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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캔디 여행, 부처의 치아가 모셔져 있다는 불치사를 찾다 (스리 달라다 말리가와 Sri Dalada Maligawa)아시아 여행기/스리랑카 2024. 2. 18. 12:40728x90반응형
스리랑카 캔디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 '불치사'를 이야기할 것 같다. 이 절은 부처의 치아가 모셔져 있다고 해서 불치사(佛齒寺)라 불리는데, 그 때문에 전세계의 불교 신자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우리 둘 다 종교는 따로 없지만, 인간 부처는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어떤 이유에서 또 무슨 마음으로 전세계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지 궁금했다.
어디가 입구인가 찾아다니다가 'Ticket Counter'라고 적힌 안내판을 보고 따라 걸어갔다. 외국인에게만 입장료는 받는 것일까?
입장료는 성인 1인당 2,000 스리랑카 루피였다. (한화로 8천원 정도) 인근 불교 국가들의 경우에는 입장료를 더 싸게 받는 것 같았다.
티켓 머신에 지폐 4,000루피를 넣고 입장권 두장을 받았다. 딱 정확한 금액만 넣으라고 하고 잔돈은 안돌려준다는 경고 문구를 보니 이 나라 정말 얄짤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불치사 안으로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만 했다. 입장권을 받아 들고 바로 옆에 신발 맡기는 곳으로 가서 신고 온 운동화를 맡기고 번호표를 받았다. 그래도 양말을 신어서 다행이었다. 양말 신은 발로 절 곳곳을 쏘다녔다.
불치사에서는 매년 여름에 '페리헤라' 축제가 열린다. 부처의 치아사리를 모시며 한껏 치장한 코끼리들과 무용수, 곡예사 등이 거리를 행진하는데 그 역사가 족히 천년이 넘는 오래된 축제이다.
우리가 찾은 달은 10월이어서 축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경내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스리 달라다 말리가와(불치사)는 1600년 경에 만들어졌고 여러차례 재건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건물 안의 나무 기둥과 보 위에 새겨진 무늬는 잔뜩 바래져 있었고 바닥의 돌들에게서는 오래된 세월이 느껴졌다.
2층으로 올라가기 전, 1층 홀 같은 곳에서는 하얀 두건을 쓴 악사들의 연주를 하고 있었다. 악사들의 표정은 무료해보였지만, 그들의 음악은 흥겨웠다. 피리와 북 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 퍼졌는데, 이국적인 음악과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공간이 만드는 그 묘한 분위기가 좋았다.
하얀 계단을 다라서 2층으로 올라 왔는데 어디선가 꽃 향기가 그윽하게 풍겼다. 꽃 향기를 쫓아 가니 엄청난 인파와 만나게 되었다. 유리 테이블 위에 꽃들이 가득 놓여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는데 줄을 서서 차례차례 스님에게 가서 뭔가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곳에 느낌적인 느낌으로 부처님의 치아가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이토록 지극정성으로 무언가를 빌고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도 인파에 합류해서 우왕자왕하다가, 진이 빠져서 계단을 따라 다시 내려왔다.
어딜가나 사람이 많던 불치사. 엄청난 사람들에 밀려 우리가 무얼 보러 여기 왔는지도 가물해졌다. 양쪽에 그금빛 보살 조각이 되어있던 커다란 문은 굳게 잠겨있다가 다시 열렸는데, 도대체 그 안에 뭐가 있나 했더니 스님 한 분이 서 계셨다. 그리고 문스톤이라며 어떤 돌 조각 같은걸 보라고 했는데 우리에게는 전혀 감흥이 없었다. 우리가 뭘 잘 몰라서 그런가 보다.
줄을 한참 서서 들어갔던 공간, 하얀 아치 아래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유리로 사방이 막혀있는 작은 상자 안에 금빛 보관함 같은게 들어 있었다. 아, 이게 바로 부처의 치아인가? 사람들이 경이로운 표정으로 유리상자 안을 바라보길래 우리도 우와, 하고 한바퀴 돌고 나왔다.
새하얀 석조 건물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금빛으로 칠한 꽃 문양과 기둥마다 꽂혀 있던 금빛 상아, 화려하기 이를데 없는 그런 사원이었다. 황금빛 불상 앞에는 또 수많은 꽃들이 놓여 있었다. 저마다 간절한 소망을 담아서 부처님께 꽃을 바친 것일테다.
부처님의 탄생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그림이 그려진 액자가 기둥 사이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치아가 어떻게 해서 이곳까지 흘러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그림과 간단한 설명이 액자에 담겨 기둥 위에 걸려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부처를 화장했을 때 부처의 왼쪽 송곳니가 잿더미에서 나왔다고 한다. 고대의 인도 공주가 머리카락에 치아를 숨겨 스리랑카로 가져온 것을 시작으로, 부처의 치아는 대대로 스리랑카 왕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캔디 불치사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치아가 진짜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고도 들었다.
길을 나가려다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조용히 쉿- 자기를 따라 오라며 박물관을 보여주겠다고 하길래 쫓아갔다. 컴컴한 계단 위로 우리를 안내했는데, 왠지 가이드를 해주고 마지막에 돈을 달라고 할 것만 같았지만 뭐 주면 되는거지 쿨하게 생각해버리고 따라 갔다.
폐장한 박물관의 불을 켜고 돌아다니시면서 막 소개를 해주시더니만, 문을 열고 발코니 같은 곳에 데려다 주셨다. 그곳에 서니 캔디 호수의 야경이 쫙 펼쳐졌는데 아주 멋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1층에서 보았던 사원의 붉은 지붕도 보게 되었는데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짧은 투어(?)가 끝나고 아니나 다를까 할아버지는 절을 위해 약간의 기부를 하지 않겠냐고 하셔서 우리는 100루피를 내밀고 나왔다. 하하하.
불치사에 와서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 다녔다. 부처가 바랬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사람들이 자신의 '치아' 조각을 보고 경배하는 그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리고 부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언가 소망을 바라고 기원하는 것도 바라지 않았을 것 같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고 욕심을 버리는 것을 원했을 것 같은데, 사람들은 저마다 개인적인 욕심을 가득 안고 이곳을 찾아왔으니.
그런데 꽃을 올리고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기뻐 보였고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만으로도 종교는 그 의미를 다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행복하니 된거지 뭐, 그런 생각?
불치사에서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호텔 옆 도미노 피자에 들러서 작은 피자 한 판을 사가지고 갔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컵누들과 김, 망고와 술들로 간단히 저녁을 해먹었다. 너무 피곤해서 기절하듯이 잠들었던 밤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니 스리랑카에 와서 매일매일 기절하면서 잠드는 것 같았다....왜이럴까?!!!)반응형'아시아 여행기 > 스리랑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