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에서의 첫날, 원래 암만에서 하루 묵고 그 다음 여정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암만이나 사해나 거리가 고만고만해서 사해부터 가기로 했다. 암만 공항에서 차를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사해가 나왔다. 한국에서 요르단까지 비행기를 오래 타고 왔으니 무지 피곤할 것 같았다. 그래서 첫날은 푹 쉬면서 아름다운 경치 보고 수영하고 쉬면서 놀고 싶어 첫날 숙소는 사해의 좋은 호텔로 예약해두었다.
우리가 도착했던 날은 정말 날씨가 좋지 않았다. 희뿌연 먼지가 세상에 가득 낀 날이었다. 온갖 것들이 흐리고 찌뿌둥하게 보이던 날이었는데, 요르단이 원래 이런 것인지, 우리가 온 날이 마침 이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린 요르단에 온 첫날이었으니까! 다행이도 바로 다음 날에는 날씨가 기가막히게 좋아서 항상 이런 것은 아니구나 알 수 있었다.
리조트 주차장에서 본 아름다운 꽃
한시간 정도 차를 타고 달려 뫼벤픽 사해 리조트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리조트에 진입하기 전 여권을 제출하고 트렁크 검사를 받았다. 그러고서야 리조트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 차를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리조트 안에 들고 가는 모든 짐은 따로 검사를 받아야 했다. 엄청 철저하게 검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약간 쫄았다. 뭐지, 이정도로 검사한다고???!!!!
아직 체크인 시간 전이라서 짐을 맡겨두고 잠깐 리조트 안을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배도 고픈 상태여서 리조트 안에 있는 식당에서 한끼를 해결하려고 지도를 받아들고 식당가로 걸어갔다.
사실 암만 공항에 내려서 렌트카를 인수하며 잠깐 밖에 서있던 것 빼고는 에어컨 빵빵한 차 안 그리고 시원한 리조트 로비에만 있어서 얼마나 더운지 감이 없었다. 밖으로 나와보니 알겠더라. 진짜 무지하게 더웠다.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덥고 습한 것이 아니었다. 공기가 바짝 말라있는 듯 건조했고 해가 따가웠다. 다만, 그늘 아래 서면 이상하게도 시원했다. 튀르키예 카파도키아에서 느꼈던 그런 날씨였다.
이국적인 뫼벤픽 리조트 외관종려나무들이 곳곳에 서 있었다모든 건물들과 돌 바닥, 조형물들에 아이보리 빛깔이 감돌았다아름다운 꽃과 빌라중동의 기운이 물씬 느껴졌던 리조트 내부
날은 더웠지만 이국적인 풍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언제였던가, 아프리카 대륙 위쪽의 이슬람 상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글을 읽으며 상상하던 그런 집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런 곳에 와보고 싶었는데, 결국 와보게 되었네. 사람 사는 모습이 참 가지각색인 것이 새삼스레 신기했다. 뭔가 각지고 흙이나 돌로 만든 듯한 건물들과 대추야자 나무들. 우린 거대한 테마파크 안에 와있는 것 같았다.
낯선 풍경들이 신기해서 더웠지만 걷는 것이 즐거웠다. 리조트 안에 중식당과 이탈리안 레스토랑, 요르단 전통식을 파는 식당이 있었는데 여행 첫날이니 만큼, 요르단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을 찾았다.
뫼벤픽 리조트 부지 안에 있던 식당에 찾아왔다
일단 시원하게 생맥주 두 잔을 주문했는데, 요르단에서는 맥주 값이 엄청나게 비싸다. 이 식당에서 생맥주를 한잔에 만원 넘게 주고 먹었던 것 같다. 요르단은 이슬람 국가라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질 않는다. 그래도 아예 술을 팔지 않는 것은 아닌데, 외국인 용(?)으로 술을 제조하는 공장도 여럿 있다고 한다.
요르단에서는 맥주값이 금값이었다소박하게 주문한 메뉴들, 이마저도 배불러 다 먹지 못했다는...맛있었던 양고기 요리
우리는 양고기 요리와 후무스, 그리고 직원이 추천해준 감자를 매콤하게 볶아낸 메뉴를 주문했다. 이렇게 세메뉴에 생맥주를 3잔 정도 마셨는데 10만원이 넘는 돈이 나왔다. 물론, 엄청 맛있게 잘 먹어서 만족스러운 식사였지만 첫날부터 요르단 관광지 물가에 제대로 혼쭐이 났다.
시큼하면서도 고소한 요거트에 불맛 나는 부드러운 양고기와 각종 견과류들이 섞여있던 메뉴.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참 맛나게 먹었다. 그리고 고소한 후무스에는 향이 좋은 올리브유를 잔뜩 뿌리고 생레몬즙도 팍팍 짜서 먹었는데 완전 맛있었다. 그리고 매콤한 감자! 매콤한 감자 볶음이 킥이었다. 이 세 메뉴를 계속 돌아가면서 먹고 생맥주를 마시는데 정말 행복했지.
비록 우리 지갑은 울고 있었지만...
리조트가 참 예뻤다
늦은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호텔 로비로 돌아갔다. 이제 체크인을 할 차례였다. 프론트에 가서 맡겨둔 짐을 찾고 키를 받았다. 우리가 머물 방까지 버기를 타고 이동했다. 체크인 할 때와 체크아웃 할 때 버기를 타고 이동해서 아주 편리했다.
우리가 배정 받았던 방, V15바닥은 다 대리석에 벽은 하얀색으로 페인트칠 되어 있었다고풍스러웠던 욕실작은 테이블과 의자
길고 긴 비행 끝에 예약한 방에 들어오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쾌적하고 아름다운 공간이 주는 즐거움이 이렇게나 크다니! 우리의 몸과 마음은 아주 오랜 시간 이동하며 또 비행기를 타며 완전지쳐 있었다. 깨끗하게 씻고 침대에 누워버리고 싶었지만, 고대하던 사해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럴 수 없었다.
테라스 공간뭔가 흙으로 빚어 만든 듯한 건물테라스의 작은 휴식 공간
테라스에 나가면 시원한 수영장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 빌라 동만 사용할 수 있는 전용 수영장이었는데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수영장에서 놀아봐야지 생각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이용하지 못했다. 코앞에 두고도 이용하지 못하다니! 돌이켜보면 무척 아쉬운데 그 때 우리의 체력은 바닥이 나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테라스에서 보이던 전용 수영장
방 안에서 짐을 풀고 잠깐 휴식을 취하다가 사해로 향했다. 말로만 듣던 사해에 드디어 가게 되다니! 사해로 가는 길은 참 아름다웠다. 잘 가꾸어진 조경수들과 아름다운 건물 사이를 가르며 무더위를 뚫고 사해로 갔다.
사해로 내려가는 길멀리 사해가 보이기 시작했다!사해가 보이는 수영장
가는 길에 커다란 수영장이 하나 있었는데, 그 수영장은 아이들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수영장이라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보다 더 아래 사해가 바로 앞에 보이는 넓은 풀이 있었는데 여기는 노키즈존이라서 여유롭게 수영하며 칵테일과 맥주를 마실 수 있어 좋았다. 우린 사해에서 놀다가 수영장으로 와서 시간을 보냈다.
'You are at the lowest point on earth 420 meters below sea level'
해수면보다 420 미터 아래에 있는 사해, 요르단 강에서 흘러 들어온 물이 다른 곳으로 나가지 못하고 오래도록 증발되면서 소금이 진하게 남아 염분이 가득한 호수가 되었다. '사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당연히 바다인 줄 알았는데 바다가 아닌 호수였다. 하지만 직접 사해를 보게 되면 아주 넓고 장대해서 바다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사해로 빠져드는 것 같던 길보글보글 거품이 일던 바다모래 옆에 굴러다니던 소금 조각들
소금기가 많아서 그런지 물 위에 하얀 거품이 일었다. 철썩이는 파도를 보면 사해는 정말 바다 같았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파도가 거세지고, 바람이 잔잔해지면 파도도 잔잔해졌다. 사해 주변에는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소금 덩어리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작은 자갈들 사이에 투명하고 하얀 소금 알갱이들이 굴러다녔다.
사해에 둥둥 떠보기
사해에 와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일은 바로 물 위에 둥둥 떠보기였다. 정말 물 위에 둥둥 뜨려나? 조심스럽게 물 안으로 들어가서 몸을 누워 보았다. 우와, 정말 물 위에 몸이 둥둥 떴다. 처음에는 긴장해서인지 몸에 힘을 줘버려서 물 속으로 빠질 것 같았는데, 서서히 긴장이 풀리니 물 위가 정말 편안해졌다. 물 위에 대자로 누워보기도 하고 땅에서 걷듯이 걸어 보기도 했다. 정말 재밌었다.
사해 앞에는 머드를 담아두는 통이 하나 있었다. 늦은 시간에 와서 머드는 거의 바닥이 나있었는데, 그래도 통 밑에 깔린 검은 머드들을 꺼내서 몸에 발랐다. 이 머드들은 사해 밑에서 퍼올린 것이었는데 오랫동안 퇴적된 응축된 진흙이었다. 뭔가 몸에 좋은 것 같으니 덕지덕지 바르고, 다시 사해에 들어가고 또 나와서 머드를 바르고 그렇게 정신없이 놀았다.
해가 저물어가던 사해사해가 바라보이는 조용한 수영장칵테일과 맥주 타임사해 너머 이스라엘 땅 위로 저무는 해
사해에서 열심히 놀다가 사해 위쪽의 조용한 수영장으로 왔다. 칵테일과 맥주를 마시며 멀리 저무는 해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사해의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니! 믿기지 않는 낭만적인 순간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땅은 이스라엘 땅이었다. 요르단이나 이스라엘이나 우리에게는 무척 낯선 그런 땅이었는데, 이렇게 그 땅 위에 서있고 멀리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름다운 종려나무해는 완전히 저물었다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뒤돌아보면 보이던 풍경
사해에서 오래도록 시간을 보내다가 호텔로 돌아가는 길, 오전에는 날씨가 정말 좋지 않았는데 해가 저물고 난 다음 하늘은 오히려 더 푸르러졌다. 하늘이 푸르러지니 바다도 푸르러졌다. 내일은 좀 날씨가 더 좋아지려나?
사람들이 빠져나간 수영장조명이 켜지기 시작한 리조트우리 방으로 돌아가는 길길가에는 커다란 올리브 나무들이 가득했다
호텔 방에 들어와서 깨끗하게 씻고 우리끼리 만찬을 즐겼다. 한국에서 챙겨온 진라면과 짜파게티, 그리고 김치를 꺼내서 맛나게 먹었다. 고작 하루, 넉넉잡아 보면 이틀 정도 지났을 뿐인데 우리의 몸은 벌써 매콤한 고춧가루와 마늘을 원하고 있었다. 면은 물론이고 국물까지 싹싹 다 마셔 버렸다. 너무 맛있더군.
방으로 돌아와서 먹은 우리들의 저녁식사테라스에서 보이던 밤의 풍경
테라스로 잠깐 나가서 푸르른 수영장을 바라 보았다. 수영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서 정말 고요해보였다. 체력만 된다면 저기 수영장 한가운데 둥둥 떠서 하늘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런데 너무 피곤하고 기운이 없었다. 오래도록 이동하느라 지쳤고 사해에서 수영하느라 더 지쳐버렸다. 아쉽지만 더 놀았다가는 내일 일정에 무리가 갈 것 같아서 침대에 퍼질러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