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야마에서 시코쿠 카르스트로 가는 길은 꽤나 어려웠다. 울창한 숲 속의 좁은 산길을 따라 갈 때면 앞에서 차가 와서 마주칠까봐 조마조마했다. 낭떠러지 같은 언덕길을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도착한 시코쿠 카르스트 '메즈루다이라'
신기하게도 위에는 도로가 아주 잘 깔려있어서, 비록 오기는 힘들었으나 막상 와보니 렌트카로 수월하게 잘 다닐 수 있었다. 메즈루다이라 안내판 앞에 있던 식당 겸 휴게소 같던 건물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미카와 휴게소에서 밥을 안먹고 왔으면 우리 쫄쫄 굶을 뻔했다.
나무로 만든 귀여운 젖소 모형 옆으로 작은 길이 나있었다. 그 길을 따라서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작은 카페 '카르스트 커피'가 나온다.
이 높은 고원 위에서 커피라니, 정말 기대 만발인 상태로 멀리 보이는 하얗고 조그만 캠핑카 같아 보이는 녀석을 향해 걸어 내려갔다.
감성 넘치는 카페 카르스트 커피(Karst Coffee).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초원을 거닐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문을 닫은 상태였다. 아뿔사, 잠시 뒤에 문을 연다는데 그 때까지 기다릴까 싶다가, 적당히 돌아보고 다음 목적지로 또 이동해야했기에 다음 기회에 와보기로 하고 돌아섰다. 아쉬웠다 😭
카페 근처에 앉아 있을 공간들이 많아서 아쉬운 김에 잠시만 앉아서 경치도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가기로 했다. 거대한 산맥이 쭈욱 이어져 보이고, 푸르른 초원과 군데군데 초코칩마냥 박혀있던 석회암들이 신기했다. 사실 박혀있는게 아니라 침식 작용에 의해서 드러난 것이라고 봐야하겠지만, 뭔가 위에서 콕콕 박아 넣은 듯한 모습이었다.
지대가 높기도 하고 건물도 없고 푸르른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서 바람이 많이 불었다. 그래서 그런지 곳곳에 풍력 발전을 하는 바람개비들이 세워져 있었다.
카페 맞은편 언덕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작은 가게가 하나 있어서 찾아왔다. 우유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들고 먹으며 겹겹이 이어진 푸른 산맥들을 구경했다.
바람 솔솔 불어오고 아이스크림은 고소하고, 경치는 끝내주고 아 좋구나~
이 넓은 초원 위에서 소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풀을 뜯고 있었다. 소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좁은 축사 안에서 배식해주는 건초나 사료를 먹는 장면이 생각난다. 그리고 엄청난 똥냄새. 여행다니며 축사 근처를 지나면 냄새가 장난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이곳에서 살고있는 소들은 참 행복해보였다.
넓은 초원 위로 시야를 가리는 건물들이 없어서 하늘이 어찌나 높게 보이던지 모른다. 넓은 하늘 아래 넓게 펼쳐진 세상, 하늘 위 초록 세상을 산책하는 느낌이었다.
렌트카를 타고 383 국도를 따라서 드라이브를 했다. 어딜가나 풍경이 예술이라 차를 멈춰세우게 되었다. 렌트카를 타고 왔으니 마음가는대로 차를 멈추고 또 다시 달리고를 선택할 수 있어 좋았다.
차를 잠시 멈춰 세우고서 하늘 위 초원을 걸었다. 핸드폰 어플로 해발고도를 보니 1,400m가 넘었다. 이렇게 높이 올라왔으니 하늘을 걷는 느낌이 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멀리 보이는 높은 산들이 다 우릴 마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새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초록 풀들이 무성한 들판, 그 위로는 하얀 석회암들이 듬성듬성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를 거니멸 유유히 풀을 뜯고 있는 소들.
시코쿠 카르스트에 와서 볼 수 있었던 기이하고 신기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산맥이 아래로 보이는 쪽에 서면 소들이 하늘 위에서 풀을 뜯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순한 소들은 사람들을 봐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잠시 우릴 바라보고 눈을 마주치는 듯 했는데 이내 풀 뜯기에 열중할 뿐. 그저 풀만 계속 뜯고 있는 소들과 푸르른 하늘과 그 아래 펼쳐진 더 푸른 초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쓰야마에서 시코쿠 카르스트까지 꽤나 먼길이었고 가는 길도 험했지만, 이곳까지 온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을 줄이야.
우리가 이곳을 찾은 것은 봄날, 푸르른 초원이 특히 아름다운 때였다. 가을이면 이곳이 억새로 뒤덮인다고 하니 그 풍경도 아주 근사할 것 같다. 12월부터 3월까지는 눈 때문에 출입이 불가하니 봄과 여름, 가을까지만 이곳에 올 수 있다. 언젠가 이 근방에서 하루 묵으며 밤에 쏟아지는 별들을 보러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