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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고자우제 하이킹나홀로 유럽 여행기/오스트리아 2021. 8. 11. 23:25728x90반응형
할슈타트에서 고자우제로 넘어오니 오후 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곧장 숙소 안으로 쏙 들어갔다. 방 안은 내 집마냥 편안하고 포근했다. 피곤이 몰려와서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침대 위에서 잠을 푹 잤다.
대략 한 두시간 정도 잤던 것 같다. 두 눈를 부비적 거리며 일어나서 이제 무얼 해볼까나 생각해 보았다. 창밖을 보니 하늘은 우중충하고 곧 비가 올 듯 했다. 버스를 타고 또 다시 어디로 갔다 오기에는 체력적으로 힘들었기에 고자우제나 한바퀴 돌아 보기로 했다.
고자우제는 비구름에 잠겨 있었다.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조금씩 비가 내렸다. 걷는 동안 으슬으슬 추워져서 경량패딩 위에 외투를 하나 더 껴입었다. 우산을 쓰고 걷다가 사진을 찍고 또 걷다가 사진을 찍고를 반복했다. 구름과 뒤섞인 산과 호수 풍경이 아름다워 계속해서 멈춰서게 되었다.
하이킹을 하는 도중에 커다란 안내판을 하나 보게 되었다. 그런데 모두 독일어로만 되어 있어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고자우제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아도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아마도 이 안내판이 고자우제에 대해서 가장 자세히 설명해 놓은 글인 것 같았으나 알아 들을 수 없으니 답답했다. 이래서 언어를 배워야하나 보다.
비가 꽤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 때문인지 지나 다니는 사람들을 보기가 힘들었다. 홀로 산길로 들어섰을 때 추적추적 비만 내리고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갑자기 멧돼지가 튀어나오면 어떻게 하지? 산짐승들의 공격을 받아 쓰러지기라도 하면 아무도 날 찾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럼 이대로 죽는 것일까?
나의 엉뚱한 공포는 곧 사라졌다. 아름다운 풍경에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다. 스멀스멀 호수 위로 하얗게 날서린 물안개들이 지나다녔다. 그리고 아름다운 반영이 떠 있었다. 숲 속 요정이 갑자기 튀어나올 듯한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비 내리는 날이라 그런지 코 끝에 닿는 흙냄새가 참 좋았다. 빗소리를 들으며 호수를 옆에 두고 걸었다.
호수를 한바퀴 도는 와중에 이정표를 발견했다. 비가 꽤 많이 내리고 있었지만 호기심이 생겨 이정표를 따라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 보았다. 위로 오르다 보니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호수를 두르고 있는 산봉우리들이 보였다.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들 아래로 울창한 숲이 보였다.
나는 나있는 길을 따라서 계속해서 걸었다. 그러나 곧 길이 끊기고 말았다. 파헤쳐진 흙무더기들과 잘린 통나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길을 만들다가 공사가 중단된 것일까? 물에 젖어 흙이 질척거리니 산길을 걷기가 힘들었다. 경사는 점점 더 가파르게 느껴졌고 여전히 사람은 눈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또 으스스해진 나는 산 위로 오르던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고자우제를 두르고 있던 평평한 길로 돌아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시 마음이 편안해졌다.
비 내리는 고자우제를 바라보니 푸르스름하고 오묘한 물빛이 꼭 제주도 바다 같이 느껴졌다. 손수건을 꺼내 벤치에 깔아 두고 잠시 그 위에 앉아 홀로 시간을 보냈다. 우산 위로 똑똑똑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멍하니 호수를 보며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들었다. 주위가 고요하니 음악소리가 귓가에 크게 울렸다. 이 세상에 나만 있는 것 같았다.
고자우제 주위를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꽃들을 많이 보았다. 비를 맞아서 잎사귀와 꽃잎들이 촉촉히 젖어 있었다.
고자우제 숙소 앞 호숫가 쪽에 기념주화를 만드는 기계가 있었다. 2유로였던가? 동전을 넣고 꾸욱- 손잡이를 돌려주면 동전에 고자우제 풍경이 찍혀 나온다. 동전은 날아갔지만 기념할만한 무언가가 생겨서 기뻤다. 신나게 기념주화를 만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점심에 할슈타트에서 샐러드와 맥주, 빵만 먹었을 뿐인데 배가 꺼지지 않고 계속 불렀다. 숙소에 딸려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으나 글러먹었다. 방 안에서 맘놓고 쉬기로 했다. 한국 예능을 보면서 이불 위에서 뒹굴뒹굴 하다가 잠들었다. 그렇게 고자우제에서의 마지막 날이 지나갔다.반응형'나홀로 유럽 여행기 > 오스트리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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