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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자우캄반을 타고 츠비젤알름에 오르다.
    나홀로 유럽 여행기/오스트리아 2021. 7. 2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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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자우제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숙소 바로 옆에 고자우캄반을 탈 수 있는 매표소가 있었다. 고자우캄반을 타고 츠비젤알름(Zwieselalm)에 오르면 고자우제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호수의 모습은 어떨까?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조심스레 들어섰는데 건물 안은 텅 비어 있었고 매표 창구도 닫혀 있었다. 한낮인데 운행을 안할리는 없고 당황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며 이제 무얼 해야하나 고민에 빠졌다. 그 때 내가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창구 안에 있던 직원이 문을 열고 나왔다. 13.9유로인 왕복 표를 끊어 주고는 곧장 입장표의 바코드를 찍고 같이 케이블카에 올랐다.




    케이블카를 타고 꽤 위로 올라.갔는데 그 높이가 어마어마했다. 잘츠부르크 운터스베르크 케이블카를 탔을 때는 주위가 온통 흰 구름으로 가득차서 세상이 하얗게 보였었다. 그 때와는 다르게 고자우캄반을 타고 오르며 보이는 하늘은 무척 맑았다.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점점 더 멀어져가는 발 아래 마을의 모습이 아찔했다.


    고자우캄반 시간표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한쪽 벽 옆에 고자우캄반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시간표상으로는 꽤 자주 운행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사실 케이블카를 타려는 사람이 있으면 그제서야 운행하는 것 같았다. 직원 한 명이 모든 걸 담당하고 있는 듯 했고 고자우캄반을 타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내가 왔던 9월이 비수기였는지 아니면 늘상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높은 산 위로 올라와 트래킹을 하려고 보니 잘츠부르크 운터스베르크에서 한없이 걸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걷게 될지 또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전혀 몰랐다. 어짜피 이틀간 고자우제 바로 옆 숙소에서 머물 예정이라 나에게는 시간이 많았다. 때문에 여유롭게 고자우(Gosau)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천천히 여행할 수 있었다.


    고자우 호수, 고자우제(Gosausee)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짙푸른 고자우 호수가 나를 계속 쫓아왔다. 밤길을 걸을 때 달이 계속 나를 따라오는 것 같은 기분과 비슷했다. 멋있는 풍경에 신이나서 필름 카메라를 집어들고 사진을 몇장 찍었다. 찍는 도중에 필름을 다 써버려서 '이제 필름을 좀 갈아야겠군'하는 생각으로 카메라 뚜껑을 열었다.

    아뿔싸! 바보같이 필름을 다 감지 않은 채로 카메라를 열어버렸다. 이미 필름 곳곳에 빛이 들어가 사진은 엉망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급히 카메라 뚜껑을 닫았지만 이미 늦은 기분이었다. 근데 한참 뒤에 필름을 스캔해서 받아보니 벌겋게 탄 사진도 나름의 추억으로 남았다.


    이번 여행 나와 함께한 펜탁스 MX


    빛을 받아 타버린 고자우제 사진


    달력 그림처럼 비현실적이게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있으니 한참을 멈춰 서있게 되었다. 깊은 웅덩이 같은 호수 위로 푸른 하늘이 담겨 있었고 그 주위로 쭉쭉 뻗은 나무들이 빼곡했다. 멀리 보이는 산꼭대기 위에는 켜켜히 쌓인 눈이 보였다.






    길 주변 풀밭 위로 소들이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나가는 길목 바로 옆에 있어서 자세히 소를 관찰할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소가 엄청 컸다. 나는 괜히 혹시라도 소가 다가올까봐 겁이 나서 걷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소들은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소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고 폭신한 흙을 밟으며 돌아 다니고 햇살도 쬐며 그렇게 지내는 모습이 보기 참 좋았다.





    나는 목적지 없이 그저 나있는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이 길의 끝이 어딘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냥 마음 내키는 곳까지 걷고 싶었다. 그렇게 혼자 걷고 있는데 주위에 간간히 보이는 사람들 모두 삼삼오오 짝을 지어 왔더라. 적어도 지금 이 시간만큼은 혼자 온 사람이 나 뿐인 듯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 괜히 울적해지며 외로움이 몰려왔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 행복할 것만 같은 그런 풍경들의 연속이었다. 걷고 걷다보니 재미난 일이 생겼다. 멀리서부터 총총총 다가오는 꼬마 아이가 보였다. 아이의 기다란 금빛 머리칼은 꽁 묶여 있었다. 뭔가 쭈뼛거리는 몸짓으로 나에게 오더니 Hallo라고 인사를 건넸다. 나도 반갑게 Hallo라고 인사해 주었는데 꼬마 아이는 쑥스러운지 부모에게 달려갔다.





    내 느낌으로는 엄청난 거리를 걸어온 것 같았다. 심지어 가는 도중 고자우캄반이 아닌 다른 케이블 카도 나왔다. 곳곳에 표지판이 있었지만 어떤 곳인지 알 턱이 없었다. 되돌아가는 길을 기억하면서 가자 다짐하며 계속 걸었다. 그렇게 정처없이 걷다보니 환상적인 풍경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고자우제(Gosausee)가 한눈에 쏙 들어왔다. 그리고 멀리 마을의 모습도 보였다. 탁 트인 공간에 우뚝 서서 먼 호수를 바라보았다. 마주쳤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나 혼자 뿐이었다. 경쾌한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들리는 것은 웅웅거리는 바람 소리 뿐이었다.

    갑자기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게 되면 항상 그랬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독서실에 틀어박혀 매일매일을 똑같이 살았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용기를 내서 비행기 표를 끊었고 어쩌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이 아름다움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내가 떠나더라도 고자우제는 이 자리에 그대로 있겠지. 먼훗날 다시 찾을 날을 떠올리며 먼 호수를 두 눈에 한껏 담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로 했다. 하얀 구름을 머금고 있던 푸른 고자우제야 안녕, 눈 덮힌 뾰족한 산도 안녕, 초록빛깔 무성한 나무들도 안녕! 한참을 걸어 왔기에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돌아가는 길은 꽤 시간이 걸렸다.




    고자우 캄반을 타고 내려가는 길, 올라올 때와는 다르게 케이블카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걷는 내내 보이지 않던 사람들은 어디 있다가 이렇게 나타난 것인지 도통 모르겠더라. 올라올 때 표를 끊어 주었던 직원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갈 때도 함께했다. 내려가서는 아늑한 숙소에 잠시 들러 쉬다가 고자우제를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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