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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늦은 오후 뉘른베르크 성에 오르다
    나홀로 유럽 여행기/독일 2021. 5. 1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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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에서 내린 뒤 역을 나와 구글 지도를 보며 숙소를 찾아갔다. 며칠새 더 무거워진 것 같은 캐리어를 질질 끌며 걷다가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시계를 들여다 보니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뉘른베르크까지 이동만 했을 뿐인데 몇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숙소에 도착하고 나니 잔뜩 머금고 있던 긴장이 한순간에 풀려서 피곤이 몰려왔다. 푸근한 침대 위로 뛰어들어 곧장 잠들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잠들면 오늘 하루가 너무 아쉬울 것 같아 몸을 가볍게 하고 밖으로 나왔다. 어두워지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근처에 있는 뉘른베르크 성에 가보기로 했다.




    뉘른베르크 성으로 가는 길에 사진이나 찍어볼까 하고 필름 카메라를 메어 들고서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카메라 건전지가 수명을 다했는지 노출계가 작동하지 않았다. 내가 가져간 필름 카메라는 수동방식이라 노출계 없이 찍었다가는 모조리 사진을 날릴 듯 싶었다. 그래서 근처 DM마트에 들러 건전지를 구해보기로 했다.

    의심 반 기대 반으로 들렀던 마트에 다행이도 납데데한 수은 건전지가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건전지를 사와서 마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카메라에 건전지를 갈아 끼워 넣었다. 그리고 성까지 가는 길 뉘른베르크의 모습을 카메라에 하나하나 담았다.




    걷고 또 걷다보니 어느새 뉘른베르크 성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성벽에 기대어 사진을 찍거나 먼곳을 응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 나도 곧 저들이 서있는 성벽 언저리에 도달해 멋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성 안으로 향했다.




    드디어 뉘른베르크 성에 올라왔다. 붉은 성벽에 기대어 뉘른베르크 풍경을 내려다 보았다. 이곳에 오기까지 겪은 고생스러웠던 일들이 머릿속으로 하나 둘씩 스쳐 지나갔다. 지나간 힘들 일들은 고작 몇시간 지났을 뿐인데도 먼 일처럼 느껴졌다. 날씨가 흐렸지만 내려다 보이는 광경은 무척 멋있었다. 짙게 깔린 구름들 아래 붉은 지붕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었다. 중간에 불뚝 솟아오른 건물은 아마도 성 로렌츠 교회였던 것 같다.




    7유로를 내고 성 안으로 들어가는 표를 샀다. 성 내부에 들어서니 투명한 창 너머로 뉘른베르크 전경이 보였다. 성벽에서 내려다 보이던 풍경이 액자 속에 담긴 듯 느껴졌다. 붉은 지붕들이 깔린 먼 지평선을 바라 보았다. 나는 정말 다른 세상에 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 내부에 꽤나 큰 예배당이 하나 있었다. 웅장함이 느껴지는 높다란 아치와 아름답게 조각된 기둥 그리고 그 가운데로 하얀 예수상이 보였다. 종교와 상관없이 이런 곳에 오면 자연스레 마음이 평화로워져서 좋다. 고요한 이 공간에 들리는 소리는 나와 그리고 누군가의 발소리 뿐이었다. 예배당 벽면에 장식된 조각상들이 정교했다. 스스륵 흘러내리는 듯한 옷의 주름과 얼굴 표정에 눈이 갔다.


     



    걸음 걸음마다 발 밑으로 나무 판자들이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니 온전했다면 무척이나 화려했을 법한 푸른 색조의 그림이 보였다. 그 시절로부터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기에 지금 이런 모습일까? 천장 가득 채웠을 푸른빛을 상상해 보았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 뉘른베르크 성은 많은 이들에게 삶의 일부였을 것이다. 먼 이국땅에서 온 오래된 이 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던 나. 이십대 푸릇했던 시절 추억 한 켠에 뉘른베르크 성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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