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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빛 억새 바다를 거닐다, 합천 황매산에서
    우리나라 방방곡곡/경상도 2021. 11. 11.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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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젖어들 무렵 생각나는 곳이 하나 있었다. 바로 황매산이다. 억새가 넘실거리는 가을 풍경이 보고 싶어 황매산을 찾았다. 황매산 군립공원을 네비게이션에 찍어 두고 차를 타고 위로 쭈욱 주차장이 나올 때까지 올라가면 된다. 인파가 두려워서 평일 느즈막한 오후에 황매산을 찾았는데 덕분에 수월하게 주차한 뒤 산책길을 거닐 수 있었다.


    2년전 가을 황매산을 찾았을 때는 해가 거의 저물어가고 있어서 많이 걷지를 못했었다. 핑크빛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 아래 흔들리는 억새들을 사진으로 담았던 기억이 났다. 이 날은 하늘이 푸르딩딩할 때 공원에 도착해서 여유롭게 억새길을 산책할 수 있었다.


    억새가 지천으로 피어나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는 작은 길들을 따라서 계속해서 걸었다. 길들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길을 걷다가 문득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으면 그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을 만큼 깊었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더니, 정말로 그러한가 보다.


    하늘로 향하는 것 같던 계단을 따라 쭉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면 온세상이 내 발 밑에 있었다. 높이 올라오니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휘날렸고 콧물이 찍 나오기도 했다. 코를 훌쩍이며 먼 풍경을 계속 바라 보았다.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이 시원하기도 하고 몸 속의 더러운 기운들이 사라져 정화되는 기분도 들었다.


    올 봄에 철쭉을 보러 황매산을 찾았을 때는 하늘 계단 끝까지 올랐다가 다시 내려갔었다. 이번에는 멀리 보이는 산 능선 길을 따라 한바퀴를 돌아서 주차장 쪽으로 되돌아 가기로 했다. 오늘은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 가을 정취를 흠뻑 느끼며 억새 길을 더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손끝으로 억새들을 스르륵 만져가며 끝없이 이어진 길을 걸어 갔다.


    아름답고 또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말 외에 또 어떤 말을 할 수 있을런지. 계속해서 아름답다는 말만 입밖으로 튀어 나왔다. 하늘하늘거리는 억새들이 햇살을 받아 노랗게 물들었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억새들을 보고 있노라면 온갖 잡생각이 스르륵 사라졌다.


    멀리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억새들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에 노을이 더해지니 황홀했다. 오늘 이 순간 마침 이 자리에 서있었기에 볼 수 있었던 풍경. 모든 것이 운명 같이 여겨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억새들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했다.


    해가 저물고 나니 억새들은 차가운 은빛으로 변했다. 여전한 바람은 가는 억새들을 쉴 틈 없이 흔들어 댔다. 올해만 벌써 황매산을 두 번 찾아 왔다. 내년 봄 철쭉이 필 즈음에나 이곳을 다시 찾게 될까? 아니면 눈 쌓인 겨울에 다시 오게 되려나?

    황매산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까지 사계절을 온전히 느껴보고 싶다. 그런 날이 오겠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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