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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하푸탈레 여행, 립톤싯 일출 투어, 아름다운 하푸탈레 차밭 풍경 (Haputale, Lipton's seat)아시아 여행기/스리랑카 2024. 6. 20. 22:17728x90반응형
하푸탈레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이날은 립톤싯에 들렀다가 엘라로 떠나기로 한 날. 새벽 4시 반 넘어서 눈을 뜬 우리는 립톤싯에 가기 위해 주섬주섬 준비를 마치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툭툭을 타고 어둑어둑한 길을 한참동안 지나왔다.
흔히 들어 알고 있던 차 브랜드 립톤(Lipton), 립톤이라는 단어를 들으며 여름날 먹던 시원한 복숭아 아이스티가 제일 먼저 떠오르곤 했다. 여행을 가기 전, 립톤 시트가 대체 뭔가 싶어서 열심히 알아 보았더라지. 립톤 시트는 다름 아닌 '립톤이 앉았던 자리(Lipton's Seat)'였다.
영국이 스리랑카를 식민 지배하던 시절, 스코틀랜드 출신 토마스 립톤이라는 사람이 이 일대에서 차 농장을 운영하며 영국에 차를 수출했고 그덕에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가 앉아서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했다는 자리가 지금까지 남아 관광지가 되었다.
일출을 보고 싶어서 일찍 서둘러서 간 것이었는데, 자욱하게 낀 하얀 구름들을 보니 아마도 일출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도 서늘하고 차가운 새벽 공기가 상쾌하고 건강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일출을 못 보더라도 이렇게 신비롭고 멋진 풍경이라면 오길 잘했다 싶었다.
그렇게 일출은 포기하고 툭툭을 타고 립톤시트로 가던 길, 멀리 구름 사이로 붉은 태양의 기운이 느껴져서 우와 탄성을 내질렀더니만 툭툭 기사님이 잠깐 가던 길을 멈추고 차밭에 내려 주셨다. 드넓은 차밭에 멈춰서서 잠시 붉은 하늘과 고요한 새벽을 감상했다.
차나무의 밑 부분 이파리들은 짙은 초록색이었고 갓 난 이파리들은 싱그러운 연두빛이었다. 툭툭 기사님이 여린 이파리를 툭 뜯어 주시며 만져보라고 했다. 부들부들 아주 부드러운 촉감의 잎사귀였다.
이 보드라운 이파리를 따서 말리고 볶고, 다시 뜨거운 물에 우려내서 차를 만들어내니 일련의 과정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푸르딩딩하기만 한 이 잎사귀를 어떻게 그렇게 마시는 차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금방 난 잎들은 아주 여리고 유록색을 띄었다
작은 돌 계단을 따라서 위로 올라가 차밭 사이에 난 길 사이에 섰다. 구름이 짙게 깔려서 산 아래가 보이질 않았다.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구름 위에 떠 있는 섬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천공의 성 라퓨타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멀리 붉게 타오르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다시 툭툭을 타고 립톤싯으로 출발했다.
립톤싯에 도착했을 때 우릴 제일 먼저 반겨 주었던 것은 바로 토마스 립톤의 동상이었다. 짙은 갈색의 동상 옆에서 기념 사진을 몇 장 찍고서 풍경을 감상하러 난간에 기대어 섰다.
온 세상이 구름에 덮였다. 우리가 지나온 길들도 구름에 덮였고 발 아래 세상도 구름에 덮였다. 한 폭의 수묵화가 떠오르는 그런 풍경이었다. 하얀 구름들과 짙은 녹색의 산과 나무들이 뒤엉켜서 그림처럼 보였다. 쉼없이 움직이는 거대한 구름들을 보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립톤싯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가는 길, 사실 립톤 시트에서 보냈던 시간 보다는 이렇게 차밭을 거닐고 가까이서 구경했던 시간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툭툭 기사가 내려가는 길에도 잠깐 툭툭을 세워주고 둘이서 천천히 걷다가 오라며 먼저 앞서 나갔다. 우리 둘은 안개가 자욱하게 낀 길들을 걸었다.
돌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서 잠시 차밭을 바라보기도 했다. 훗날 하푸탈레를 떠올리면 이 광활한 차밭 풍경도 스쳐 지나갈 것 같았다.
차밭을 돌아다니다가 하얀 차꽃을 발견했다. 차나무에서 하얀 차꽃이 핀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는데, 눈으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샛노랗고 커다란 꽃술이 동백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차나무 잎모양도 왠지 동백꽃의 단단하고 억센 이파리와 비슷하게 보였다. 동백나무랑 차나무랑 먼 친척뻘은 아닐까?
툭툭기사가 차나무에 대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보통 차나무는 5년이 되면 싹 자르고 2~3년에 한번씩 주기적으로 잘라준다고 했다. 안그러면 나무가 엄청나게 커진다고 했다. 아무래도 찻잎을 따서 가공을 해야하다보니, 따기 쉽게 작은 키를 유지하며 기르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녹차밭도 비슷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하얀 칠이 되어 있던 차나무
뭔가 죽은 것 같아 보이지만 아마도 5년이 지나서 싹 잘린 차나무일 것이라고. 하얗게 보여서 이상했는데 해충을 막기 위해 나무에 하얀 칠을 한다고 했다.흙 유실을 막기 위해 심은 풀
차밭 중간중간에는 이렇게 요상스럽게 생긴 잘린 풀들이 보였다. 이 풀은 뭔고 하니 비가 많이 내릴 때 흙이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심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하푸탈레의 차밭을 보면서 특이했던 점이, 차밭 중간중간에 키가 큰 나무들이 서있다는 것이었다. 혹시 무슨 이유가 있냐고 물어보니 차를 덖을 때 나무 뗄깜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 용도로 일부러 나무를 심어 놓은 것이라고 하더라.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차밭 옆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통들이 놓여 있었는데 툭툭 기사 말로는 우유통이라고 했다. 이곳 사람들은 집마다 소를 키워 우유를 판다고 했다. 보통 아침에는 차를 따고 그 이후에는 경작지에 가서 채소들을 기르며 생활한다고 했다.
차를 따는 이들의 대부분은 늙은 여인들이었다. 피부는 새카맣고 이마에 흰 표식이 있는 힌두교 여인들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줄어들고 차를 따는 일은 늙은 여인들이 대부분 하고 있어서, 아마도 몇십년 후에는 차를 따는 이가 아무도 없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왠지 다음 번에 이곳에 오게 된다면 기계가 차를 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걸으며 차밭을 구경하다가 다시 툭툭 위에 올라 탔다.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광활한 차밭을 눈에 담았다. 지금은 끝없이 차밭이 펼쳐져 있지만, 영국인들이 이곳을 찾기 전에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러다가 또 다시 멈춰선 곳. 푸릇푸릇한 차밭 아래 작은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두둥실 뜬 하얀 구름, 아름답다! 툭툭 기사님이 자기는 먼저 아래에 가있겠다며 천천히 돌아보고 오라고 했다.
마을 쪽으로 난 길을 따라서 걸어 내려갔다. 차밭 너머에는 키가 큰 나무들이 빽빽한 숲이었다. 계단식으로 이어진 차밭들이 무척 아름다웠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걷고 좋은 풍경을 보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래로 내려와서 차밭과 마을을 구경하다가 다시 툭툭에 올라 탔다. 호텔로 돌아가기 전 우리가 차를 마시고 싶다 해서 툭툭 기사님이 데려다 주신 곳이 있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작은 슈퍼 같은 느낌의 상점이었는데 간단히 먹을 것들도 팔고 있었다. 스리랑카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들 같았는데 이름을 다 들었지만 까먹었다 😅😅
잎사귀 위에 툭 담아준 커리 같은 것에 갓 구운 난을 찍어 먹고 커피를 호로록 마셨다. 그리고 코코넛 향이 풍기는 달콤한 간식, 만두 같았던 튀긴 간식도 맛있게 먹었다.
새벽부터 시작된 우리의 일정, 이제 호텔로 돌아갈 시간이다. 하푸탈레에서 보내는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푸르른 차밭을 눈에 가득 담았다.반응형'아시아 여행기 > 스리랑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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