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어느 날 비오는 할슈타트나홀로 유럽 여행기/오스트리아 2021. 8. 9. 15:44728x90반응형
고자우제에 머물렀던 나는 버스를 타고 할슈타트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 고자우제 정류장에서 542번 버스를 타고 쭉 가다가 중간에 버스가 멈춰섰다. 버스 기사는 할슈타트로 갈 사람은 옆 버스로 갈아 타라고 외쳤다. 할슈타트로 가려는 사람들은 옆에 대기하고 있던 543번 버스로 갈아탔다.
만약 542번 버스가 도착했을 때 543번 버스가 없다면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아마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듯 싶다. 두 버스는 서로를 기다리는 애틋한 운명인 것이다. 시간 배차가 어긋나서 혹시나 환승하지 못하고 할슈타트행 버스를 놓치면 어쩌나 걱정했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나보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내내 비가 참 자주 왔던 것 같다. 비가 오다 그치다를 반복하니 우산을 항상 챙기고 다녀야 했다. 또 하나 꼭 챙기고 다녔던 것은 목도리이다. 비가 오면 날씨가 급격하게 추워져서 뭐라도 목에 둘러야 따뜻했다. 할슈타트에 갔던 이날도 아침부터 비가 계속해서 내렸다. 파랗고 맑은 하늘 아래 산과 호수의 모습을 기대했건만, 날이 갤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할슈타트에 도착했다. 비에 젖어 있는 마을에 발을 내딛었다. 촉촉히 젖어있는 풀잎들과 꽃들이 화사하게 길을 밝혀 주었다. 구름에 막혀 햇살은 들지 않았지만 물기 어린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비가 와도 할슈타트는 매력적이었다.
할슈타트는 아름다운 호수 위에 떠있는 듯한 마을 풍경 외에도 소금 광산과 철기시대 유적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 가치를 인정 받아 할슈타트 마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기자기한 장식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골목마다 즐비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니 비도 피할겸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소품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무얼 많이 사오지는 못했다. 무거운 캐리어를 여행 내내 들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쉽사리 살 수가 없었다. 무게가 가벼운 엽서나 조그만 기념품들 위주로 골라 담아 구입했다.
할슈타트는 생소하던 '오스트리아'라는 나라에 오게끔 이끈 곳이었다. '혼자 유럽 배낭여행을 가자!'라고 결정하고 난 후,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가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 때 떠오른 곳이 할슈타트였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인터넷에 올라온 할슈타트 여행기를 본 적이 있었다. 빵 굽는 냄새가 퍼지는 조그만 마을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 다녔다는 어떤 여행자의 글이었다. 글에는 할슈타트의 사진들이 몇 개 담겨 있었다.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할슈타트의 풍경은 한 눈에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언젠가 이 마을에 꼭 가보리라 작은 다짐을 했었다.
그 뒤로 시간이 한참 흘렀다. 유럽여행을 가기로 결심하고 보니 어릴적부터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이 조그만 마을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이 마을에 가기 위해 '오스트리아'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에 맞게 유럽 여행을 계획해 나갔다.
거센 바람에 물이 출렁이는 모습을 보니 호수가 바다같이 느껴졌다. 내가 날을 참 기가 막히게 맞춰서 왔나 보다. 오래 전부터 와보고 싶던 할슈타트에 마침내 오게 되었으나 이렇게 비바람이 몰아치다니 말이다. 그래도 어쩌랴! 쏟아지는 비를 막을 수 없으니 말이다. 맑은 날이 더 좋았을 것 같아 아쉬움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비오는 날의 할슈타트도 나름의 멋이 있었기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다.
우산을 쓰고 비에 젖은 할슈타트 거리를 걸어 다녔다. 꽃으로 꾸며놓은 뾰족한 지붕의 알록달록한 집들이 가득했다. 한국에서 늘상 보던 마을 풍경을 떠올려 보았다. 네모난 집들 그리고 초록색 방수 페인트로 덧칠해진 옥상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늘상 보아온 곳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 더 눈이 가고 아름답게 느껴졌나 보다.
걷다보니 배가 무척 고파져서 밥을 먹을 식당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유리창 너머로 호수가 보이는 뷰 좋은 어느 큰 식당이 마음에 들었다. 점심을 먹으려고 들어갔건만 2시부터 영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지금이 몇시인가 시계를 바라보니 오전 11시 30분이었다. 한참을 기다려야했기에 식당을 되돌아 나왔다.
방황하다가 우연히 어느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 안은 많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았는데 아마 단체로 여행오신 것 같았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웃음짓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모두 독일어였다. 모두가 정다워 보이는 공간 안에서 나만 혼자라는 사실이 괜스레 슬퍼지는 순간이었다.
구석진 곳에 혼자 자리잡고 앉았다. 조명이 밝지 않은 탓인지 어둑어둑했다. 붉은 초에 붙은 조그만 불이 은은하게 자리를 비춰주었다. 울적해진 나를 알아 본 것일까? 종업원은 친절하게 날 맞아 주었다.
메뉴판을 받아들고 고민에 빠졌다. 무엇을 시켜야 하나? 독일 밤베르크 장미정원에서 샐러드와 맥주를 맛나게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그 때처럼 가볍게 먹기로 하고 카프레제 샐러드와 맛있어 보이는 맥주 하나를 주문했다. 맛있는 샐러드와 맥주 한 잔을 들이키니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취기가 조금 올라 붕 뜬 기분으로 식당을 나섰다.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비가 내려도 룰루랄라 신나게 걸어다녔다.
샐러드와 맥주만 먹었는데도 배가 터질듯이 불렀다. 다시 할슈타트 거리를 걸으며 배를 꺼트렸다. 이미 싹 다 둘러본 기념품 샵에 다시 들어가 보기도 하고 구석구석 골목들을 헤집고 다녔다.
마을이 조그만해서 반나절도 안되어 모든 길들이 익숙해졌다. 할슈타트는 소금 광산이 유명하니 기념삼아 소금 몇 봉지를 샀다. 그리고 할슈타트 풍경이 그려진 그림 엽서도 골라 사왔다. 이제 정류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고자우제로 다시 돌아가려는 길,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유료 화장실에 들렀다. 할슈타트에 한국인들이 많이 찾아 오는지 한국어 안내문구가 화장실 문에 붙어 있었다. 하지만 구글 번역기를 돌렸는지 어색한 문장이 적혀있었다.
'화장실에서 종이를 던져 주십시오'
이 말은 아마도 변기에 휴지 넣어달라는 이야기 같았다. 구글 번역기가 완벽하지는 않구나 싶었다. 영어를 보고나서야 화장실에 종이를 던지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이해할 수 었었다. 하하하.
구름이 자욱한 하늘 아래 너른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그 호수 위에 둥둥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을을 한참동안 바라 보았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할슈타트를 떠올리면 이 장면이 단박에 떠오른다. 산 속 자리잡은 호수 위 떠있는 마을 그리고 뾰족하게 솟아오른 빨간 지붕.
오전에 타고 왔던 543번 버스를 타고 되돌아 갔다. 올 때 그랬던 것처럼 중간에 멈춰서서 542번 버스로 갈아 탄 뒤에 고자우제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3시가 다 되었다. 침대에 털썩 누워 꿀맛 같은 낮잠을 잤다.반응형'나홀로 유럽 여행기 > 오스트리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자우제에서 빈으로 5시간 걸친 이동! 마침내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하다 (0) 2021.08.30 비 오는 날 고자우제 하이킹 (0) 2021.08.11 고자우제에서 아침 그리고 저녁 (0) 2021.08.03 나홀로 고자우제 한바퀴 산책 (0) 2021.08.03 고자우캄반을 타고 츠비젤알름에 오르다. (0) 2021.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