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합천에서 하루 머물기로 하고 미리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합천호를 마주보고 있는 숙소, 들어서자마자 발 밑으로 낙엽들이 바스락거렸다. 빈 가지들만 남은 나무들과 낙엽들이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해주었다.
해질 무렵에 도착한 숙소, 눈 앞에 보이던 호수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합천댐을 만들면서 생겨난 어찌보면 인간이 만들어낸 호수, 그치만 그냥 날것의 자연처럼 아름다웠다. 호수 위에 떠있는 하늘과 구름, 나무와 산. 고요하고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는데 멀리서 새소리만 간간히 들려왔다. 호수 안에 또 다른 세상이 담겨있는 것 같아 뛰어들고 싶었어.
다음날 아침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대충 챙겨입고 쌀쌀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호숫가로 향했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아,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물안개가 스르륵 스르륵 호수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오른편 산 너머에서는 해가 떠오르려는지 하늘이 붉게 타올랐다. 밖에 오래 서있어서 그런지 몸이 으슬으슬거렸지만 왠지 모르게 이 추위가 좋았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구나. 기다리던 가을. 가슴 속을 파고드는 차가운 공기는 상쾌하게 느껴졌다.
새벽녘 물안개를 넋놓고 구경하다가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잠들었다. 언제였던가? 아마도 늦은 아침 다시 잠에서 깨어 창밖을 바라봤을 때였던가? 아직까지는 푸릇한 산자락에 걸린 구름이 호수 위에 둥둥 떠있었다. 그리고 신비롭게 호수 가운데 서있는 나무 한그루에는 하얀 새가 앉아있었다. 신선이 지나가다 너무 아름다워 잠시 놀다가 갈법한 풍경이었다. 우리나라에 아름다운 곳들이 어찌나 많은지 여행하며 매번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