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바다와 아름다운 꽃들 그리고 맛있는 음식까지,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꼭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었다. 이렇게 일찍 2달여 만에 다시 찾게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백야도 선착장에서 8시에 출발하는 첫배를 타고 하화도에 들어갔다. 백야도에서부터 제도와 개도를 들렀다 가는 배는 하화도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하화도 가는 배표는 인터넷 예약이 되지 않아 백야도 매표소에서 현장발권을 해야한다. 주말이었는데도 사람이 별로 없어 여유롭게 표를 끊고 배에 올라 탔다.
푸른 바다는 상쾌하고 시원해 보였지만 햇볕 내리쬐는 배 밖에 서있으면 타 죽을 것 같이 더운 날이었다. 바깥으로 나가 섬들을 잠깐 구경하다가 안으로 들어와 대자로 뻗어 누웠다. 파도가 심한지 배가 흔들흔들거렸다. 멀미가 심한 남편은 배에서 내린 뒤에도 한동안 몸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하화도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을 듣고 잠에서 깼다. 바깥으로 나가니 멀리 익숙한 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배가 육지에 닿고 차례차례 한사람씩 배에서 내렸다. 코로나19 시국인지라 섬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 모두 열체크를 한 뒤에 입도할 수 있었다. 우리를 제일 먼저 반겨준 것은 하화도가 적힌 비석이었다. 그리고 활짝 핀 분홍색 무궁화가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입도를 하자마자 제일 먼저 가고 싶었던 곳은 바로 '꽃섬식당'이었다. 저번에 와서 기가 막히게 맛있었던 한 끼를 먹었던 곳이다. 이번에는 섬에 들어오자마자 식당으로 가서 아침식사부터 해결하고 섬을 돌아보기로 벼르고 왔다.
저번에 먹었던 해물쌈밥을 먹을까 아니면 생선구이를 먹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먹어보지 못했던 생선구이를 시켰다. 둘 다 먹을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두 메뉴 다 2인이 기본 주문이라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생선 두 마리가 통째로 구워져 나왔다. 한 마리는 참돔 다른 하나는 민어라고 하셨다. 다 회로만 먹어봤지 구이로는 먹어 본 적이 없는 생선이었다. 겉은 바삭바삭 속은 촉촉, 역시 하나를 잘하는 집은 모든 메뉴가 맛있구나! 민어가 맛은 더 고소했고 식감은 참돔이 더 쫄깃했다. 아무튼 둘 다 너무너무 맛있었다.
생선은 뼈만 남았고 밥도 한공기를 뚝딱했다. 남은 반찬들이 너무 아까웠지만 배가 불러서 도저히 더는 먹을 수 없었다. 기분 좋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한 뒤 식당을 나서려는데 꽃섬식당 사장님께서 산 오를 때 마시라며 꽝꽝 언 생수 두 통을 주셨다.
감사하다 인사 드리고 이제 진짜로 막 식당을 떠나려는데, 사장님이 급하게 우릴 다시 부르더니 하얀 통을 건네주셨다. 무언가 하니 진드기 기피제였다. 그리고는 절대 풀 숲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걱정되셨나 보다. 사장님의 친절 덕분에 각종 벌레들에게 물리지 않고 꽃섬길을 한바퀴 돌 수 있었다.
저번 봄에 왔을 때는 낭끝 전망대와 시짓골 전망대를 들렀다가 선착장으로 돌아 왔었다. 이번에는 가보지 못한 루트를 돌아 보기로 했다. 야생화 공원과 구절초 공원을 지나 막산 전망대를 거쳐 선착장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걸었다.
야생화 공원 쪽으로 옆에 바다를 끼고 걸었다. 멀리 주황색 꽃들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나리꽃이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 나리꽃이 한창 필 시기인 것 같았다. 나리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야생화 공원 부근에 텐트촌이 마련되어 있는데 날이 더워서 그런지 텐트가 하나도 없었다. 저번에 봄에 왔을 때는 텐트로 자리가 꽉 차 있었는대 말이다. 야생화 공원을 지나고 텐트촌을 거쳐서 위로 올라갔다.
하화도에 왜 이리도 사람이 적은지 알 것도 같았다. 그리 높지도 않은 언덕을 오르는데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날이 더운 것은 둘째치고 습도가 높아서 가만히 있어도 불쾌지수가 높은 날인데 언덕을 오르고 있으니 말이다. 헥헥거리며 구절초 공원에 도착했다.
봄에 왔을 때 보았던 금계국들은 이제 거의 다 저물어서 드문드문 피어있을 뿐이었다. 그 때 서있던 나무는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멀리 구름낀 하늘과 섬, 바다가 보였다. 날이 흐렸으니 망정이지 해가 쨍쨍한 날이었으면 가다가 쓰러졌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날은 이리도 더운데 멀리 내려다 보이는 바다는 어찌 이리도 푸른지. 가만히 전망대 데크 위에 서있으니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녹아내린 얼음물을 마시면서 더위를 식혔다. 절벽 부근에는 나리꽃과 달개비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주황색과 파란색이 은근히 잘 어울렸다.
푸른 숲길을 걷다가 바다 위를 걷는 것 같이 느껴지던 나무 데크 위를 걸었다. 큰산 전망대에 다다르자 왼편으로 가파른 절벽이 내려다 보였다. 절벽 위에는 역시나 주홍빛 나리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여름은 나리의 계절인가 싶을 정도로 나리꽃이 많았다. 가파른 절벽과 바다, 아름다운 섬의 풍경이었다.
다시 걷고 걸어 깻넘 전망대에 도착했다. 깻넘 전망대 앞으로는 큰 나무들이 즐비해서 바다를 바라보기가 어려웠다. 아마도 언젠가 저 나무들이 잘리지 않을까 싶었다. 벤치가 있어서 잠깐 쉬면서 얼음물로 목을 축였다. 꽃섬식당 사장님이 주신 얼음물이 없었으면 큰일날 뻔 했다.
가다가 안내판에 영어만 쓰여 있길래 하화도가 참 국제적인 관광명소구나 싶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안내판 위가 뚝 잘린 것 같아 보였다. 난간에 기대 아래를 내려다 보니 추락주의 안내판 위쪽 부분이 땅에 나뒹굴고 있었다. 추락주의 안내판이 추락한 상황에 웃음이 나왔다. 다음번에 오면 고쳐져 있을런지 모르겠다.
깻넘 전망대를 지나 조금 걸으니 드디어 꽃섬다리가 나타났다. 여기저기서 사진으로는 많이 봤는데 이렇게 직접 보게 되니 반가웠다. 이제 다리를 건너야하는데 괜찮을 줄 알았건만 꽤나 무서웠다.
번지점프도 아무렇지도 않게 탄 나였는데 이 다리 위는 어찌나 무섭게 느껴지던지! 발 아래로 아찔한 절벽 아래가 내려다 보여서 걸어가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바람이 불어오는지 다리가 흔들거렸다. 내 다리가 흔들리는지 꽃섬다리가 흔들리는지 모를 정도로 흔들려서 혼이 쏙 빠졌다.
다리 위가 무섭긴 했지만 내려다 보는 풍경이 끝내줬다. 양 옆에 가파른 절벽이 서있고 그 아래로 절벽에 부딪힌 파도가 하얀 거품을 내며 부서지고 있었다. 직각 모양으로 뾰족하게 솟은 절벽의 모습을 보니 제주도에서 보았던 주상절리가 떠오르기도 했다.
다리를 건너 막산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에 서서 내려다 보이는 저 섬이 막산인 것일까? 커다란 돌 섬 위로 나무들이 빽빽히 자라나 있었다. 파도는 계속해서 섬 쪽으로 들이치며 찰싹찰싹 소리를 냈다. 섬을 계속 바라보다 보니 가끔씩 새가 섬쪽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자유로이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는 새가 부러웠다.
막산 전망대를 기점으로 한바퀴 돌아 가까이 먼 섬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꽃섬다리를 건너지 않고 아래쪽으로 내려와서 선착장을 향해 걷기로 했다.
야생화 공원쪽으로 다시 옆에 바다를 끼고 걸었다. 이 길들은 포장이 잘 되어 있어 쉬이 걸을 수 있었다. 풀이 많이 자라난 흙길을 걸을 때면 벌레들 때문에 약간 긴장한 상태로 걸었었다. 이렇게 잘 정돈된 길을 걸으니 마음 편히 걸을 수 있었다.
해변에 물이 많이 빠져서 돌맹이들이 다 드러났다. 남편은 샌들을 신고 와서 잠깐 바닷물에 발을 적셨다. 바닷물은 여태 흘렸던 땀들이 다 씻기는 것처럼 시원하다고 했다. 여름에는 역시 산이 아니라 바다인가? 오늘 하루 트레킹을 했는지 무더위와 전투를 한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다시 야생화 공원을 지나서 하화도에 하나뿐인 카페에 들렀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원하게 들이키니 살 것 같았다. 아무래도 여름날 트레킹은 무리인가 싶다가도 지나고 나니 그 무더위는 사라지고 걸으며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들이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사람은 정말 망각의 동물인가 보다.
12시 50분에 백야도로 향하는 배가 들어왔다. 우리는 매점에서 산 아이스크림을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 배이 올라 탔다. 하화도 안녕! 아마도 구절초가 피는 가을에 다시 한 번 이곳을 찾게 될 곳 같다. 그렇게 사계절을 다 둘러보고 나면 나에게 하화도는 정말 잊지 못할 섬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