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겨울철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풍기는 대구 근대골목 돌아보기 (반월당, 청라언덕, 제일교회, 계산성당, 마당깊은 집, 약전골목)
    우리나라 방방곡곡/경상도 2024. 12. 15. 23:28
    728x90
    반응형

    예전에 대구에 면접보러 왔을 때였나, 그 때 대구에 와서 약전골목을 걷고 청라언덕을 올랐었는데 그 생경했던 마음이 지금까지 계속 가슴 속에 남아있었다. 그 후에도 몇번 청라언덕을 오르긴 했는데 첫 기억 때문인지 주기적으로 가게 되는 그런 장소가 된 것 같다. 이 날도 그냥 갑자기 청라언덕에 가고 싶어서 오랜만에 집 근처 지하철에 올라 반월당 역에서 내렸다. 청라언덕 지하철 역도 있는데 반월당에 내려서 지하상가를 구경하다가 걸어가고 싶었다.


    지하상가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일요일이라 그런가? 백화점에도 지하상가에도 어디서든 사람들이 넘쳐났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대구에 살고 있고 주말에는 중심지는 항상 사람들로 미어 터지는구나. 지하상가를 돌아보다가 연말 기념해서 귀여운 양말들도 좀 사고 반야월 닭강정이랑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사서 맛나게 먹었다.


    반월당에서 주전부리를 먹고 역사 밖으로 나와서 청라언덕 쪽을 향해 걸어갔다. 역과 역 사이는 걸어가면 생각보다 금방이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3.1만세 운동길이다. 작은 돌계단들이 모인 3.1만세 운동길, 벽면에는 옛 사진들이 붙어 있어서 구경하며 올라가기 좋다. 왼편으로는 태극기들이 줄줄이 꽂혀 있고 그 아래 초롱이가 계단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청라언덕에 올라 왔다. 많은 곳들이 공사 중이긴 했지만, 그래도 옛스런 분위기와 오래된 집들, 언덕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풍경, 교회의 반짝이는 모습과 잘 가꾸어진 조경수들이 모습이 예전과 그대로인 것 같았다.


    청라언덕이라는 이름에서 '청라(靑蘿)'는 담쟁이를 뜻한다. 담쟁이 언덕이라는 뜻인데, 오래 전 이곳에 자리를 잡았던 선교사들이 주변에 담쟁이들을 많이 심어 놓았던 탓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겨울에 접어드는 무렵이라 그런지 담쟁이들이 붉게 변해 있었다.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선교사의 집 지붕에는 기와가 얹어져 있었다. 한국적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집들, 넓은 창문 사이로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돋보였다. 본래 청라언덕은 가난한 이들이 몰래 시신을 묻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꺼림직하게 여기던 곳이었는데 외국인 선교사들은 이런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서 선교활동을 벌였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은 곳들이지만, 이곳에는 새들도 많이 살고 있었고 작은 관목들 사이를 빠르게 오가며 뛰어 다니는 길냥이들도 많았다. 동무생각 노래가 담긴 비석을 한 번 돌아보고 슬쩍 노래도 마음 속으로 웅얼거려 보며 언덕을 돌았다.


    근처에 즐비하게 늘어선 아파트들과 붉은 벽돌의 집들이 한 눈에 보이는 풍경이 참으로 이색적이었다. 옛것과 새로운 것이 어우러진 공간, 독특한 풍광에 잠시 걷던 길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누군가 이 공간을 보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온통 아파트 천지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3.1만세 운동길을 따라서 다시 내려왔다. 계단 중간 즈음에 제일 교회로 가는 계단길이 나있어서 그리로 올라갔다. 우뚝 솟아오른 검은 첨탑이 무척 이국적이었다. 전통이 아주 잘 보존된 유럽의 옛 골목을 걷다가 만난 그런 교회의 느낌이랄까? 저 검은 첨탑의 교회는 오래 전 선교사가 이 땅에 발을 딛었을 때 세웠던 교회는 아니고 최근에 지어진 교회이긴 했지만, 이 교회도 시간 속에 묻히게 되면 결국에는 다 똑같아지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계단 아래에서 교회를 바라보는데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색색깔의 전등과 멀리 보이는 스테인드 글라스, 첨탑과 이국적인 건물의 모습이 신비롭게 보였다. 종교는 없지만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종교적인 분위기에 스르륵 빠져들고 말아 누가 기도하라고 하면 절로 기도가 될 것 같았다.


    어둠을 밝히는 반짝이는 전구들과 빨간 조명, 스테인드 글라스를 바라보며 울려퍼지는 캐롤 소리를 듣고 있으니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가 무척 기대되며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이 생겨났다.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인데, 그런 날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본적은 그다지 없는 것 같다. 그저 그 날만은 그냥 캐롤을 들으며 거리를 걷기만 해도 모두에게 즐겁고 행복한 날이었으면 좋겠다.


    반짝이는 빛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교회 앞에서 한참 서있었던 것 같다. 아무도 없는 교회 앞에서 울려 퍼지는 캐롤 소리를 들으니 절로 춤이 나왔다. 어디 크리스마스 마켓이라도 온 것 마냥 즐겁고 들뜨는 기분이었다. 연말에 청라언덕에 오르길 참 잘했다.


    제일교회 주차장 쪽으로 나가니 멋진 도시의 야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하늘로 쭉쭉 뻗은 빌딩들과 한옥, 오래된 건물들이 어우러진 도시의 풍경이었다. 언젠가 이 풍경도 완전히 바뀌어서 온통 높은 빌딩들 천국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제일교회 쪽 언덕 위 계단에 서니 반짝이는 전구들로 감싸진 관목 너머로 계산성당이 보였다. 붉은 벽돌에 검은 첨탑과 가운데 둥그런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성당. 그 뒤로 꼭 맞춰서 만든 것만 같은 높다란 빌딩 둘도 같이 보였다. 어둠을 밝히고 있는 반짝거리는 두 빌딩 옆으로 또 다른 빌딩이 만들어지고 있는 와중이었다.


    언덕 아래로 내려와서 길을 건너 계산성당으로 왔다. 나무들이며 작은 관목들이 여러 빛깔로 반짝였다. 옛스런 성당 건물과 반짝이는 조명들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모른다. 연말에는 그냥 교회만 찾아 다녀도 멋진 구경을 실컷 하겠는걸? 성당 안에서는 미사가 진행중이었다. 슬쩍 구경하다가 엄숙한 분위기에 살며시 다시 나왔다.


    계산성당에서 저 멀리 언덕 위에 있는 제일교회를 바라보면 풍경이 제법 근사했다. 계산성당을 지나서 다시 골목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발길 닿는대로 걸어갔다. 걸어가며 성당 측면에 있던 스테인드 글라스가 인상 깊어서 사진을 찍어 두었다. 성당에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라니, 오래 전 조선인 선교자들의 모습을 담은 스테인드글라스인 것일까? 아니면 천주교 박해 때 순교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골목길을 걷다가 발견한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 김원일 작가가 쓴 자전적 소설 '마당깊은 집'을 모티브로 만든 전시 체험공간이었다. 소설 속 공간을 비슷하게 재현해놓고 소설 속 인물들과 여러 이야기들을 짤막하게나마 보고 경험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운 좋게도 해설사분께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셔서 재미나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MBC에서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하기도 했고, 세계 여러 나라에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서 출판되었다는 마당깊은 집. 몹시 궁금해져서 조만간 서점에 들러서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마침 금호강 주변에 살고 있는데, 옛 금호강변의 모습도 전시 공간에서 영상으로 흘러 나오고 있어서 신기했다. 마지막에는 해설사분께서 즉석 사진을 촬영해주시기도 했다.


    근대 골목 걷다가 하수구 뚜껑이 귀여워서 사진을 찍어 두었다. 우리가 이날 돌아보았던 곳들이 다 동그라미 안에 담겨 있었다. 근대골목을 돌아다닌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처음인 것처럼 재미났던 하루였다.


    약전골목에 들어서서는 오래된 제일교회도 만났다. 아까 보았던 커다란 교회는 신축 건물이었고, 이 교회가 오래된 제일교회 건물이었다. 지금은 기독교 역사관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붉은 벽돌과 검은 첨탑이 계산 성당과 좀 비슷한 모습이었다.


    약전 골목을 걸으며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길을 걷다가 붉은 등이 대롱대롱 매달린 일본식 식당에 들어갔다. 개인 화로에 고기를 구워먹는 식당이었는데 꽤나 괜찮았다.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동성로 쪽으로 걸어가며 시내를 걷다가, 아트박스랑 교보문고에 들러서 크리스마스 용품들을 실컷 구경하며 연말 분위기를 느꼈다.


    시내 나들이를 마치고서 집에 들어왔는데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이던 트리. 바깥 구경도 좋았지만 우리 집도 그에 못지 않게 아름답고 좋았다. 올해는 포근하고 아늑한 우리 집에서 연말을 재미나게 보내야겠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