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의 여행 중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유독 기억에 남는 곳이 생기기 마련이다. 잘츠부르크는 나에게 그런 도시였다. 지난 여행을 되돌아볼 때면 제일 먼저 잘츠부르크가 떠오르곤 한다.
멀리 언덕 위로 보이는 호엔잘츠부르크 성이 아름다웠다
잘츠부르크에 머물렀던 내내 잿빛 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항상 비가 올 듯 말 듯한 날씨여서 늘 가방에 우산을 넣고 다녀야 했다. 이런 흐린 날씨가 잘츠부르크라는 도시와 은근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중 마주한 도시의 옛스러운 분위기는 칙칙한 날씨로 더 증폭되는 듯 했다.
숙소에 체크인을 한 후에 짐을 풀어두고 밖으로 나왔다. 제일 먼저 숙소 근처에 있는 모짜르트 본하우스(Mozart Wohnhaus)로 향했다. 모차르트가 빈으로 떠나기 전에 살았던 집으로 현재는 모차르트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잘츠부르크 카드를 이용해 모차르트 본하우스에 입장한 뒤 한국어 오디오를 받았다.
체크인을 할 때 숙소 스텝에게 잘츠부르크 카드 (48h)를 구입했었다. 이 카드로 잘츠부르크 내 버스, 운터스베르크 케이블카, 호엔잘츠부르크성 푸니쿨라 등을 모두 이용할 수 있었다. 잘츠부르크에 머무르는 동안 주요 관광지들을 모두 가볼 생각이라면 각각 입장권을 끊는 것보다 '잘츠부르크 카드'를 이용하는 것이 더 저렴하다.
운좋게 연주홀에 전시된 오래된 검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건반마저도 검은색이었던 신기한 피아노였다. 촬영 금지라 찍을 수는 없었던터라 오로지 내 기억 속에만 남은 장면이다. 하얀 장갑을 낀 손가락이 검은 건반위로 쉴 새 없이 움직였고, 홀 전체에 울려 퍼지던 선율은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을 매혹시켰다.
사실 우연찮게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게 된 것 외에는 그다지 임펙트 있게 남은 기억은 없다. 항간에 떠도는 어린 모짜르트 사진이 가짜라는 소문과 쿠겔 초콜릿에 대한 여러 사연들 정도가 생각난다.
모차르트 생가 안에 있던 샵에 들어서니 사람들로 가득했다. 가게 안은 모차르트와 관련된 온갖 상품들로 즐비했다. 평소에 모차르트에 대한 별다른 생각이 없었기에 그냥 가려고 했는데 멀리서 잘츠부르크까지 오게 되었으니 기념삼아 뭐라도 사가려고 가게 안을 둘러보게 되었다. 모차르트 음악이 시리즈로 담긴 CD를 선물용으로 하나 집어 들었다. 이제 모차르트는 안녕, 호엔잘츠부르크 성으로 향하는 푸니쿨라를 타러 갔다.
잘츠부르크 강
구글 지도를 켜고 푸니쿨라를 찾아가는 길. 탁하게 황토빛으로 변한 잘츠부르크 강을 마주하게 되었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 올라 잠시동안 비에 젖은 도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그쳤다 내리다를 반복했다. 괜시리 울적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날씨 탓인지 혼자인 탓인지.
일부러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찬찬히 도시의 모습을 구경했다. 나에게는 정해진 스케줄도 없고 시간은 넘쳐나니 일단 막 걸었다. 잘츠부르크에는 흔히 보아왔던 높은 고층 빌딩들이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오랜 세월동안 터잡고 있던 옛스런 건물들로 가득했다. 먼 이국땅에 왔으니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는 것은 당연할테지만, 시간적으로도 현재가 아닌 오래된 과거의 어느 시대처럼 느껴졌다.
여유롭게 거닐던 중 머리 위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고 바람도 세차게 불어 우산을 두 손으로 들고 서있기도 힘든 상황이 되었다. 비는 내 온 몸을 향해 내리쳐서 겉옷이 축축히 젖어들고 있었다.
때마침 눈앞에 성당이 나타나 운좋게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유럽 여행 중 쉴틈 없이 걷느라 다리가 너무 아플 때 혹은 밖이 춥거나 비가 미친듯이 내릴 때, 그럴 때마다 성당은 좋은 휴식처가 되어 주었다. 누구하나 눈치볼 것 없이 조용히 들어가 쉬었다 나올 수 있는 곳이 바로 성당이었다.
잘츠부르크 대성당
내가 들어갔던 곳은 '잘츠부르크 대성당'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웅장한 규모의 홀이 나타나고, 높다란 돔구조의 천장 위로 아름다운 조각들과 벽화들이 보였다. 그리고 천장을 바라보던 고개를 조금 아래로 내려 보면 2층가에 자리잡고 있는 파이프 오르간을 보게 된다. 이 성당에는 모차르트가 연주했던 유럽 최대 규모의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운이 좋다면 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도 있다고 들었다.
잘츠부르크 대성당잘츠부르크 대성당의 파이프오르간
잘츠부르크에서는 매년 7월~8월에 걸쳐서 음악 축제가 열린다. 축제가 열리는 때에 맞춰 잘츠부르크를 다시 찾아 가고 싶다. 몇년이 지난 뒤에 가더라도 왠지 잘츠부르크 거리들은 생생히 기억날 것만 같다.
잘츠부르크 대성당
휴식을 취한 뒤에 성당을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비는 더이상 내리지 않았다. 조금 쉬었을 뿐인데도 몸이 가뿐해졌다. 다시 힘을 내어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