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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르단 여행 와디럼에서 보낸 깊은 사막의 밤 (베두인 전통 요리 자르브 Zarb, 와디럼 어두운 밤에 사막 걷기)
    지구별 여행자/요르단 2024. 7. 2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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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르단 와디럼에서 지프 투어를 마치고 다시 우리의 숙소로 돌아왔다. 사막 한가운데 자리잡은 조그만 버블텐트가 우리의 숙소였다. 사막 투어를 마치고 났더니 온몸이 찌뿌둥하고 끈적했다. 스카프, 셔츠, 바지, 운동화 등등 곳곳에서 작은 모래알들이 떨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따뜻한 물로 몸을 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사막 한가운데에서도 자본주의는 힘을 발휘하는구나, 비싸더라도 화장실 딸린 숙소를 잡길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깨끗하게 씻고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해가 저물어서 그런지 아니면 텐트 안에 에어컨을 틀어놔서 그런지, 낯선 방안에서는 사막의 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두워진 사막을 바라보며 잠깐 눈을 부쳤다.


    눈을 뜨니 사막에는 새카만 어둠이 찾아왔다. 너무 어두워서 불을 켜니 버블텐트 유리 조각마다 우리 둘의 모습이 비쳤다. 싸이키델릭한 느낌이 신기해서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사막에서의 저녁은 정해져 있었다. 망망대해 같은 사막에서 우리가 식당을 찾아갈 수 없는 노릇이니, 숙소에서 제공해주는 전통식 자르브(Zarb)을 미리 신청해두었다.

    열심히 모래구덩이를 파내는 베두인
    덮어둔 천을 걷어 내었다


    베두인들의 전통음식 자르브(Zarb)는 모래 구덩이를 파서 그 안에 뜨거운 석탄과 함께 음식을 넣어 몇시간동안 두고 천천히 익혀먹는 바베큐 요리이다. 미리 준비해둔 요리가 모래구덩이에서 꺼내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모래구덩이 안에 솥이 담겨 있었다
    은박지로 싼 솥을 꺼냈다


    목축을 하던 베두인들은 한낮에는 너무 더워 활동하기 어려웠기에 주로 캠프에 머무르며 차를 마시고 가족들과 함께할 저녁을 미리 준비했다. 선선해질 무렵 동물들에게 풀을 먹이러 가야했고 해질무렵에야 캠프에 돌아왔기 때문에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기에 한낮의 비는 시간에 요리를 한 것이다.

    천천히 은박지를 벗겨내는 베두인
    모습을 드러낸 자르브(Zarb)
    꽤나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한낮에 미리 채소와 고기들을 석탄과 함께 모래구덩이에 넣어두고 몇시간 동안 익혀두면 저녁에 캠프에 돌아와 꺼내 먹기만 하면 되었다. 모래구덩이 안에 넣어두었기 때문에 해충도 막을 수 있었고 다른 동물들이 음식을 먹어치우는 일도 막을 수 있었다. 사막을 활용한 베두인들의 지혜가 담긴 전통음식을 만드는 과정도 지켜보고 또 맛보게 되었으니 참 뜻깊은 시간이었다.

    자르브를 식당으로 가져가는 베두인
    우리가 저녁을 먹었던 식당
    뷔페식으로 음식들을 원하는 만큼 떠 먹었다


    따로 마련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베두인들이 방금 모래구덩이에서 퍼낸 자르브를 식당으로 가져갔다. 이국의 사막에서 맞이하는 저녁식사, 과연 자르브는 어떤 맛일까나?


    쇠망의 아랫층에는 구워진 닭고기가 있었고 윗층에는 구워진 감자와 당근, 호박이 있었다. 그릇에 먹을만큼 야채와 고기들을 담고, 쌀밥과 난, 샐러드를 덜어서 자리에 왔다. 사막에서 마실 물은 조그만 플라스틱 컵에 담긴 물이었다.

    풍족한 듯 하면서도 왠지 부족한, 그래서 사막다웠던 그런 저녁식사였다.


    불향이 그윽하게 풍기던 닭고기와 뭉글한 식감의 야채들과 짭조름한 양념이 밴 밥과 토마토, 오이 등이 섞인 샐러드를 함께 곁들였다. 대체로 자극적이지 않고 삼삼한 맛이었다.


    어느순간 식당 안에는 K-pop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베두인이 한국인 여행객이 있다고 나름 신경써서 음악을 틀어준 것 같은데, 이 머나먼 사막에서 K-pop을 들으니 좀 기분이 이상했다. 아주 멀고 낯선 공간이 갑작스레 확 익숙해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버블텐트 안에서 바라본 사막
    버블텐트 앞 돌산의 실루엣


    저녁을 먹고 나니 사막에 깊은 어둠이 찾아왔다. 우리가 머물고 있던 버블텐트 앞에 보이던 커다란 돌산은 이제 검은 실루엣으로 보였고, 그 뒤로는 희미한 빛들이 번뜩였다. 아마도 저 돌산 너머에 무언가 있나보다.


    짙은 밤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떠 있었다. 모래들은 마치 바다 물결이 일렁이는 것 같은 모양으로 멈춰 있었다. 우리는 부드러운 모래 침대 위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카만 하늘에 점박이처럼 하얀 별들이 반짝였다. 낭만적인 사막의 밤이었다.


    짙은 어둠 속 먼 불빛에 의지하며 모래 위를 걸었다. 신발을 손에 쥐고 맨발로 모래 위를 걷고 있노라면 푹푹 발이 박히고 발가락 사이사이로 모래알들이 스며들어왔다. 모래알이 온발을 감싸면 부드러운 감촉과 따뜻한 온도에 기분이 좋아졌다.


    잠들어 버리면 다음날이 되고, 다음날이 되면 사막에서의 밤이 끝나버리기 때문에 잠들기 아쉬웠다. 잔잔한 모래들을 밟으며 어두운 사막을 걸어다니다가 버블텐트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그런데 이날 푸르스름이 감돌던 새벽녘에 하늘에서 어마무시하게 비가 내렸고 우르릉 천둥이 쳐댔다. 큰 소리에 깜짝 놀래서 깼는데, 버블텐트의 유리창 너머로 번개가 찌익 하늘을 가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구름이 자욱하게 끼고 비가 내렸던 와디럼


    사막은 건조하고 뜨겁고 메마른 공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억수로 내리는 비를 보게 되다니,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비오는 사막이라니! 우린 참 운이 더럽게 없는 것인지 운이 기깔나게 좋은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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