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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페트라 여행 낭만적인 페트라 나이트(Petra Night), 어둠 속 빛나던 알 카즈네지구별 여행자/요르단 2023. 11. 29. 00:45728x90반응형
아름다운 노을을 구경하다가 이윽고 와디무사에 어둠이 내려 앉았다. 우리의 일정이 새벽부터 시작해서 그런지 정말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땡볕 아래에서 너무 오래 걸어서 온몸이 쑤셔왔지만, 그래도 나이트 페트라는 이날이 아니면 볼 수가 없었으니 억지로 힘을 내서 밖으로 나왔다.
푸르스름한 쪽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 도시의 불빛들이 반짝였다. 밤이 되어야만 볼 수 있는 반짝이는 불빛들이 마치 밤하늘에 뜬 별처럼 아름다웠다. 선선해진 공기가 더위에 찌들었던 축 처진 우리의 몸을 산뜻하게 일깨워주었다.
나이트 페트라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요르단 패스가 아닌 별도의 입장권을 끊어야했다. 그 가격은 인당 17JD, 한화로 대략 3만원 정도 되는 가격이었다. 그리고 나이트 페트라는 월, 수, 목요일만 운영하니 페트라 여행 중 나이트 페트라에 가고 싶다면 미리 여행 날짜를 잘 생각해두어야 했다.
우린 하필 페트라에서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이렇게 3일을 보내게 되어서 나이트 페트라를 보려면 월요일인 이날밖에 없었다.
입장권을 끊고 길게 늘어진 줄 끝에 가서 섰다. 줄이 너무 길어서 이 많은 사람들이 언제 다 들어가려나 싶었는데, 막상 게이트를 열고 사람들이 입장하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줄이 줄어들었다.
사실 여행을 오기 전에 나이트 페트라에 대해서 꽤나 검색을 해보았는데 사람들 반응이 좋았다는 사람 반, 별로였다는 사람 반이었다. 그리고 이날 새벽부터 무지막지하게 걸은 탓에 너무 힘들어서 '나이트 페트라 그냥 가지말까?' 이런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안갔으면 정말 후회할 뻔 했다. 우리 둘은 나이트 페트라가 너무너무 좋았다!
점점 더 짙어져가는 어둠 속에서 아른아른 거리를 비추는 불빛을 쫓아 걷는 일이 참 낭만적이었다. 멀고도 낯선 나라의 아주 오래된 도시에서 이렇게 작은 불빛에 의지하며 걷다니, 정말 신기하고 재미난 일이었다.
하늘에는 별들이 두둥실 떠 있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별들은 더 밝게 반짝였다. 밤하늘 아래 펼쳐진 기이한 암산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 위를 걷는 기분이 들었다.
낮에 보았던 풍경들이 짙은 밤,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펼쳐졌다. 같은 듯 하면서도 색다른 풍경들을 보며 즐거운 밤 산책을 했다.
낮에는 그리 무덥고 힘들었던 길들이 밤이 되니 그저 좋았다.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하늘 위에 총총 뜬 별들을 바라 보며 걸었다. 별들이 너무 예뻐서 계속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 보느라 목이 아플 지경이었다.
이 모습이 정녕 지구의 모습이던가? 우리가 자주 보던 자연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아무리 보아도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이렇게 걷는 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암석들로 둘러싸인 길을 걷다가 마침내 시크 협곡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거대한 암벽 사이로난 길 양 옆으로 촛불들이 놓여 있었다. 노란 촛불들이 만들어 놓은 반짝이는 길을 따라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참으로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거대한 협곡 위 작은 틈으로 보이던 밤하늘에는 별들이 수도 없이 많이 떠 있었다. 노란 빛을 내뿜던 촛불들은 어둠 속에서 잔잔히 흔들렸다. 이 신비로운 협곡을 계속 걷다가 보면 아주 먼 옛날 나바테아 인들이 거닐던 옛 도시가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시크 협곡을 꽤 오랫동안 걸었다. 걷다가 멈춰서고 또 걷다가 멈춰서고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협곡 사이엔 우리밖에 없었다. 이 거대한 협곡을 전세낸 기분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그런데 이러다가는 알 카즈네 공연에 늦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는 걸음이 엄청 빨라졌는데 알 카즈네에 가까워질수록 음악 소리가 커졌다.
시크 협곡을 지나 드디어 알 카즈네가 나타났다. 낮에 보았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알 카즈네는 낮보다 더 장엄하고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알 카즈네 앞에는 수많은 촛불들이 놓여 있었다. 촛불들은 얇은 종이로 감싸져 있었는데, 종이 안에는 모래가 한움큼 놓여 있어서 바람에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알 카즈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렁이는 촛불들과 형형색색으로 빛나던 알 카즈네, 어느 베두인이 작은 피리로 이국적인 선율을 연주했다. 피리 소리가 암벽 안에 울려 퍼지고, 고개를 들어 올리면 총총 뜬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베두인들이 나눠주는 작은 종이컵에 담긴 차를 마시며 피리 연주와 페트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이게 다였다..!)
남다르게 화려한 공연은 아니었지만 그저 알 카즈네에 비추는 다양한 색깔의 불빛, 별이 총총 뜬 밤 하늘, 그리고 협곡을 걸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이런 이색적인 행사를 열어 어두운 밤에 페트라를 걸어볼 수 있게 해준 요르단에 감사했다. 나이트 페트라가 아니었다면, 이리도 컴컴한 밤에 낯선 협곡을 걷고 알 카즈네를 볼 수 있었을까?
곧 있으면 촛불을 다 치울테니 마음껏 사진을 찍으라는 베두인의 말에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 알 카즈네 앞으로 모였다. 그리고 저마다 촛불을 들고 기념 사진을 남기기 시작했다.
우리도 바닥에 놓인 촛불을 하나씩 들고 알 카즈네 앞에 서서 기념 사진들을 남겼다. 그리고 화려한 색깔로 빛나는 알 카즈네를 사진에 많이 담았다.
우리는 한참동안 알 카즈네 앞을 어슬렁거렸다. 밤하늘을 바라 보기도 하고 알 카즈네를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모래 위로 일렁이는 촛불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조명으로 어여쁜 색깔로 물든 암벽을 바라보기도 했다.
한참 알 카즈네 앞에 있다가 돌아서 나오는 길, 협곡 사이로 푸르스름한 빛깔로 반짝이는 알 카즈네가 보였다. 안녕, 이렇게 밤에 보는 알 카즈네는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눈앞의 풍경을 머릿 속에 꼭꼭 담아두고, 카메라에도 양껏 담았다.
돌아가는 길은 아주 한적했다. 일렁이는 촛불들은 그대로였고, 밤 하늘은 더욱 더 짙어져있었다. 협곡 사이 틈으로 보이는 별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 협곡을 떠나기도 참 아쉬웠다.
시크 협곡을 벗어나 이제 쭉 시야가 트인 편안한 평지를 걸어갔다. 올 때는 푸르스름한 하늘 아래 펼쳐진 암산들을 보며 갔었는데, 갈 때는 반짝반짝 빛나는 도시의 야경을 보며 가게 되었다. 검은 하늘이 밝게 빛날 정도로 도시는 반짝였다. 도시의 불빛을 보니 이제야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반응형'지구별 여행자 > 요르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