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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비슬산 천왕봉에 오르다 조난 당할 뻔 했던 이야기, 비슬산 천왕봉 최단코스 도성암~천왕봉우리나라 방방곡곡/경상도 2021. 11. 17. 11:06728x90반응형
어느 가을날 단풍이 짙게 물들기 전,
비슬산을 찾았다.
지난 가을에는 자연 휴양림을 걸었었는데 이번에는 천왕봉에 올라 보기로 했다. 느즈막히 일어난 우리는 도성암 코스로 오르면 왕복 3시간이면 된다는 말을 듣고 도성암으로 향했다.
푸릇푸릇한 산길을 따라서 도성암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계속 가야했다. 우리는 산에 오르는 도중 먹으려고 집 근처에서 김밥을 사왔다. 그런데 너무 배가 고파서 산에 오를 기운이 없어서 잠깐 차를 세워두고 간단히 김밥을 먹고 가기로 했다.
차를 잠깐 세워두고 평평한 돌 위에 앉아서 김밥을 먹었다. 그리고 텀블러에 뜨거운 물을 싸와서 육개장 사발면도 하나 해 먹었다. 산에 와서 먹는 라면과 김밥은 어찌나 맛있는지, 항상 이 조합으로 먹는 것 같다.
꿀맛같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차를 타고 도성암으로 향했다.
도성암에 차를 주차하고 천왕봉에 오르는 길.
깊은 산 속 길을 따라 끝없이 걸었다. 처음에는 아래로 자꾸 내려가서 천왕봉 오르는게 맞나 싶었는데, 계속 가다보니 이정표가 나왔다.
내려가는 건 잠깐이었고 계속해서 오르기 시작했다. 낙엽 깔린 흙길은 걷기 좋았는데 그런 길은 얼마 없었다. 엄청난 돌무더기가 쌓인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계속해서 올라가야 했다.
우리가 어찌 끝까지 올라갔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언제 도착하는거야 이 말을 몇 번 했는지 셀 수 없을 정도다.
비슬산을 얕보았다가 큰코 다쳤다.
츄리닝에 운동화를 신고왔던 우리는 산에 오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후회에 빠졌다. 스틱도 챙겨오고 등산화도 신고 올 껄 그랬다, 오르막 돌길이 엄청나니 내려올 때 무지 고생할 것 같았다.
드디어 먼 하늘이 가까워졌고 더 이상 오를 곳이 나오지 않았다.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는데 시계를 보니 1시간 정도 지나 있었다. 힘들어서 그런가 정말 한참 오른 것 같았는데 고작 1시간이라니. 늦게 출발한 우리는 거의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가 오후 4시 즈음 이었다.
억새들이 휘날리고 있는 어느 봉우리 위, 우리는 꼭대기에 다다른 것 같았으나 천왕봉에 가려면 좀 더 걸어가야했다. 다행스럽게도 평탄한 산길을 걷는 것이라서 어렵지는 않았다. 옆에 하늘을 끼고 산 봉우리 위를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하늘에는 저물어가는 해가 둥그렇게 떠 있었다.
이 알 수 없는 봉우리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도 아주 멋있었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과 미니어처 같은 아파트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진 것처럼 보이던 산맥들. 모든 것들이 다 조그맣게 내려다 보여서 바로 눈앞에 있는 하늘이 무척 넓어 보였다.
억새 가득한 길을 지나 드디어 비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 도착했다.
이곳에 오르려고 얼마나 열심히 올라 왔던가! 해가 지기 전에 하산하기 위해서 서둘러 올라왔던터라 숨 가쁘게 계속 움직였었다. 마침내 봉우리를 보게 되니 감격스러웠다. 멀리 해가 떨어지려고 하는지 하늘이 점차 붉게 물들어갔다. 얼른 천왕봉에서 기념사진들을 찍었다.
천왕봉 부근은 평탄했는데 여리여리한 억새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봉우리 꼭대기에 넓은 억새밭이 있다니 참으로 신기했다. 맘 같아서는 억새밭을 거닐고 싶었지만 지체하다가는 컴컴한 밤중에 하산을 하게 될 판이라서 꾹 참고 하산길에 들어섰다.
멀리 보이는 이름 모를 산들,
줄줄이 이어진 산맥과 붉은 하늘과 찢어놓은 솜 같던 구름들, 붉게 물든 강물과 아파트들.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꾹꾹 눌러 담았다. 고생 끝에 보는 정상에서의 풍경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여유롭게 풍경을 보며 차도 마시고 노닐다 가면 좋을 것을, 다음부터는 일찍 등산을 시작하기로 다짐하며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섰다.
돌아가는길 해는 더욱 더 지평선에 가까워졌고 하늘은 더욱 더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이러다 곧 해가 질 것 같아서 내려가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렇게 서둘러서 가고 있었는데, 어라? 내려가는 길이 왠지 어색했다. 올라왔던 길이 아닌 것만 같았다.
등산로의 낙엽은 지나치게 바삭거렸다. 크리스피한 과자처럼 바사삭, 사람이 걸어다닌 흔적이 없는 것 같았다. 이럴리가 없는데?
알고보니 우리는 전혀 다른 길로 하산하고 있었다. 세상에, 우리는 도성암 방향으로 내려갔어야하는데 이정표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멋대로 앞산 방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로 쭉 갔으면 정말 조난신고를 할 뻔 했다.
이상하다 싶은 남편이 워치 하이킹 기록을 끄고 현위치를 살펴 본 덕분에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왔던 방향과는 전혀 다르게 가고 있었던 우리.
도성암까지가 1.7km 정도였고 앞산방향은 16km, 용연사 8km 였다. 와, 그 방향으로 갔다면 컴컴한 밤에 울면서 길도 못찾았을 것 같다. 길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자마자 호다다닥 정신 없이 위로 다시 올라왔다. 조상신이 도왔다고 외치며 정신 없이 올라왔던 것 같다. 다시 천왕봉을 찍고 미친듯이 빠르게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도성암이 가까워졌을 때 오후 6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이 종소리가 얼마나 좋던지! 종소리를 듣고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요즘 자동차를 타면서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다 생각했는데, 옛날사람들이 산길을 굽이굽이 넘어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힘든건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었다. 그 옛날엔 산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절실히 알테니 밤길에 누가 재워달라고 하면 정말 방 한칸을 내줄 것 같았다. 그만큼 산의 밤은 무섭게 느껴졌다.
우여곡절 끝에 하산 성공. 가로등이 있어서 주차장은 어둡지 않았다. 후, 정말 아찔했던 경험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차에 와서 앉으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이번 산행에서의 교훈은 산행은 무조건 아침에 시작하자는 것. 정말 큰일날 뻔 했고 개고생했지만, 고생한만큼 기억에 남는 비슬산 천왕봉 산행길이었다.반응형'우리나라 방방곡곡 > 경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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