나 시국이라서 제대로 즐길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영화제에서 보낸 하루는 생각보다 더 재밌고 즐거웠다. 무주는 예전에 스키장 근처 펜션을 예약하고 놀러 온다고 한 번 와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무주는 처음이었다. 낯선 도시에 들어서니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고 기분이 들떴다.




    이번 무주 산골 영화제는 미리 표를 예약한 사람만 영화제를 즐길 수 있었다. 영화제 티켓오픈을 하자마자 금방 매진되어 버려서 티켓팅이 정말 어려웠다. 우리는 겨우 1일 이용권을 구해서 산골 영화제에 올 수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뿐, 그래서 미리 영화제 스케줄표를 보고 보고 싶은 영화들을 점찍어 왔다. 무주 등나무 운동장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예체문화관으로 갔다. 예체문화관에서 신분증 검사를 한 뒤 손목에 매는 티켓을 수령했다. 티켓 예매 전 안내 페이지에 티켓 양도가 불가능하다고 고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신분증 검사를 철저히 진행했던 것 같다.




    반딧불이로 유명한 무주 답게 반딧불이 캐릭터들이 곳곳에 보였다. 아이 러브 무주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몇 컷 찍고 등나무 운동장으로 향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어떤 공연이나 영화를 관람하려면 시작하기 1시간 전에 예정된 장소에 가서 대기표를 받아야 했다. 코로나 때문에 인원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 같았다. 1일 관람권이 있다고 무조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미리미리 대기표를 받으러 시간 맞춰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제일 먼저 방문했던 곳은 등나무 운동장이다. 'Wave to Earth'의 공연이 오후 1시 즈음에 시작한다고 해서 미리 대기표를 받으러 갔다. 왜 등나무 운동장인가 싶었는데 정말 등나무가 엄청 많아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었다. 커다란 잔디밭을 두르며 원형 극장처럼 좌석이 줄지어 있었고, 푸르른 이파리가 돋아난 등나무들이 좌석에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잔디밭 위는 땡볕이라서 오래 서있기 힘들었는데 등나무 그늘 아래 서면 햇빛도 막고 바람이 불어와 시원했다.




    잔디밭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하얀 천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무주 산골 영화제 관련된 기념품들을 살 수 있는 부스가 있어서 먼저 찾아갔다. 귀여운 컵과 포스터가 담긴 린넨 조각을 하나 샀다. 기념품 부스 옆으로는 작은 캠핑카가 하나 서있었다. 여기서 마실 것들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콜드브루 커피 한 잔과 레모네이드 한 잔을 샀다. 무더운 날, 텀블러에 담아 시원하게 두고두고 잘 마셨다.




    대기표를 받고 나서 잠깐 천막 아래에 돗자리를 피고 앉아 있었다. 점심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일단 근처 편의점에 가보기로 했다. 등나무 운동장을 나가서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면 바로 편의점이 나왔다. 편의점 음식들로 떼울까 하다가 왠지 아쉬운 마음에 배달을 시켜먹기로 했다. 편의점에서는 콜라와 종이컵만 챙겨 왔다. 배달 어플로 근처 피자집에 피자를 하나 시켜 놓고 등나무 운동장으로 돌아왔다.




    공연장에 들어와서 mjff 깃발이 꽂힌 자리 뒤에 돗자리를 폈다. 그런데 땡볕 아래에서 공연을 관람해야 해서 좀 곤욕스러웠다. 양산과 우산을 하나씩 들고 와서 천만 다행이었다. 우산을 쓰니 햇빛이 가려져서 그나마 견딜만 했다. 텀블러에 담아온 시원한 커피와 레몬에이드도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배달 시킨 피자를 먹으며 공연을 봤다. 웨이브 투 얼스(Wave to Earth)라는 그룹은 무주 산골 영화제 덕분에 처음 알게 되었다. 아무런 기대 없이 왔는대 음악이 참 좋아서 반하게 되었다. 특히 마지막 곡인 'wave'를 할 때는 모두가 신이 나서 흥이 넘실거려 축제 분위기였다. 그 때 들었던 노래들은 따로 기억해 뒀다가 지금까지도 자주 듣고 있다.




    공연을 다 보고 나서는 산골책방과 배우 안재홍과 관련된 부스를 구경했다. 산골책방은 구색이 적고 공간도 협소했던지라 들어 갔다가 금방 다시 나왔다. 그래도 실내는 에어컨이 빵빵해서 더위 식히기에 좋았다.



    안재홍 부스는 평소에 이 배우에 대해 관심이 없던터라 그다지 감흥은 없었다. 무주 산골영화제의 '넥스트 엑터'는 매년 배우 한 명을 선정해 대중들에게 소개해는 개념인 것 같았다. 안에 들어가보니 그가 출연했던 작품들이 연달아 소개되어 있었고, 작품마다 입었던 옷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배우를 향한 질문과 답변들, 내가 느끼기에는 단편적인 내용들이 주류라서 배우에 대해서 깊이 알아가거나 뭔가를 느끼기는 힘들었다.




    다시 등나무 운동장으로 온 우리. 등나무 그늘 아래 앉아 필름 카메라로 사진도 찍고 일기도 끄적였다. 역시 이곳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코로나 시국 전처럼 북적거리거나 활기차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영화제가 열려 맛보기 느낌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고 좋았다. 점점 더 상황이 나아지길 바래본다.



    등나무 운동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영화 '말아'를 보러 갔다. 아무런 기대 없이 보게 되었다가 정말 괜찮은 기억으로 남았던 영화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 그리고 출연한 배우들과 함께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영화를 보며 궁금했던 점들을 질문하고 감독과 배우들의 생각을 듣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노을이 어렴풋이 하늘에 깔려 있었다. 출출한 배를 채우러 식당을 찾아왔다. '금강식당'이라는 곳이었는데 어죽으로 유명한 역사 깊은 식당이었다. 주변에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사실 별 기대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생각 외로 너무 맛있었던 어죽. 진하고 고소한 국물에 말아진 밥을 떠 먹었다. 들깨향이 은은하게 나고, 민물고기가 갈려서 들어가 있어 비린맛이나 흙내가 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전혀 비리지 않았다. 맛있어서 호다닥 한 그릇을 다 먹었다. 다음 날에도 이 어죽이 생각나서 한 그릇 또 먹고갈 뻔 했다. 다음번 무주 영화제에 오게 된다면 구수한 어죽을 먹으러 꼭 다시 이곳에 와야겠다 다짐했다.




    근처 모텔에 하루 숙박을 잡아 두었던터라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고 다시 등나무 운동장으로 왔다. 우리의 영화제 마지막 스케줄은 '자산어보'를 보는 것이었다. 야외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예전에 전주 영화제에서 'Trash'라는 영화를 야외 어딘가에서 본 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안으로 들어가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돗자리를 폈다. 낮처럼 덥지 않아 다행이었다. 밤은 선선해서 영화 보기에 딱이었다. 불빛에 날아드는 벌레들이 좀 문제이긴 했지만 말이다. 자산어보 이준익 감독이 와서 무대 인사를 잠깐 하고 들어갔다.




    밤하늘 아래 돗자리를 피고 누워 영화를 보는 기분은 이루말할 수 없이 좋았다. 자산어보라는 영화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여름밤 잔디밭 위에서 본다는 것은 아마도 평생 한번 뿐인 일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지금 순간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자산어보가 끝나고 우리는 천막이 있는 잔디밭으로 다시 나왔다. 체력만 좋았다면 그리고 배가 고프지 않았다면 이어 나오는 영화를 봤을텐데 말이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괜히 아쉬웠다. 새카만 밤하늘 천막 주위를 두르고 있는 전구들은 마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자산어보가 끝난 뒤 상영한 영화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이었다. 영화 속에서 재즈가 흘러 나오고 멀리 우리에게 닿았다. 고요한 천막 아래는 마치 우리 둘만의 무도회장 같았다. 둘이 손을 잡고 재즈 선율에 맞춰 춤을 추었다. 춤을 추는 순간 우리는 영화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평생 기억에 남을 행복한 추억을 남기고 등나무 운동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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