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든 탓에 이른 아침이 되니 절로 눈이 떠졌다. 하지만 전혀 개운하지 않았다.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조식을 포기할 수는 없었으니 밍기적거리며 일어났다. 아침에 양껏 먹어 두어야 꽉차고 든든한 기분으로 여행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잘츠부르크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부지런히 짐 정리를 마치고 이틀동안 머물렀던 정든 방을 나섰다. 조식을 먹으러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부쩍 쌀쌀해진 것 같았다. 온몸이 으슬거리며 한기가 가득 느껴졌다. 짐을 한켠에 놓아 두고 복도에 자리 잡은 조그만 의자에 앉았다. 주황 식탁보가 놓여진 테이블 위로는 하얀 꽃병과 싱그러운 꽃, 기분 좋은 아침이다.
벽 사이로 보이는 아름다운 분수대를 바라보며 아침식사를 했다. 메뉴는 언제나 비슷한 빵과 치즈, 각종 야채와 과일, 요거트 등등. 쌀쌀한 날씨였지만 공기는 더 맑고 시원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니 온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잘츠부르크라는 도시와 이 숙소는 유럽 여행 중 손꼽을 정도로 좋았기에 떠나기 너무 아쉬웠다. 마음 같아서는 며칠 더 머무르다 가고 싶을 정도였다.
다음 숙소를 미리 예약해두지 않았더라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예산을 조금이라도 아껴보려는 마음에 미리 환불 불가였던 숙소를 예약해 놓았던지라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나의 다음 행선지인 고자우제(Gosausee), 인터넷을 아무리 검색해보아도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도대체 내가 여길 왜 가겠다고 굳이 일정에 넣고 숙소도 미리 잡아둔 것일까! 낯선 곳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강하게 솟구쳐 더욱 떠나기 싫었나보다.
그래도 가야지 뭐 별 수 있나! 체크아웃을 마친 후 캐리어를 이끌고 숙소에서 잘츠부르크 중앙역 버스터미널까지 걸었다. 고자우제로 가기 위해서는 잘츠부르크(Salzburg)에서 바트이슐(Bad Ischl)로 갔다가, 바트이슐에서 다시 고자우제(Gosausee)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잘츠부르크 중앙역 버스 정류장에서 바트이슐 가는 150번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오르면서 기사님께 목적지를 말하면 표를 끊어 주신다. 10.5유로짜리 표를 받아 들고 구석탱이에 자리 잡고 앉았다. 버스에 오른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따위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너무 소변이 마려웠기 때문이다.
정말 무지하게 고민했다. 기사 아저씨에게 '저 지금 내리겠습니다'라고 외쳐야할까? 내리면 또 그 다음은 어떻하지? 다음 버스를 기다리다가 잡아 타고 가야 하나? 아니야, 조금만 더 참아볼까? 시계만 계속해서 보게 되고 초조, 불안, 걱정 등 온갖 나쁜 감정에 사로잡혔다. 조금씩 싸서 말려볼까라는 극단적인 생각(?)에 이르렀을 즈음 바트이슐에 도착했다. 참고 견뎌낸 내 자신에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캐리어를 끌고 나가서 WC로 직행했다. 다행스럽게도 바트이슐역 화장실은 무료였기에 광속으로 급한 볼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그 순간! 버스에 오르기 전 분명 잘츠부르크 중앙역에 있는 유료 화장실에 다녀왔음에도 이 사단이 났다. 휴, 크나큰 교훈을 얻었다. 앞으로 버스 타기 전이라면 물은 정말! 정말! 자제하자!
화장실에 다녀오고 난 뒤 평온한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렸다. 내가 탈 버스는 542번 버스, 이 버스의 종점이 바로 고자우제이다. 버스에 올라 6.8유로짜리 표를 구입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름다운 풍경이 차창 너머로 보이기 시작했다. 잘츠부르크에 있는 내내 흐린 날씨었는데 고자우제 가는 길은 날이 참 좋았다. 푸른 하늘 사이로 떠있는 흰 구름들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 버스 안에 타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의 행선지는 아마 할슈타트(Hallstatt)였나보다. 사실 나도 원래 계획대로라면 할슈타트에서 이틀을 머물렀을 것이다. 우연찮게 고자우제 사진을 보게 되면서 일정이 틀어졌지만 말이다. 우르르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리고 나와 어느 노부부만이 버스에 남아 고자우제로 향했다.
드디어 도착한 고자우제,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내가 묵을 숙소가 떡하니 있더라. 고자우제에 단 하나뿐인 식당이자 숙소인 이 곳 Gasthof Gosausee. 조심스럽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간단하게 체크인을 마치고 방키를 받았다. 캐리어를 끙끙거리며 겨우 들어 올려 2층으로 왔는데 도저히 방을 찾지 못하겠더라.
방을 찾아 헤매다가 왠지 모르게 사무실(?) 같아 보이는 방을 발견해 슬며시 들어가서 내 방이 어딘지 여쭈어 보았다. 사무실 안에 있던 아저씨는 내 방키를 보시더니 내 방은 윗층에 있다고 하셨다. 그 때 윗층이라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었나보다. 아저씨께서 피식 웃으시며 내 캐리어를 들어주시더니 방문 앞까지 옮겨 주셨다.
방문을 여니 아늑한 싱글룸이 나타났다. 혼자 쓰기에 부족함 없는 넓은 방이었다. 포근한 침대와 데스크, 그리고 화장실이 안에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TV에서는 BBC 월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늦은 저녁, 혼자 방 안에서 바깥 세상 소식을 들으며 심심함을 달랠 수 있었다. 발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아름다운 고자우 마을의 모습이 펼쳐졌다. 어짜피 고자우제에는 숙소가 이 곳 하나뿐이니 선택권이 없었지만, 참 좋은걸?
대충 짐을 풀어두고 곧장 고자우 캄반을 타러 숙소를 나섰다. 고자우 캄반을 타는 곳은 고맙게도 숙소 바로 옆이었다. 두근두근, 위에서 내려다보는 고자우제는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