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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성(Heidelberg Schloss)에 오르다나홀로 유럽 여행기/독일 2021. 4. 28. 23:21728x90반응형
하이델베르크 시내를 걷다가 성으로 향하는 케이블카 탑승장을 발견했다. 전날 미리 사두었던 하이델베르크 카드 2일권을 이용해서 케이블카를 탔고 하이델베르크 성에도 입장할 수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러가는 개찰구에는 작은 구멍이 하나 있었다. 한국에서 지하철을 탈 때 표를 구멍 안으로 넣었던 습관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하이델베르크 카드를 구멍 안으로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구멍은 터무니 없이 작았고 계속 시도하다 보니 개찰구쪽에 파란불이 켜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카드를 슬쩍 구멍 위에 스치기만 해도 개찰구를 지나갈 수 있었다. 민망스러운 웃음을 터트리며 도대체 이놈의 구멍은 왜 있는거야 궁시렁거리며 지나왔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성에서 하이델베르크 전경이 내려다 보였다. 철학자의 길에서 보았던 모습보다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철학자의 길이 강의 위쪽 느낌이라면 하이델베르크 성은 강의 아래쪽 느낌이었다. 붉은 지붕의 집들이 초록으로 물든 산 밑에 오밀조밀 모여 있었고 네카강과 오래된 붉은 다리가 보였다.
하지만 이 모습 속에 하이델베르크 성도 함께 있어야 온전한 하이델베르크를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처음으로 본 하이델베르크 전경이 그러했기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붉은 지붕들과 섞여 어울리지 않는 듯 덩그러니 서 있었던 하이델베르크 성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성에 올라오니 성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전혀 못했었다. 철학자의 길에 서서 보았던 하이델베르크 전경이 떠올라 괜히 아쉬워졌다.
이후 파리에 갔을 때 에펠탑 꼭대기에 오를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오르지 않았다. 에펠탑에 오르면 에펠탑 없는 파리를 보게 될테니까. 아마도 난 그때 하이델베르크 성이 없는 하이델베르크 전경이 떠올라서 그런 선택을 했던 것 같다.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수국을 만났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을 타국에서 만나니 무지 반가웠다. 수국은 성벽 틈새에서 줄기를 뻗어내 꽃을 피워냈다. 깻잎 같이 생긴 잎 위로 몽글몽글한 꽃송이들이 가득했다. 물을 너무 좋아라해서 이름이 수국인걸까? 이 조그만 틈에서 꽃을 피워냈으니 갸륵하기도 하면서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본 하이델베르크 성은 온전하지 못했다. 성은 기나긴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금이 가거나 무너진 성벽들 사이로 파릇파릇한 이파리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오래된 세월이 느껴졌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른 아침 철학자의 길을 산책할 때는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었는데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온 세상 사람들을 다 보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한국인들을 마주치게 되었다. 물론 그 많은 한국인들 중 혼자 온 이는 나 혼자 뿐이었다. 사진을 서로 찍어주고 겸사겸사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는데 한국말을 내뱉는 것 만으로도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혼자 올 생각을 했느냐, 대단하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혼자 유럽에 오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같이 갈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2년여간 시험을 준비했고 대학교를 졸업했다.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인 때, 취업 전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자유시간이었다. 그동안 공부하느라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모조리 다 해버리겠다는 마음이었다. 나는 이 세상을 치열하게 누려보고 싶었다.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가 아내 엘리자베스를 위해 만든 엘리자베스의 문을 지나가게 되었다. 엘리자베스는 영국 공주로 프리디리히 5세와 정략결혼으로 맺어졌으나, 둘은 서로를 사랑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문을 하루만에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문을 사랑하는 연인과 걸으면 평생 이어진다는데 정말 그럴까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짜피 나는 혼자라 해당사항도 없으니 후다닥 지나왔다.
성을 둘러보고 난 뒤, 사람이 너무 많고 북적거려서 더 있을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철학자의 길을 산책할 때는 사람이 별로 없어 고요했다. 혼자 조용히 풍경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도 하기가 좋았다. 가져간 필름카메라로 하이델베르크를 담아보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글도 끄적거렸었다.
하지만 이 복작이는 성에서는 무엇하나 하기가 싫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만 혼자처럼 느껴져서 그랬을까? 아니면 번잡한 이 곳이 정신 없게 느껴져서였을까? 아니면 아침부터 시작된 여정에 지치고 힘들어서였을까? 아마 모든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는 이곳을 떠나고 싶었나 보다.
나의 의지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여행 그리고 매 순간순간마다 도래하는 선택의 시간. 나의 선택으로 모든 일들이 펼쳐진다. 발 뒤꿈치에서 피가 나고 다리가 저려와도 괜찮다. 내가 걷고자 해서 벌어진 일들이니까. 그리고 힘들면 그냥 멈추고 쉬어가면 되니까 말이다.
혼자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가고 또 멈출 수도 있었다. 하이델베르크 성을 내려갈 떄는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푸른 나무들이 가득한 초록빛으로 물든 숲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평화로운 숲길, 도처에 깔린 초록 빛깔들이 내 기분을 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어폰을 꺼내 두 귀에 끼워넣고 음악을 틀었다. 볼륨을 있는대로 높이고 혼자 길을 내려갔다. 복작거리던 세상에서 나만의 세상으로 순간이동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혼자 길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너무나도 신이나고 행복했다. 이 길의 끝은 어딘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걸어본다. 뚜벅이는 어쩔 수 없나보다. 걷고 또 걷는다.반응형'나홀로 유럽 여행기 > 독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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