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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피는 지심도에서의 하루 (포진지-운동장-활주로-섬끝전망대-몽돌해수욕장)우리나라 방방곡곡/국내 섬 여행 2022. 3. 17. 17:13728x90반응형
동백꽃을 보러 지심도를 찾았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어찌 기회가 되어서 동백꽃 피는 봄에 지심도에 가게 되었다.
미리 네이버 예약을 통해 장승포항에서 지심도 가는 배편을 예약했다.
동백꽃 필 때에는 방문객이 많아서 예약을 해두고 가는 것이 낫다.
시간 맞춰서 배를 기다리다가 배를 타고 지심도를 향했다. 장승포항에서 지심도까지는 15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지심도 가는 배편 승차권은 왕복권이라서 잘 들고 있다가, 지심도를 나갈 때 보여 드려야 한다.
나가는 시간은 배에 승선할 때 알려 주시니 걱정 안해도 된다.
우리는 지심도에서 하룻밤 숙박 할 예정이었다.
미리 잡아둔 민박집에 연락드렸더니 미니 전기차 같은 걸 타고 숙소까지 편하게 이동했다.
경사가 아주 급한 길들이 많아서 뒤로 넘어갈까봐 불안했지만, 아무런 사고도 없었다.
우리의 숙소는 지심도 언덕배기에 위치한 작은 민박집.
날이 좋아서 마침 이불을 말리고 계셨다. 출출했던 우리는 이곳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한바퀴 섬을 돌아보기로 했다.
짐을 일단 풀어두고 냉장고에 먹을 것들을 다 옮겨 놓은 뒤에 밖으로 나왔다.
식당도 겸하고 있는 곳이라서 사장님께 파전과 멍게 그리고 동동주를 주문했다.
날이 얼마나 좋던지 하늘보다 바다가 더 푸르딩딩했다.
어느 동남아시아의 휴양지 바닷가에 놀러온 기분이 들었다.
미세 먼지도 없고 하늘에 구름도 없고, 파다는 물감을 탄 것처럼 새파랬다.
그리고 커다란 나무에 붉은 동백꽃들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푸르른 바다를 보며 신선한 멍게와 파전을 먹었다. 동동주가 꿀떡꿀떡 넘어가는데 꿀맛이 따로 없었다.
특히 멍게가 아주 신선했다. 정말 갓 잡아서 주신거라서 멍게를 한 입 베어 물면 바다 내음이 샥- 거북하지 않게 풍겼다.
맛이 상쾌했다고 해야하나? 파전 먹다가 멍게를 먹으면 입안이 개운하게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파전이랑 멍게 그리고 동동주까지 다 먹어 치우고 우리는 섬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어디부터 먼저 돌아볼까 고민하다가, 포진지와 동백터널 부터 돌아보기로 했다.
어디로 가든 한바퀴 돌 예정이었으니, 발길 닿는 대로 먼저 갔다.
지심도에 있는 동백나무들은 내가 평소에 보아왔던 동백나무들과는 좀 달랐다.
동백나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약간 동그스름한 잘 정돈된 키가 작은 모양의 나무였다.
그런데 여기 지심도의 동백나무들은 거의다 키가 어마어마하게 컸고 뒤죽박죽 자라나 있었다.
자연 상태에서는 정말 일반 다른 나무들처럼 이렇게 크게 자라는구나 싶었다.
동백나무 우거진 숲길을 지나오니 와, 푸르른 바다가 보였다.
섬의 끝으로 걸어온 느낌이 들었다. 바다가 얼마나 푸른지 뛰어 들고 싶을 정도였다.
수평선이 아주 또렷하게 보였고 그 수평선을 바라보는데 가슴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푸르른 바다가 보이는 이곳에는 포진지가 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준비하며 지심도에 군사기지를 만들었고, 포진지는 그 때 만들어진 곳이다.
계단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동그란 자리에 포를 올려놨을 것 같다.
근처에는 탄약고도 있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면 지심도의 역사 안내판들이 이어졌다.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은 나에게는 감히 그 때의 어려움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얼마나 힘들고 힘들고 또 힘들었을까,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은 있었을까?
과거의 모든 일들을 떠올리면 지금의 나에게 감사하게 된다.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더 현명하게 행동하고 열심히 살아가야지. 반성을 했다.
아픔이 서려있는 이곳, 야속하게도 풍경은 몹시도 아름다웠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푸르고 잔잔하며 아주 고요했다.
지저귀는 새 소리가 들려오고 바람에 이파리들이 부대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평화로운 곳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해가 잘 드는 곳이라서 그런지 동백꽃들이 아주 많이 피어 있었다.
예전부터 동백꽃을 참 좋아했었는데, 꽃송이가 커서 이쁘고 땅에 떨어진 모습도 이뻤기 때문이다.
떨어진 후에도 한참동안 그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꽃들이 가득 피어 있으니 어찌나 기쁘던지 모른다.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송송 박혀 있는 꽃송이들이 보석 같았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운동장이 나왔다.
예전에는 이곳에 초등학교가 있었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학생들도 꽤 많았던 것 같다.
이제는 어린 아이들은 없고 건물만 덩그러니 남았다.
아름드리 핀 동백꽃은 그때나 지금이나 어김 없이 피고 있을텐데 말이다.
곧 활공장이 나타났다.
탁 트인 광장 같은 곳이었는데 사방으로 바다가 보여서 기분이 상쾌했다.
활공장에는 여러 포토존들이 있어 사진 찍기 좋았다.
그리고 나무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았다.
계속 걸으며 동백나무들을 참 많이도 보았다.
신기했던 점은 동백나무들이 한쪽으로 휘어서 기울어 자랐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휜 쪽으로 해가 많이 들어서 그런 것일까?
나란하게 선 동백나무들이 다 기울어져 있어서 약간 기괴한 모양이었다.
섬끝 전망대에 다다랐다.
말 그대로 섬 끝인 것일까?
민박집에서 섬끝 전망대까지 오래도록 걸었다.
드디어 섬의 끝에 도착해 푸르딩딩한 바다를 바라 보았다.
나는 섬을 걷는 것이 참 좋다.
숲 속을 걷는 것 같다가도 바다가 나타나면 바다를 걷는 것 같다.
그러다가 쿱쿱한 흙냄새 나는 숲으로 다시 들어서고 반복이다.
대나무 숲을 지나고 아직 남아있는 일본인 가옥도 구경하고
그렇게 계속 걷다가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 표지판을 보게 되었다.
지심도에 몽돌 해수욕장이 하나 있다고 듣긴 했는데, 가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가보기로 하고 길을 들어섰는데 꽤나 멀었다.
계속 내리막길을 따라 쭉 내려가다 보니 마침내 멀리 나무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왠지 곧장 낭떠러지가 있을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반짝이는 바다를 쫓아 경사진 내리막을 조심히 기어 내려가고
커다란 돌들을 밟고 지나오니 드디어 몽돌 해수욕장이 나타났다.
잔잔한 몽돌이 아주 많이 깔려있는 조그만 해변이었다.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바다의 표면 위로 둥그런 돌들을 주워 멀리 던졌다.
납데데한 돌들은 물수제비 하기 딱 좋았다.
어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거제에는 유달리 이 몽돌들이 많은 것 같다.
해변에서 다시 위로 한참 올라와서 이제 숙소에 돌아가기로 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갈 수는 없었고, 우리가 한바퀴 돌았으니 조금만 더 가면 숙소였다.
민박집 가는 길에 아주 활짝 핀 매화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매화였는지 아님 다른 꽃(앵두꽃이나 자두꽃 등등)인지 모르겠으나
코끝으로 풍기는 향기가 매화와 똑같았다.
매화나무 수형이 아주 이뻤다.
보통 매실을 목적으로 키우는 매화 나무들은 키가 작고 옆으로 넓게 퍼져 있었는데,
이 매화나무는 그저 자라난 것인지 높이 솟아있었고 풍성한 모양이었다.
아름다운 매화나무 앞에서 매화들을 사진에 많이 담았다.
매화나무를 지나 조금 더 걸었더니 민박집에 도착했다.
섬을 한바퀴 돌았을 뿐인데 만보 넘게 걸었던 우리.
정말 오랫동안 걸었던 것 같다. 민박집에 돌아오니 다리가 쑤셔서 잠시 쉬었다.
마침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방안에 지는 햇살이 스며 들었다.
지심도에 와서 마시려고 커피 원두도 챙겨왔는데,
바보같이 드립 도구 다 챙겨놓고서는 원두 가는 도구를 안챙겨와서 커피를 마실 수 없었다.
너무 아쉬워하는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이 원두를 막 부시고 으깨서 어찌쩌찌 커피를 내려 주었다.
커피에서 보리차 맛이 났는데, 커피를 잘 가는 것도 정말 중요하구나 새삼 느꼈다.
마침 우리 숙소가 서쪽이었나 보다.
숙소에서 보이는 바다 위로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노을과 함께 맛난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버너 위에 물을 끓이고 라면을 넣고 지글지글 끓여 맛나게 먹었다.
그리고 집에서 챙겨온 맥주를 꺼내 짠-하고 마셨다.
같은 맥주와 라면도 이렇게 밖에 나와서
노을지는 바다를 보며 즐기니 기분이 어찌나 좋던지.
여태 쌓인 스트레스들이 싹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았다.
지심도에서의 하루가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노을지는 풍경이 아주 낭만적이었다.
해가 저물고 방 안에서 조금 쉬다가 출출해질 즈음 다시 밖으로 나왔다.
섬에 들어오기 전 고기를 싸와서 저녁에 구워먹기로 했는데,
고기 양이 얼마 안되어서 숯불 하기는 아깝고 아주머니께서 돌판을 주셔서
버너 위에 구워 먹었는데 꿀맛이었다.
같이 챙겨온 와인과 문배주를 함께 곁들였다.
배부르게 먹고 방안에 들어가서
나는 일기를 쓰고 남편은 그림을 그리다가 잠에 빠져 들었다.
둘 다 이불 위에 누워서 피곤에 지쳐 막 잠드려는데
아무래도 밤하늘의 별을 보고 싶어서 둘 다 바람막이를 껴입고
밖으로 나왔는데 새카만 밤하늘에 별들이 어찌나 많이 보이던지. 황홀했다.
그렇게 지심도에서의 하루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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