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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리랑카 여행, 캔디역에서 기차를 타고 하푸탈레까지 6시간의 여정, 아름다운 고산지대 풍경과 따뜻한 스리랑카 사람들
    아시아 여행기/스리랑카 2024. 2. 21.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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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캔디역에서 하푸탈레로 떠나는 날.

    스리랑카는 교통이 열악하다. 낙후된 선로를 지나가는 기차는 이동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스리랑카 사람들은 주로 버스를 타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편하고 빠르게 가려면 택시가 답이지만, 캔디에서 하푸탈레로 이어지는 기차 구간이 아름답기로 명성이 자자해 우린 기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캔디에서 단 하루밖에 머물지 못했지만, 그새 이곳에 정이 들어버렸나 보다. 호텔 창 밖 발코니에서 보던 풍경은 스리랑카를 떠올리면 계속 아른거릴 것 같다. 언덕 위에 있는 저 하얀 불상은 보러 가보질 못해서 아쉬웠다.

    오랜 시간동안  기차를 타야하니, 아침을 먹고 가야겠다 싶어서 미리 사두었던 과일들과 한국에서 가져온 육개장 사발면을 꺼내 먹었다. 그리고 캔디 마트에서 산 요거트도 함께 먹었다. 나름 근사한 아침상이었다.


    아침을 챙겨 먹고 호텔 로비로 나왔다. 보통 카드 결제가 다 안되던데 이 호텔은 카드 결제가 되어서 손쉽게 숙박비를 결제할 수 있었다. 우리가 캐리어가 두 개나 있어서 한 툭툭에 같이 타고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툭툭은 생각보다 컸다. 뒷편에 캐리어 두 개를 싣고 우리 둘 다 타고 캔디역으로 갈 수 있었다.


    캔디역에 도착했다. 어제 와봐서 조금은 익숙한 기차역, 창구로 가서 '하푸탈레(Haputale)'행 기차표를 달라고 하고 2등석 기차표를 두 장 구매했다. 우리가 탈 기차는 8시 45분 즈음 출발한다는 'Badulla'행 기차였다.


    기차역에 이렇게 전자식이 아닌 수동으로 안내판이 만들어져 있었다. 8시 45분에 2번 라인에서 출발하는 기차가 총 3개나 되어서, 도대체 어떤 기차가 하푸탈레로 가는 것인지 몰랐는데 왠지 여기 직원으로 보이는 분에게 물어서 'Badulla'가는 기차가 하푸탈레로 간다는 것을 알아냈다.


    스리랑카에 오면 많이들 가는 누와야 엘리야로 가는 기차와 하푸탈레로 가는 기차는 달랐다. 잘못 타면 큰일나니, 열차를 기다리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어디가는 기차냐고 몇번씩 확인했다.

    기차를 타기까지 1시간 정도 남아서 어디 잠깐 앉아 있을 곳 없나 싶었는데, 'Canteen'이라는 안내판을 보고 계단을 걸어 2층으로 올라갔다.


    작은 매점 안에는 간단히 먹을만한 음식들을 잔뜩 팔고 있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아침을 굳이 안먹고 와도 되었겠는걸? 우리는 따뜻한 밀크티 한 잔과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주문을 하니 사장님이 주방에 가서 작은 냄비로 밀크티를 만드셨다. 그 장면을 멍하니 보게 되더라.


    호로록 따뜻한 커피와 밀크티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툭- 전기가 나가 버렸다. 캄캄해진 매점 안, 스리랑카는 정전이 잦다고 듣긴 들었는데 우리가 여행하는 중에 이렇게 정전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전기가 곧바로 다시 돌아오지 않아서, 사장님이 어디선가 하얀 초에 불을 붙여서 가져오셨다. 처음에는 멀리 주방 쪽에 두셨다가 우리 쪽으로 초를 가져다주시며 밝은 웃음을 지으셨다. 덩달아 우리도 웃게 되었다.


    매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20분 전 즈음인가 미리 기차 탑승하는 곳으로 와서 기차를 기다렸다. 기차 선로의 좌우로 길이 나있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서 기다려야할지 몰라서 역무원에게 물어 보았다.

    역무원이 말하길 기차가 오면 양방향에서 다 탈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산 기차표 2등석은 기차 중간즈음에 있으니 중간에 가서 기다리라고.

    역시 모르겠으면 물어보는게 짱이다!


    하푸탈레로 가는 기차는 원래 8시 45분즈음에 온다고 했는데, 기차는 9시 넘어서 왔다. 마침내 기차 안에 올라 탔을 때 우리는 깜짝 놀랐다. 기차 안에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겨우 짐칸에 캐리어를 쑤셔 넣었고 기차 위에 타는 것도 겨우 탔다. 좌석이 있는 기차 칸 안에는 복도까지 사람들이 꽉 차있어서 기차와 기차를 연결하는 통로에 서서 가야했다.

    그 통로에는 화장실이 있었는데 문이 계속 덜컹덜컹 열려서 어찌나 불편하던지, 그리고 문 틈으로 언뜻 보였던 화장실은 정말 더러웠다.


    기차는 아주 천천히 달려갔다. 하푸탈레까지 기차를 타고 꼬박 6시간을 가야하는데, 이렇게 계속 서서 가야하다니 한숨이 나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고산지대 풍경이 아름답다기에 기차를 탄 것인데, 잘못 선택한건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통로 쪽에서 좌석이 배치되어 있는 기차 칸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어떤 스리랑카 여자분이 안쪽으로 가서 좌석 등받이 부분이라도 잡고 서있으라며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그래서 얼떨결에 기차칸 안쪽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십여분도 채 안된 것 같은데 갑자기 자리에 앉아 있던 스리랑카 청년이 벌떡 일어나서는 나보고 자리에 앉으라는거다! 한사코 사양하고 괜찮다고 그랬는데, 그냥 벌떡 일어나버린 청년은 기차 칸 앞쪽으로 걸어가버렸다. 정말 얼떨결에 창가 자리에 앉게 되었다. 따뜻한 스리랑카 청년 덕분에 기차 낭만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앉고 1시간 뒤 즈음인가? 또 다른 스리랑카 청년이 이번에는 우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꼼짝없이 6시간을 서서 가는 것인가 싶었는데, 뜻밖의 친절에 우린 정말 감동했다. 그들에게는 일상이지만 우리에게는 한 번 뿐인 소중한 순간이라, 그래서 자리를 양보해준 것일까?

    오래도록 기차를 타고 가야했기에, 그들에게도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텐데 너무 감사했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낯설 외국인들에게 더 친절하게, 따뜻하게 대해 줘야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차를 이렇게 오래도록 타본 적이 있었던가? 한국에서도 없었던 것 같다. 서울에서 부산을 간다고 해도 이렇게 오래는 안걸리는데 말이다. 기차 문을 열고서 바람을 느끼며 갔는데,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갑자기 비가 와서 엄청나게 춥다가 다시 해가 쨍쨍 비치고를 반복했다. 그래서 창문을 닫았다가 또 열었다가 반복했다.


    기차는 아주 많은 역에서 멈춰 섰다. 아마 기차가 느린 것도 있지만 중간에 멈춰서는 역이 워낙 많아서 느린 것 같기도 했다. 멈춰서는 역마다 사람들은 별로 내리지 않고 타기만 해서 기차 안은 더 복작복작해졌다.


    기차는 한참을 달리고 또 달렸다. 사람들이 꽉 차서 도저히 왔다갔다 할 공간이 없을 것 같은 와중에도 음식 파는 사람들이 왔다갔다 기차칸을 오갔다. 무얼 하나 사먹어 보고 싶긴 했는데, 사람도 너무 많고 복잡스러워서 말았다.


    중간중간 졸며 잠들기도 했다가 다시 눈을 뜨고 창밖을 바라보고 계속 그렇게 가다가, 드디어 푸릇푸릇한 차밭을 보게 되었다. 드디어 고산지대에 진입한 것일까? 바라 보기만 해도 가슴이 상쾌해지는 푸르른 풍경이 계속 이어졌다. 하늘에는 하얀 구름들이 꽉 차있었고, 그 밑으로 펼쳐진 차밭은 새파랬다.


    멀리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푸릇푸릇한 차밭이 발 아래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마치 하늘 위를 달리는 기차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아, 이래서 하푸탈레 갈 때 기차를 타고 가라는 것이었구나!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6시간동안 도대체 어떻게 갈까 싶었는데, 시간은 흐르고 결국에는 하푸탈레에 도착하게 되었다. 가는 동안 우리 둘 마음이 잔뜩 몽글몽글해졌다.

    두 청년들에게 자리를 양보 받기도 하고, 옆 자리에 잠깐 앉아있던 할아버지는 내가 졸고 있을 때 차창 밖으로 멋진 풍경이 나타나면 얼른 밖을 보라며 툭툭 치며 웃음 짓기도 했고, 어떤 아주머니가 볶은 땅콩이랑 과자랑 이런저런 군것질 거리들을 챙겨주기도 했고...

    그리고 내 옆에 오래도록 앉아있던 눈이 똘망했던 여자 아이와 할머니 (2명 좌석에 나. 여자아이들 2명. 할머니. 이렇게 4명이 오밀조밀 앉아서 갔다 ㅎㅎ), 나중에 기차에서 내릴 때 할머니가 내 두 어깨를 감싸쥐고 쓸어 내리면서, 내 두 눈을 바라보며 웃음 짓는데, 말은 서로 통하지 않았지만 가슴이 뭉클했다. 앞으로의 여행이 안녕하고 즐겁기를 바란다는, 그런 할머니의 말이 마음 속으로 들렸다.


    할머니와 가족들이 그렇게 자리를 떠났는데, 알고보니 우리가 내릴 하푸탈레 역이였다. 하하하. 그래서 다 같이 기차에서 내려서 플랫폼에서 가족들을 마주쳤다. 기차 안에서 찐하게 이별했는데, 기차에서 내려서 다시 보게 되니 약간 민망했다. 하하하.


    드디어 도착한 하푸탈레. 하푸탈레에서 머물다가 기차를 타고 엘라로 갈 생각이서 미리 기차역에서 시간표도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그리고 '하푸탈레(Haputale)'라고 적힌 안내판 앞에서 기념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6시간만이라니, 감격스럽기 그지 없었다.

    따뜻한 스리랑카 사람들 덕분에 즐거운 기차 여행이 된 것 같았다. 참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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