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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리랑카 여행, 하푸탈레 호튼 플레인 국립공원 (Horton Plains National Park) 트레킹
    아시아 여행기/스리랑카 2024. 6. 8.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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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푸탈레에서 제일 기대했던 것 중 하나가 호튼 플레인 국립공원 트레킹이었다. 호튼 플레인은 스리랑카 중부지방에 위치한 해발 2,300여 미터에 이르는 고원지대인데, 다양한 고유종 동식물들이 살고 있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곳이다.

    호튼 평원은 트레킹으로 유명한데 보통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누와야 엘리야나 하푸탈레에서 가는 것이 보편적인 루트이다. 우리는 하푸탈레에 머물렀기에, 하푸탈레에서 출발하는 툭툭을 숙소를 통해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발코니로 나가 보니 구름들이 자욱했다. 하얀 구름들이 짙게 깔린 차밭 풍경이 근사했다. 세상이 발 아래에 펼쳐져 있어, 마치 하늘 위의 섬에 떠있는 기분이었다.

     


    이른 아침에 툭툭 기사와 만나 호튼 플레인으로 가기로 했기에 따로 호텔에서 조식을 먹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호텔에서는 우리에게 가는 길에 먹으라며 간단하게 도시락을 싸주었다. 이른 시간 우릴 위해 신경써서 준비해준 요리사를 생각하니 감사했다.


    툭툭을 타고 호튼 플레인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자동차와 다르게 툭툭은 유리창으로 시야가 막혀있지 않으니 이국적인 풍경은 또렷하게 보였고, 신선하고 서늘한 바람이 느껴져서 좋았다. 노란 꽃이 매달린 조경수들과 끝없이 이어진 차밭 풍경이 한참 이어지다가, 쭉쭉 키가 큰 나무들로 꽉 찬 숲 사이를 지나왔다.

    오전 7시 좀 넘어서 하푸탈레에서 출발했는데 8시 30분 즈음에 티켓 오피스에 도착했다.


    호튼 플레인은 스리랑카 정부에서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철저하게 보호, 관리하고 있는 곳이다. 입장료도 어마어마한데(물론 외국인 한테만 그렇다) 어른 기준으로 둘이 합해서 2만 3천 루피(한화 약 9만원)를 내야 했다.

    사실 날이 그렇게 맑지 않았아서, 그리고 곧 비가 올 것만 같이 축축한 공기가 깔려 있었던지라 툭툭 기사가 정말 가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아마도 입장료가 좀 쎄다 보니 날씨가 이런데도 정말 가도 되겠냐, 그런 맥락에서 계속 물어봤던 것 같다. 우리야 다음 날 엘라로 이동해야했으니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비가 쏟아져도 우린 꼭 오늘 호튼 평원에 가야 했다!


    그렇게 티켓 오피스를 지나 평원으로 가는 길에 우린 갑작스럽게 순록을 만나게 되었다!


    밤색 털이 달린 거대한 몸집에 머리 위로 커다른 두 뿔이 달린 순록, 너무 가까이 우리 앞에 있어서 어안이 벙벙했다. 툭툭 기사가 잠시 툭툭을 멈추고 순록을 볼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순록은 그저 길을 건너 가려고 했나 보다. 툭툭이 멈추자 태연하게 길을 건넜다.


    그렇게 순록은 건너편 숲 속으로 사라졌다. 뭔가 기품 있어 보이던 고고한 몸짓이 기억에 남는다. 그 뒤로도 순록을 한 번 더 보았는데, 툭툭 기사님이 같이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툭툭을 멈춰 세웠다. 그러고 카메라로 순록가 우리가 한 장면에 담기게 사진을 찍어주시는데 갑자기 순록이 소리를 '꽥!'하고 내어서, 우리도 놀래서 '악!' 소리를 질렀다.

    우리도 놀래고 순록도 놀래고, 호다닥 순록이 도망치는 바람에 사진은 물건너 갔다.


    툭툭을 타고 평원으로 향하는 길에 순록떼를 만나기도 했다. 멀리 초원 위에서 순록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멍하니 바라보게 되더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다가 그쳤는데, 멀리 노르스름한 들풀들 위로 무지개가 떴다. 반원이 선명한 무지개가 아름다워 잠시 툭툭을 멈춰 세우고 들판 위를 걸었다.

    날이 흐리고 비가 내려서 과연 오늘 트레킹을 하는 것이 맞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덕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게 되었다.

     

     


    툭툭 기사가 호튼 플레인 비지터 인포메이션 센터(Horton Plains Visitor Information Center) 앞에서 툭툭을 멈춰 세웠다. 한바퀴 트랙을 따라 돌고 나올 때까지 기사는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툭툭 기사와 인사를 하고 센터 안으로 들어왔다.

    센터 안에 있던 직원들이 가방 검사를 했는데, 정말 꼼꼼하게 검사를 했다. 플라스틱 물병의 라벨을 떼야하고, 배가 고플까봐 혹시나 싸온 초콜릿은 은박지를 다 떼어내야 했다. 자연에서 분해되지 않을 법한 모든 것들이 반입 금지였다.


    센터에서 출발해서 평원을 한바퀴 두르고 있는 노란색으로 표시된 길을 따라 걷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두근두근 트레킹 시작 😃

    (처음 시작할 때는 우리가 장장 5시간 넘게 걸게 될 줄은 몰랐다....!)


     

    졸졸졸 맑은 물이 흐르고 길쭉한 이파리를 가진 들풀들이 넓은 대지 위에 펼쳐져 있었다. 들판 위에는 군데군데 짙은 녹빛의 두꺼운 잎을 가진 나무들이 많았는데 안내판을 보니 호튼 평원에 사는 'Asoka'라는 이름을 가진 고유종 식물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야생화들도 만났다. 이름 모를 색색깔의 꽃들을 구경하고 불어오는 습한 바람을 느끼며 걷는 길이 즐거웠다.

     

     

    뾰족뾰족한 잎이 돋은 이 나무도 호튼 평원에 사는 고유종으로 'Dwarf Bamboo'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나무였다.

     

    비가 곧 쏟아지려는지 구름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들판 위로 허연 구름들이 스물스물 움직였다. 갈림길에 다다랐을 때, 어디로 갈까 하다가 우린 왼쪽으로 갔던 것 같다.

     

     

    한동안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바라보며 걷다가, 숲 안으로 들어섰다. 숲 안쪽 길은 좁은 흙길이었는데, 우리가 막 길로 들어설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왔다가 멈추기를 반복했었나 보다. 길들이 엄청나게 질퍽거렸다. 운동화와 바지에 진흙니 잔뜩 묻어 버렸지만 초록이 짙은 촉촉해진 숲의 모습이 좋았다.

     

     

    꽃들을 구경하며 걸어가는데 비가 점점 더 거세졌다. 혹시나 싶어서 가방 속에 우비를 넣어왔는데, 결국 우린 주섬주섬 우비를 꺼내서 입었다.

     

     

    장밋빛이 도는 암석 지대 위를 지나가기도 했다. 비가 와서 무척 미끌거렸던 탓에 걸어가기가 버거웠다. 조심 조심 넘어지지 않게 한발자국씩 걸었던 기억이 난다.

     

     

    층층이 결이 나있는 암석을 보니 오래된 세월이 느껴졌다. 우리가 이 땅을 밟게 될 줄이라고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상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오래된 세월 위로 발자국을 하나 둘 남겼다.

     

     

    숲에서 벗어나 높은 곳에 다다랐다. '작은 세상의 끝(Little World's End)'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비가 많이 내려서 예상은 했지만,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앞은 천길 낭떠러지인 것 같은데 하얀 구름으로 뒤덮여서, 도무지 세상의 끝인지 시작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하하.

     

     

    우리는 계속 걸었다. 비는 계속해서 쏟아지다가도 갑자기 그치기도 했다. 뒤죽박죽인 날씨였지만 걷는 길에 마주하게 되는 풍경들이 아름다워 즐거웠다.

     

     

    지금 호튼 평원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드넓은 들판 위에 누런 풀들이 누워있고, 군데군데 짙은 녹빛에 두꺼운 이파리를 가진 나무들이 서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뾰족한 이파리를 가진 노란 꽃이 매달린 나무, 흘러가는 구름들와 허연 안개들이 연이어 떠오른다.

     

     

    Little World's End를 지나서 걷다가 또 다시 너른 평원을 만났고, 그러다가 숲에 다시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세상의 끝(World's End)!

     

     

    역시, 사방에 하얀 구름들로 가득해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거의 1시간 50분 정도가 지나서야 도착을 했다.

     

    아무것도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기념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드디어 호텔에서 싸준 작은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야채와 햄 등을 섞어 부친 계란을 채운 샌드위치와 과일이 담겨져 있었다. 텀블러에 담아온 뜨거운 물을 따라서 홍차를 우려내어 마셨다.

    세상의 끝에서 맛보는 샌드위치와 홍차. 크! 좋다!

     

    구름이 바삐 움직이며 발 아래의 풍경이 보였다가 말았다가를 반복했다. 구름이 걷히길 조금 더 기다려볼까 하다가, 멀리서 기다리고 있을 툭툭기사를 생각하니 시간을 너무 지체해서는 안될 것 같아 길을 마저 걸었다.

     

     

    작은 세상의 끝과 세상의 끝을 모두 지나고 이제 다음 목적지는 베이커 폭포였다. 세상의 끝(World's End)에서 폭포까지 가는 길이 참 멋있었다. 드넓은 평원 사이를 가르며 가는데, 비도 그치고 불어오는 바람의 감촉이 좋았다. 아무도 없고 고요한 이 들판 위에서 둘이 오롯히 걸으며 깊은 평화로움과 자유를 느꼈다.

     

     

    커다란 샘을 지나 오르막 길을 걷고 또 내리막 길도 걷다가 하염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걷다 보니 폭포가 나타났다.

     

    커다란 암석 위에서 줄줄이 실처럼 물이 흘러내렸다. 폭포 아래에는 큰 물웅덩이가 있었고 세차게 물이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고 있었다.

     

     

    폭포를 구경하고 있는데 주변에 인도인 가족이 있었다. 아저씨 한명이 우리 둘 사진을 찍어주겠다 하여 폭포와 함께 기념 사진을 남겼는데, 이제는 자기랑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는 것이다.

    한국인인 우리가 신기한 것일까? 스리랑카에서 같이 사진을 찍자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다. (물론 이분들은 인도인이였지만..)

     

     

    무지막지한 계단을 다시 올라가서 다시 또 걸었다. 또 다시 펼쳐진 평원! 높은 곳에서 흐르고 흐른 물이 여기까지 이어진 것인지, 평원 사이사이로 맑은 물이 흘렀다.

     

     

    폭포에서 원점으로 돌아가는 길, 들판 위로 유독 노란색 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길가에도 물가에도 곳곳에 노란색 꽃들이 피어있었다. 적막해보일 수 있는 들판 위에 나무들이 서 있기도 하고, 푸르른 샘이 보이기도 하고 노란 꽃들도 많이 피어 있어서 눈이 즐거웠다.

     

     

    이곳의 고유종이라는 이 아소카(Asoka) 나무의 꽃도 보게 되었다. 이 나무에서는 우리나라의 동백꽃과 약간 비슷한 느낌의 붉은 꽃들이 피어났다. 처음에는 누런 들풀만 보였는데 알고보니 이곳은 꽃들의 천국이었다.

     

     

    걷고 또 걷다가 드디어 우리가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꽤 오랫동안 줄기차게 걸은 느낌이었다. 우린 아침 일찍 출발해서 이곳으로 왔는데, 출발했던 곳에 돌아오니 현지인들은 쪼리(?)를 신고 물통 하나 들고 가족끼리 지금 막 평원을 걷고 있었다.

     

     

    우린 두 번 왔다가는 거덜날 정도로 많은 액수의 입장료를 내고 왔는데, 이들에게는 그냥 가까운 공원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렇게 멋진 곳을 가까이 두고 자주 찾을 수 있다니 참 스리랑카인들에게는 축복이다.

     

     

    생각보다 많이 늦은 것 같아서 툭툭기사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내려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툭툭기사가 혹시 길을 잘못 들었던 것은 아닌지 무슨일 있었냐고 물어봐서 엄청 미안했다. 사실 우리가 엄청 천천히 이것저것 보며 걷고, 쉬기도 많이 쉬기 때문에 항상 트레킹하면 오래 걸리긴 한다.

    툭툭 위에 올라 탔는데 어찌나 편하던지! 그냥 그대로 툭툭 안에서 잠들어도 될 정도로 피곤에 쩔어서 몸이 노곤노곤해진 상태였다. 가는 길에 숲에서 잠깐 내려 주셔서 기념 사진도 찍어 주시고, 이런저런 설명도 해주시던 친절했던 툭툭 기사님, 참 고마웠다.

     

     

    하푸탈레로 돌아가는 길 펼쳐진 차밭이 아주 근사했다. 여전히 하늘 위에는 구름이 잔뜩 깔려 있었다. 이제는 어딜가나 짙은 안개와 구름이 없으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고 가고 또 오고 가고 구름은 그저 제 갈길을 가고 있구나 싶었다.

    하푸탈레를 떠올리면 눅진하고 축축한 공기가 번뜩 생각나는데, 그럼 줄지어서 우리가 보았던 많은 풍경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호튼의 넓은 평원도 그렇고 호텔의 눅눅했던 침대보도 그렇고. 가끔 그 불편했던 눅눅함 마저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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