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주년을 기념해 찾은 신안. 시월 사일에 처음 만나기 시작한 우리, 그리하여 매년 10월 4일을 기념하고 있다.
신안에 천사대교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찾아가보고 싶었는데 너무 멀어서 엄두도 못내다가...이번 연휴에 큰 맘 먹고 찾았다.
도저히 한번에 갈 수는 없어서 전날 목포에서 하룻밤 잤다. 목포에서 출발했더니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 축제현장에 사람들이 어마무시하게 많았는데 그래도 어찌저찌 주차를 하고 퍼플섬을 구경하러 나왔다.
전날 맛나게 마셨던 목포 생막걸리 조금 남은 걸 들고와서 길바닥에 앉아서 마셨다. 흐흐, 그리고 여기 카페에서 주문한 아이스아메리카노와 고구마빵도 함께 먹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지!
멀리 보이는 섬은 바로 반월도였다. 보랏빛 다리가 언뜻 보였다.
냠냠 배를 채우고 화장실도 들렀다가 보랏빛 다리를 건너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난 보라색이 들어간 원피스, 남편은 보라색 가디건을 둘러 입고서 갔다. 왜냐면 보라색 옷을 입고 오면 입장료가 면제되기 때문이다!
매표소 앞에서 약간 긴장한채로 쭈뼛거리면서 다가갔더니만, 표 끊어 주시는 분이 '두분은 그냥 들어가세요~ '라고 외쳐주셔서 신이나서 안으로 들어왔다.
반월도로 향하는 다리의 이름은 문 브릿지, 꽤나 긴 다리였는데 온통 보랏빛이라 신기해서 걷는 것이 그저 즐거웠다. 길도 보라색 난간도 보라색, 모든 것들이 보라색이었다.
다리가 그리 높지 않아서 바다 위를 걷는 느낌도 나고 신비로운 동화 속 세상으로 들어가는 기분도 들었다. 퍼플섬이라고 불리우는 섬은 반월도와 박지도인데, 안좌도에서부터 두 섬을 잇는 다리들이 온통 다 보라색이었다.
퍼플교의 시작은 박지도에 사는 어느 할머니의 두 발로 육지를 걸어 나오고 싶다던 소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안좌도와 반월도, 박지도를 잇는 목조교가 잇다라 설치 되었고 섬 주민들은 그제서야 배를 타지 않고도 육지에 닿을 수 있게 되었다.
들어서자마자 식당 하나가 보였다. 음, 뭐라도 먹고 섬을 돌아보면 더 좋지 않을까? 스르륵 식당 안으로 들어간 우리. 낙지라면을 먹을까 연포탕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이 섬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다 갈 것 같아서 좀 더 든든해보이는 연포탕을 먹기로 했다.
연포탕에 실한 낙지 두마리가 들어 있었다. 시원하고 담백한 국물과 흰 쌀밥, 그리고 막걸리도 주문해서 마셨다. 너무 맛있었다. 보통 내가 먹던 낙지는 이렇게 맛있지 않았는데, 살이 엄청 꼬들꼬들했다. 낙지만 먹어도 정말 맛있었던 연포탕. 국물까지 싹 비우고 배가 터지게 먹고나서 이제는 진짜로 섬을 걸어 보기로 했다.
여태까지 먹기만 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우리는 과감하게 반월도는 패스하고 아스타 꽃들이 피어나 있는 박지도에 곧장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박지도 섬 둘레길을 따라 한바퀴 걸어보기로 했다.
반월도와 박지도를 잇는 보랏빛 다리를 또 건너게 되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퍼플교, 좌우를 바라보면 온통 바다이고 앞을 바라보면 멀리 박지도가 보였다. 신안에 온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는데 보이는 풍경이 남해와 비슷했다. 바다 위에 둥둥둥 뜬 섬들의 모습이 끝없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이 바다 아래 뻘이 있어서 그런지 잿빛을 섞어 놓은 듯한 푸른색이었다. 은회색이라고 불러야하나? 색다른 풍경에 눈이 즐거웠다.
한참 걷다 보니 이제 박지도가 가까워져갔다. 멀리 보이던 섬이 이제 눈앞에 보였다. 보랏빛 꽃밭들이 보이고 보라색 차들이 지나다녔다. 이야, 이곳이야 말로 정말 보랏빛 섬이구나!
우리가 걸어온 다리를 돌아보니 우와, 이렇게나 길었나 싶더라. 이 기다란 다리를 따라 걸어온 우리, 멀리 보이는 섬은 방금 전에 우리가 열심히 연포탕을 먹었던 반월도였다.
우리는 아스타 국화 축제장 안내판을 따라 걸어왔다. 약간 높다란 언덕 위를 올라가니 내 발 아래 온통 보라색 아스타 국화들이 쫙 펼쳐졌다. 이야, 고즈넉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저 뾰족 솟은 봉우리를 보니 에전에 우리가 자주 찾았던 비진도가 떠올랐다. 비진도의 선유봉이 저렇게 생겼던 것 같았는데,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니 여러 풍경들이 겹쳐 보일 때가 종종 생기는 것 같다.
잿빛 섞인 푸른 빛으로 보이던 바다는 높은 곳에 올라서자 처음보다 더 푸르르게 보였다. 푸른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파란 바다와 함께 보랏빛 다리가 보이고, 그리고 그 다리 옆으로 쭈욱 펼쳐진 보랏빛 꽃밭까지.
바다와 함께 어우러진 이 풍경은 이 섬이 아니라면 만들어 낼 수 없는 그런 풍경 같았다. 내 인생을 통틀어 보았을 때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참으로 아름다운 그런 풍경이었다. 구름에 걸린 해는 바다 위에 반짝반짝 햇살을 가득 뿌려 놓았다.
우리는 언덕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잠깐 섬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대로 꽃밭만 보고 가기에는 왠지 아쉬웠기 때문이다. 해가 저물어가고 있고 구름이 꽉 끼어서 날이 어둑어둑해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걸었다.
우리가 걷는 길도 보랏빛이었다. 보랏빛 꽃들은 길따라 쭈욱 이어져 있었다. 반짝이는 바다와 반월도와 송글송글 피어난 꽃들과 구름들을 보며 걸어갔다. 둘이서 걸어가니 그저 즐거웠다.
아스타 국화 말고도 보랏빛 꽃을 피워낸 버베나도 어설프게 피어나 있었다. 누가 심어 놓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듬성듬성 핀 버베나 꽃들 너머로 반월도가 보였다.
걸어가는 내내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너무 좋아서 잠깐 꽃밭 근처에서 돗자리를 피고 앉아서 노닥거리다 가기로 했다. 멀리 퍼플교를 걸어 올 때 언덕 위의 보랏빛 지붕 집이 참 예뻐 보였는데, 어느새 우리 눈앞에 그 집이 있었다. 누군가의 집이겠지?
꽃밭과 함께 잠깐 사진을 좀 찍다가 돗자리를 펴고 흙더미 위에 자리 잡고 앉았다.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억새들이 휘날리고 눈앞의 섬은 마치 손 뻗으면 닿을 듯이 바다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양말과 신발을 모두 벗어 던지고서 발가락 사이사이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을 느꼈다. 시원하고 상쾌했다. 이렇게 맨날 바다를 바라보며 살면 좋겠다. 매일 보면 질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이렇게 멍하니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매일 몇시간이라도 보낼 수 있다면 좋을텐데.
섬을 한바퀴 돌려다가 돗자리 위에서 시간을 꽤 보내는 바람에 해가 저물어버릴 것 같아 이제 돌아가기로 했다. 멀리 보이던 커다란 보랏빛 송전탑에도 가까이 다가가보고, 귀여운 보랏빛 꽃들을 만져보기도 하고 눈에도 다시 담고 설렁설렁 우리가 올라갔던 반대 방향으로 내려왔다.
밑으로 내려와서는 아까 우리가 건넜던 '박지-반월'구간 다리가 아닌 '박지-두리' 구간 목조교를 건너 주차장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퍼플섬에 와서 보랏빛 다리를 세 개나 건넜다. 오호, 정말 우리 많이도 걸은 것 같다. 핸드폰을 보니 하루만에 2만보나 걸었더라.
주차장에 돌아오니 바람은 더 거세게 불고 세상은 더 어둑어둑해졌다. 딱 해질 무렵에 알맞게 도착한 것 같았다. 사실 이곳 섬 근처에서 하루 머물고 싶었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숙소가 없어서 다른 곳에서 자기로 했다.
다음번에 신안에 온다면 미리 숙소를 잡고 이박 삼일 동안 머무르면서 섬 투어를 다녀보고 싶다. 아주 재미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