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가을, 우리는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을 찾았다. 청송에서 국도를 타고 산 깊숙히 굽이굽이 들어갔다. 비포장 도로를 따라서 외길을 따라 쭉 달려가다 보면 작은 주차장이 하나 나온다. 그곳에 주차를 하고 배낭과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자작나무 숲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바스락 바스락거리는 낙엽들을 밟으며 걸어갔다. 자작나무 숲까지는 3.2km 정도를 걸어가야 했다. 여름에 왔을 때는 세상이 온통 푸르렀는데 가을 풍경은 그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땅 위를 낙엽들이 가득 채우고 있어서 붉은 이불을 덮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이파리들은 온통 붉거나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길가에 서 있던 하얀 자작나무 한 그루. 이파리들이 온통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우리가 자작나무 숲을 찾아가는 것은 바로 이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하얀 나무들이 가득한 숲 속에 노란 이파리들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풍경을 보고 싶어 죽파리를 다시 찾은 것이다.
여름에 왔을 때는 안내판 말고는 길가에 아무것도 없었다. 이번에 죽파리 자작나무 숲을 찾았을 때는 좀 달랐다. 숲으로 가는 길 곳곳에 벤치들이 놓여 있었고 콘크리트 길 옆에 작은 산책로도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주차장에 빽빽한 차들을 보고 죽파리 자작나무 숲이 꽤나 유명해졌구나 생각했다. 내년에 본격적으로 개장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찾겠지? 조용한 숲이 북적거릴 것을 생각하니 아쉬우면서도, 이 아름다운 풍경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보며 행복한 웃음을 지을테니 좋기도 했다.
1km 쯤 더 갔을까? 우리는 잠깐 벤치에 앉아 싸온 간식들을 먹으며 쉬었다 가기로 했다. 사과와 따뜻한 차와 커피, 과자를 준비해 왔다. 쌀쌀해진 가을 바람을 맞으며 간식들을 먹는데 어느새 나는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걸을 때는 몰랐는데 그늘 아래 가만히 앉아 있으니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간식을 챙겨 먹고 다시 길을 걷다가 작은 폭포 하나를 만났다. 크기는 작았지만 세차게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계곡의 작은 웅덩이들은 온통 낙엽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빼곡히 낙엽들이 내려 앉아서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땅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물 안에 잠깐 손을 담궈 보았는데 손이 아릴 정도로 물이 차가웠다. 아직 가을인데 겨울이 성큼 다가온 것 같았다. 낙엽 쌓인 가을 풍경이 아름다워서 폭포 근처 평평한 돌 위에 앉아 삼각대를 세워 놓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며 조금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길을 걷다가 귀여운 다람쥐들을 만났다. 여름에 이곳을 찾았을 때 다람쥐들을 여럿 보았던터라 이번에도 혹시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었다. 이렇게 귀여운 녀석들을 만나니 어찌나 반갑던지! 폴짝폴찍 낙엽들 쌓인 돌맹이들 사이로 재빠르게 뛰어 다녔다. 녀석들을 사진으로 겨우 담았다.
한시간 반 정도 계속해서 걸었던 것 같다. 드디어 자작나무 숲에 도착했다. 여름에는 없었던 조형물이 하나 숲 입구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자작나무 숲을 배경으로 조형물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우리도 기념 사진을 하나 남겨 두고 본격적으로 자작나무 숲을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이파리들이 떨어져 있었다. 노오란 이파리가 가득 채우고 있을 줄 알았는데 빈 가지들도 상당히 많았다. 우리가 한 발 늦은 것일까? 내딛는 발걸음 마다 노오란 자작나무 이파리들이 서걱서걱 밟혔다. 우리는 땅에 고개를 박고 이쁜 자작나무 이파리들을 주워 담았다.
죽파리 자작나무 숲은 산림청이 인공적으로 조림한 곳이다. 1993년에 조성된 숲은 내 나이와 얼추 비슷했다. 그래서 더 정이가고 다시 이곳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여름은 경쾌하고 산뜻하며 신비로운 분위기였다면 가을은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고적한 분위기였다.
자작나무 숲은 아주 넓어서 깊숙한 곳까지 걷다 보면 그 누구도 마주치지 않게 된다. 이 넓은 숲을 우리가 오롯히 빌린 것처럼 주위는 고요했다. 가끔씩 새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파랗던 하늘이 하얀 구름으로 차올랐다. 겹겹히 쌓인 하얀 자작나무들처럼 하늘도 뿌옇게 보였다.
자박자박 낙엽 밟는 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렸다. 낙엽들을 밟으면 왠지 모르게 행복해졌다. 푸스슥 부서지는 낙엽 소리가 좋았고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거닐었던 어느 가을날 옛 기억이 떠올라 좋았다. 조용히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이곳에 와서 깊은 가을을 온전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깊은 산 속이라서 그런지 해가 금방 저물어 버렸다. 산 뒤로 넘어가버린 해 때문에 으스스한 추위가 곧장 몰려 왔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서 숲을 떠나야했다. 숲 입구에 북적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다 사라져버렸고 숲 속에 우리 혼자만 남은 것 같아 무서워졌다.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뒤로하고 서둘러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는 길은 이곳저곳 구경하며 오느라 수월하게 왔는데 가는 길은 역시 힘들었다. 여름에 왔을 때는 돌아가는 길에 더위를 먹었는지 에어컨이 그리웠는데, 이번에는 콧물이 나올 정도로 추워서 뜨끈한 히터가 그리웠다. 주차장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는 온 세상이 컴컴했다. 차에 오르니 비로소 살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비포장 도로를 달리며 자작나무 숲과 안녕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