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성을 나와서 한적한 숲길을 걸었다. 걷고 또 걷다보니 종국에는 익숙한 풍경이 나타났다. 어디로 가야할까 고민하다가 시내를 거닐다 우연히 발견했던 선제후 박물관(Kurpfalzisches Museum)으로 발길을 옮겼다. 배가 고파서 박물관에 가기 전에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길에 보이던 어느 샌드위치 가게에 무작정 들어갔다. 고소한 바게트 빵 사이에 모짜렐라 치즈와 루꼴라, 토마토가 들어간 샌드위치를하나 샀다.
유럽여행 중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은 샌드위치였다. 어디론가 걸어 가면서 들고 먹을 수 있고 값이 저렴해서 자주 사서 먹었다. 그리고 모짜렐라치즈, 토마토, 바질 조합이면 절대 실패가 없었다. 냠냠 샌드위치를 먹으며 걸어가다가 근처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샌드위치만 먹으니 목도 막혔고 더위도 식힐 겸 얼음 가득 든 음료가 먹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길가 한블럭 마다 보이던 카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너무 흔해서 내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소중함을 몰랐었나 보다. 유럽 땅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찾기란 약간의 과장을 더하면 하늘에 별따기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을 수 없다면 얼음 가득한 음료는 어떠한가? 이 마저도 찾기가 힘들었다. 문득 유럽 땅을 거닐다가 얼음 가득한 시원한 커피가 먹고 싶다면 곧장 스타벅스에 들어가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커피를 팔 것 같은 곳 안에 들어가면 카페(여긴 커피를 카페라 부른다), 카푸치노 등등 따뜻한 커피만 팔고 있다. 차가운 커피가 있느냐 물으면 아이스크림이 동동 뜬 어설프게 차가운 커피 뿐.
스타벅스에서 시원한 음료로 목을 축이며 휴식을 취하고 난 뒤 선제후 박물관(Kurpfalzisches Museum)으로 이동했다. 학생은 1.8유로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내부 전시관 규모가 엄청나서 다 돌아보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전시관에는 하이델베르크와 관련된 수많은 소장품들이 시대별로 전시되어있다. 귀족들의 초상화나 가구, 조각, 그림 작품에서부터 하이델베르크에서 발견된 고대 유물들까지. 다만 안내멘트들이 대부분이 독어로 되어있어서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몇몇의 경우만 영어로 적혀있다. 대학교 때 재미로 독일어를 공부해보고 교양 수업도 찾아 들었건만, 박물관 안내멘트를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깊게 기억에 남아있는 곳은 현대 미술 작품들이 모여있던 전시관이다. 전시해 놓은 공간 자체가 굉장히 감각적이고 아름다웠다. 백색의 벽체와 천장, 투명한 유리창을 스쳐지나온 햇살이 은은하게 전시관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하이델베르크 풍경을 그려놓은 여러 그림들은 방금전 내가 보고 온 하이델베르크를 떠올리게 했다.
전시장에서 나와 인상적이었던 작품이 프린트 된 엽서를 하나 구입했다. 친절하신 매표소 직원분과 인사를 나누고 이제 숙소로 되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살짝 배가 고파져서 박물관 들어가기 전 먹다 남겼던 샌드위치 반쪽을 흡입했다. 내가 내렸던 트램역 근처로 걸어갔다. HD hauptbahnhof(하이델베르크 중앙역)이 적힌 아무 버스나 타고 가자는 심정으로 무작정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와중 맞은편에 DM(DM은 우리나라 마트 같은 곳이었다)이 보이더라. 계속 피가 나는 내 발 뒤꿈치를 해결하기 위해 밴드를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마트를 향해 걸었다. 마트에 간 김에 다음날 아침에 먹을 요플레나 과일 같은 것들도 사서 버스를 타고 중앙역으로 향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완전히 뻗어 버렸다. 하루종일 엄청나게 걸은 것 같았다. 발부터 좀 씻고나서 피가 나는 발 뒤꿈치에 밴드를 붙였다. 푹신한 침대 위에 조금만 누워볼까 하다가 잠에 빠져 들었다. 인터넷 카페에서 구한 동행분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기에 꿀맛 같은 잠을 멈추고 어기적 어기적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숙소 근처 네카강변에 있는 'Das Boothaus '라는 식당을 찾았다. 나는 생선요리를 시켰는데 맛은 그저 그랬다. 그런데 콜라는 정말 맛있었다. 원래 콜라를 잘 안마시는데 유럽에 와서는 줄기차게 콜라를 시켜 먹었다. 그놈의 탄산수를 먹느니 내가 콜라를 먹겠다, 괜한 반항심 같은게 생겨서 콜라를 계속 주문했다. 저녁을 먹고 다시 숙소에 돌아와서는 대자로 뻗어 누웠다. 여행 초반이라 내 욕심히 과했던 것일까? 이제 좀 쉬엄쉬엄 다녀봐야겠다. 아니 그보다 더, 무작정 걷지 말고 대중교통도 좀 이용해보자는 생각을 하며 잠들었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