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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델베르크 시내(Haupt Strasse)를 거닐다
    나홀로 유럽 여행기/독일 2021. 4. 2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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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부터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길을 산책을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숙소를 향해 걸었다. 왔던 길을 따라 돌아가지는 않았다. 썰렁했던 주택가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어제 거닐었던 네카 강변 공원이 생각나서 그 곳을 거쳐 숙소로 가기로 했다.




    숙소로 되돌아가는 이유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핸드폰을 충천하려고 보조배터리를 챙겨갔는데 그 둘을 연결하는 잭을 두고 왔기 때문이다. 차라리 보조배터리를 안들고 왔더라면 되돌아가지도 않았으려나? 아니다. 점점 힘을 잃어가는 핸드폰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구글 맵을 통해 모든 곳을 찾아다니던 나는 핸드폰이 없으면 미아나 다름 없었다.




    네카 강변 근처 공원을 지나가는데 어제는 보지 못했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강변에 오리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주변에 무수히 흩어져있는 오리 털과 똥 무더기. 어제 이곳에 왔을 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오리들은 절대 피하거나 날아가지 않았다. 인간들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아나보다.

    엉뚱하게도 이 오리들을 보며 길가에 자주 보이던 비둘기들이 떠올랐다. 분명 내가 꼬마였을 때 비둘기들은 슬쩍 다가가기만 해도 퍼더덕 하늘로 솟아 올랐다. 요새 비둘기들은 내가 옆으로 지나가도 본체만체하며 어디로 날아가지 않고 두 다리를 쫑쫑거리며 제갈길을 간다. 도시 생활에 그리고 인간에 익숙해진 비둘기를 보며 알 수 없는 씁쓸함을 느꼈었다.




    비둘기에 대한 생각에 잠깐 빠졌다가 다시 오리에게로 생각이 넘어갔다. 유유자적 풀을 뜯고 있는 너희들은 참 좋겠구나. 푸르른 하늘 밑에서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혼자 다니니 별생각이 다 든다.

    독일에서 마주한 동물들은 참 행복해 보였다. 특히 개들이 그랬다.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젊은 여성, 남성, 아이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개들을 데리고 다녔다. 공원을 산책하고 식당 안으로 개들을 데려오고 관광지에도 개들을 데리고 왔다. 본인들 뿐만 아니라 개들에게도 세상의 아름다운 광경들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모든 순간을 함께하고 싶은 것일까?

    그리고 우리나라와 달리 아주 큰 개들이 많았다. 대형견을 키우는 것이 대중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돌아다니면서 소형견들은 별로 보지를 못했다. 물론 이 모든 생각들은 일주일 정도밖에 안되는 짧은 독일 여행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말이다.




    공원을 지나서 계단을 올라 네카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야 했다. 다리를 건너기 위해 올랐던 굴다리 계단이 기억에 남는다. 시멘트 벽에 그래피티가 가득했다. 외국 드라마나 영화에 한 번쯤은 나왔을 법한 풍경이었다. 방황하는 아이들이 상주하고 스펙타클한 일들이 벌어지는 그런 장소일 것 같다고 괜히 상상해본다.

    혼자 이 계단을 지나가려고 하는데 왠지 심장이 떨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제도 이곳을 지나 왔었는데 근처에서 보드타는 아이들을 보았다. 분명 아이들 같은데 덩치가 나보다 2배는 더 컸던 것 같았다. 지나다니며 본 독일 사람들은 대체로 체격이 엄청났다. 문화적으로도 그렇고 신체적으로도 나는 그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존재였다.




    걷다보니 어느새 숙소 근처에 다다랐다. 단 하루를 지냈을 뿐인데 벌써 숙소가 집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새로운데 하루일 뿐이라도 이곳은 그나마 익숙해서 그런가? 묵직한 무게의 쇠 냄새 풍기는 열쇠로 공동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를 때 창가 너머로 빛바랜 낙엽이 가득하던 놀이터가 보였다. 놀이터에 사람이 한명도 없는 것을 보니 갑자기 쓸쓸함이 훅 다가왔다.

    혼자 다니는 내가 쓸쓸했기에 마주한 풍경도 덩달아 쓸쓸해 보였던 것일까? 문을 덜컹 여니 고양이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호스트는 집에 없었다. 나는 보조배터리와 핸드폰을 연결하는 잭만 챙겨들고 서둘러 숙소를 나왔다.

    다음 행선지는 하이델베르크 성이다. 성에 가기 위해 중앙역으로 가서 뭐라도 타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하이델베르크 중앙역까지 다시 걸어가는 길, 다리가 무지 아팠다. 하이델베르크 2일권 카드를 샀지만 어제부터 한 번도 이용해보질 못했다.




    중앙역까지는 잘 왔는데 하이델베르크 성에 가려면 무엇을 타야할지를 몰랐다. 유명한 관광지니까 안내판이 잘 되어 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걷는가 보다 .

    버스 정류장에서 노선도를 보고 있는데 어떤 트램이 정류장 앞으로 들어왔다. 무작정 트램에 올라타서 기사분에게 하이델베르크 성에 가는 트램이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이시더라.  그렇게 어쩌다 보니 하이델베르크 성에 가는 트램을 타게 되었다.

    나는 하이델베르크 카드를 기사분께 보여주고 탔는데, 나중에 트램에 올라타는 다른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니 모습을 보니 앞쪽이 아닌 트램 중간에 난 문으로 탑승을 하더라. 어쩐지 내가 하이델베르크 카드를 기사 아저씨께 보여드리니 일단 빨리 타라는  손짓을 하시더라. 이렇게 또 하나 배웠다.




    나는 비스마르크 광장(Bismarkplatz)에서 내리기로 했다. 구글 지도를 보니 이곳에서 내리면 시내 구경을 하며 하이델베르크 성에 걸어갈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트램이 멈추고 이 역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서 안심하며 따라 내렸다. 비스마르크 광장역 트램역에서 내리면 H&M 매장이 보이고 그 사이로 북적거리는 옛스런 길이 보였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점점 더 내 자신이 이 공간과 이질적이게 느껴졌다. 동양인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간간히 마주치는 중국인들이 반가울 정도였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많은 동양인들을 보았는데 이곳은 조금 달랐다. 나도 모르게 외형적으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일까?




    오늘 하루 너무 오래 걸었는지 발 뒤꿈치 신발이 닿는 부분의 살이 벗겨져 나가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피가 나는 곳에 데일밴드를 몇 개 덧 붙였다. 걸을 때마다 자꾸만 벗겨지는 데일밴드 때문에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걷다 보니 슬슬 배고파져오는 나의 배. 길을 거닐다가 홀린듯이 아이스크림 파는 매장 앞에 멈춰 섰다. 젤라또 한스쿱, 노란 망고맛 녀석을 주문했다. 어찌나 맛있던지 콘까지 모조리 싹 다 먹었다. 고작 아이스크림 한스쿱 뿐인데도 배가 꽤 찼다.




    유럽 여행 중 내 동전지갑을 채웠던 수많은 동전들. 1유로와 2유로가 동전이라 계산을 동전으로 많이 했다. 그런데 이 유로 동전들이 우리나라의 100원, 200원 동전처럼 느껴져서 별 생각 없이 쓰다가 나중에 아차 싶었다.




    아이스크림 먹으며 가다가 발견한 표지판! Kurpfalzisches Museum인데 하이델베르크 중앙역에서 이 뮤지엄 포스터를 보았었다. 포스터 속 그림이 인상적이어서 가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발견했다. 하이델베르크 성에 다녀온 뒤 이곳에 가야지 싶었다.




    거리를 돌아 다니다가 자꾸만 어떤 문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가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호기심에 나도 따라 안으로 들어갔는데 성당이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나는 성당에 들어와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이 성당에서의 휴식이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신자는 아니지만 이런 공간에 오면 마음이 평화로워져서 좋다. 북적거리는 거리를 벗어나 고요한 공간 속에서 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아픈 다리가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았다. 성당 안에는 여러 나라의 언어로 쓰여진 포스트잇이 다닥다닥 붙은 게시판이 있었다. 나도 내 소망을 포스트잇에 적고 게시판 한 켠에 붙이고 성당을 나왔다.




    또 걷는다. 힘들었다. 도대체 성은 언제 나타나는 곳일까 싶을 때 즈음 눈 앞에 성이 보였다. 드디어 성이 나타났구나! 철학자의 길 오르고 올라 마침내 멀리 보이던 성의 모습이 이토록 가까이 보이다니 신기했다. 이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하이델베르크 성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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