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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자우제에서 아침 그리고 저녁나홀로 유럽 여행기/오스트리아 2021. 8. 3. 11:11728x90반응형
고자우제를 한바퀴 다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잤다. 일어나고 보니 커튼을 쳐 둔 탓일까 방 안에 빛이 들지 않아 어둑어둑했다. 노란 빛을 내뿜는 등을 켜두고 TV를 틀어 보았다. 따뜻한 불빛과 TV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먼 타국의 게스트하우스가 마치 내 방처럼 아늑하게 느껴졌다.
자고 일어나니 배가 출출해졌다. 뭐라도 좀 먹을까 싶어 밖으로 나섰다. 아직은 대낮마냥 훤한 늦은 오후에 저녁을 먹게 되었다. 계단을 따라 1층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내가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 고자우제(Gasthof Gosausee)'에서는 숙박 외에도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었다. 고자우제에 유일한 식당이다 보니 손님들이 꽤나 있었다.
메뉴를 보며 고르고 고르다 시킨 것은 로스트 치킨! 코코넛 라이스와 커리소스가 함께 나오는 요리였는데 맛이 꽤 괜찮았다. 고소한 코코넛 향이 스며든 쌀밥, 다만 쌀이 흐물흐물 힘없이 부서지는 느낌이라 포크로 먹기는 힘들었다. 아마도 안남미였겠지? 커리에 슥슥 비비니 밥알끼리 엉켜 먹기가 훨씬 수월했다. 잘 비벼둔 밥에 촉촉하게 익은 치킨을 얹어 먹으니 그럴싸하더라. 다만 양이 많아서 다 먹지는 못했다.
유럽 와서 징하게 먹었던 애플쥬스, 여기서도 고민하다가 결국 애플쥬스를 시켰다. 나는 달큰한 사과쥬스를 좋아하는 편이다. 보통 한국의 어느 식당에 들어가 쥬스 메뉴를 찾아 보면 거진 다 오렌지 쥬스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항상 아쉬웠는데 유럽을 다니다 보니 어딜가나 오렌지 쥬스는 기본이고 사과쥬스도 항상 있었다. 그래서 여행 중에 사과쥬스를 원없이 실컷 먹고 왔다.고자우제에서 이른 저녁식사
그렇게 배부르게 먹고 나서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올라 내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가서 침대로 직행! 핸드폰으로 한국 예능을 찾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멀리 여행을 와서 밖에 나가지 않고 안에 틀어박혀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본다는 것이 우습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을 떠나 유럽에 온 뒤 점점 시간이 흐르면 흐륵수록 한국에서의 일상들이 몹시 그리워졌다. 특히 숙소에 들어와 혼자 있을 때 그런 생각들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소소하게 보내던 내 일상들, 즐겨가던 카페며 식당이며 모든 것들이 극심하게 그리웠다.
일찍 누워 잠들었더니 하루는 금세 끝이 났고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시계를 쳐다보니 10시간을 넘게 잠을 잤더라. 유럽 여행 중에는 다음날 제 시간에 일어나지 못할 상황을 대비해서 항상 알람을 맞춰 두었다. 하지만 알람을 들으며 깨어난 적은 거의 없는 듯 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떠버린 것이다. 보통 이렇게 깨어나면 스르륵 다시 눈을 감고 잠들기 마련인데 유럽 여행 중에는 그렇지 않았다. 일단 눈을 뜨면 정신이 너무나 또렷해져서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여행의 긴장과 두근거림 때문에 그런 것일까?
눈을 뜨니 잠이 오질 않아 발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잠깐 바깥 공기를 들이 마셨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를 머금은 상쾌한 풀내음이 훅 풍겨왔다. 내 눈 앞으로는 스멀스멀 하얀 물안개가 피어 올랐다.
어제 늦은 오후까지도 푸르른 빛깔이던 호수는 검은 물을 탄 듯 칙칙해져 있었다. 정박된 배는 비를 막기 위해서 비닐로 꼼꼼하게 싸여 있었다. 호수를 두르고 있는 높이 솟아오른 산맥 주위로 구름들이 지나 다니는 모습이 신비로웠다.
전날 저녁 식사를 했던 레스토랑에서 조식을 먹었다. 구름이 꽉끼고 비가 와서 그런지 아침이어도 어둑했다. 유리창문 너머로는 구름들이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조식은 뷔페였는데 메뉴는 다른 곳들과 비슷했다. 어딜가나 항상 나오던 빵과 햄, 치즈, 토마토, 오이, 파프리카 등등이었다. 따뜻한 빵에 다양한 치즈와 햄을 얹고 신선한 야채들과 함께 먹으면 별다를 것 없는 아침이어도 꿀맛이었다.고자우제에 하나 뿐인 레스토랑
뜨끈한 커피와 함께 아침을 먹으면 부드럽게 목 뒤로 넘어가 많이 먹어도 부대끼지 않았다. 이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커피이다. 개인 주전자에 뜨거운 커피를 가득 담아 주셔서 양껏 먹을 수 있었다. 뜨거운 우유도 함께 주셨는데 커피와 섞어 먹으니 고소하니 든든했다. 일기장을 들춰보니 커피 이야기가 잔뜩인데 사실 분위기에 취해 더 맛있었던 것 같다.아침 식사! 초점이 나간 사진밖에 안남았다
이 날은 할슈타트에 다녀오기로 계획했던 날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고자우제에서 할슈타트로 가려면 542번 버스를 타야했다. 시간표를 확인해 보니 10시 정각에 첫 버스가 오더라. 9시 50분 즈음에 미리 정류장에 나가서 기다렸다. 정류장은 바로 숙소 옆 이었다.
비는 점점 더 거세게 내렸다. 주륵주륵 내리는 비를 우산으로 맞서며 꽤나 기다렸다. 이윽고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기사 아저씨께 할슈타트에 간다고 말한 뒤 5유로를 내고 버스에 탑승했다. 차창밖 풍경을 바라보니 왠지 익숙했다. 어제 버스를 타고 고자우제로 들어오면서 왔던 길을 지나고 있었다. 두근두근 고대하던 할슈타트로 간다.반응형'나홀로 유럽 여행기 > 오스트리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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