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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에 가을 조각 담으러 가다, 앤의 정원에서우리나라 방방곡곡/경상도 2021. 9. 20. 18:48728x90반응형
비가 한방울 두방울씩 떨어지던 날 성주로 향했다. 여기서 하루 머물고 다음날 가야산에 오를 작정이었는데 비가 꽤 많이와서 그냥 마음 편히 쉬다 가기로 했다. 대구에서 미리 장을 보고 성주 펜션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경 정도였다. 이제 해가 짧아져서 컴컴한 한밤중처럼 느껴졌던 저녁이다.
반짝반짝 꼬마 전구들이 짙은 산 속 어둠을 밝혀 주었다. 펜션에 가까이 다가서니 가을색 곱게 입은 정원이 우릴 반겨주었다. 짐을 영차영차 옮기고 배가 너무 고파 서둘러 바베큐 준비를 했다. 사온 고기를 꺼내고 야채들을 씻고 자르고, 쌈장도 꺼내어 덜고 밖에 있는 바베큐장으로 하나둘씩 옮겼다. 부랴부랴 준비를 마치고 허겁지겁 구워먹기 시작했다.
요즘 좋은 음식과 좋은 술을 같이 즐기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잘 어울리는 술은 음식을 더욱 더 맛있게 느끼도록 만들어 준다. 은근한 취기에 기분이 좋아 맛있어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름에 이끌려서 장을 보며 사온 '풍정사계-춘'. 달짝지근하면서도 과일향과 꽃향이 기분 좋게 나는 술이었다. 난 아직 술을 잘 몰라서 그저 달고 향만 좋으면 그만이다.
배가 좀 불러올 즈음 은박지에 싼 고구마와 단호박을 숯불 안에 넣어두고 정원을 산책했다. 비가 오다 말다하는 날씨, 바닥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비가 내리면 짙어지는 흙냄새가 좋아 걸음이 즐거웠다. 정원을 둘러보는데 펜션에 사는 하얀 고양이가 우리를 쫓아왔다. 사람을 겁내지 않고 달려드는 개냥이였다. 몇번 쓰다듬어 주다가 우리 갈길을 가니 고양이도 쿨하게 자기 갈 길을 갔다.
이곳 펜션 주인 내외가 공방도 운영하고 있다길래 구경하러 들어갔다. 공방 안 천장은 유리로 되어 있었다. 낮이면 해가 천장에서 내려와 비추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한켠에 가득 놓여져 있는 토분들과 식물들을 보니 작은 온실 같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공간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조심스러웠다. 비밀스럽게 만든 정원에 몰래 들어온 기분, 푸릇한 담쟁이들이 한쪽 벽면을 가득 덮고 있었다. 말린 꽃들을 이용해 만든 리스나 인테리어 소품들, 타샤 할머니가 그려진 그림들도 볼 수 있었다.
이 곳 주인장이 꿈꾸는 삶은 타샤 할머니 같은 삶일까? 타샤 할머니의 모습이 담긴 그림들, 그것도 직접 그린 듯한 그림들이 몇 점 있었다. 자연과 어우러지며 하루하루 충실하게 사는 삶, 내가 꿈꾸던 삶을 어떤 이는 현실로 만들어 살아가고 있다. 환상이 현실로 다가오게 되면 완전히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난 그저 부러웠다.
숙소에 히노끼탕이 있어서 산책 나갔다 들어와서 뜨끈한 물 속으로 들어갔다. 물에 젖으니 편백나무 향이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위로 조그맣게 난 창을 반쯤 열어두니 시원한 공기가 훅 들이쳤다. 몸이 뜨거운데 공기까지 뜨거우면 너무 답답해서 오랫동안 탕 안에 있지를 못한다. 그런데 숨쉬는 공기가 차가우니 상쾌하고 개운해서 탕 속에 무한정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탕 안에 들어갔다가 나오니 온 몸의 나쁜 것들이 다 빠져나간 것처럼 개운했다. 숯불 안에 넣어 놓은 고구마를 보러 뛰쳐나갔는데 오랜시간 천천히 구웠더니 아주 잘 익었다. 호일을 벗겨내고 호호 불어가며 군고구마를 먹었다. 산 밑이라 그런지 공기가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밤이 깊어질수록 공기는 차가워졌지만 두툼하게 껴입으면 전혀 춥지 않은 날씨였다. 우리는 잘 익은 고구마를 다 먹고 피날레로 라면까지 끓여먹고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 계단 위 2층에 침대가 놓여 있었다. 침대에 누우면 눈 앞에 보이는 창 너머로 하얀 자작나무와 노랗게 물든 이파리들이 보였다. 창 안에 담긴 모습은 마치 액자 같았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지나며 변하는 자연을 담은 그런 액자, 언젠가 집을 짓게 되면 창을 많이 내고 싶다.
숙소에서 아침을 챙겨주셔서 어제 바베큐 먹었던 곳에서 아침을 먹었다. 체크아웃을 하기 전 잠깐 펜션 밖으로 나가 아침 산책을 하고 왔다. 펜션 앞으로 보이는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산이 너무 이뻤다. 초록 산에 붉은빛 노란빛을 듬성듬성 칠해 놓은 것 같았다. 날은 흐렸지만 비가 안오는 것에 감사하며 걸었다.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바닥에 단풍잎들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아스팔트 바닥 위에 흩어진 단풍잎들은 밤하늘에 뜬 별들 같았다. 우리는 쭈그리고 앉아 단풍잎들을 주웠다. 금방 지나가버릴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가을 조각을 담고 일기장 맨 끝에 하나씩 껴 넣었다.
펜션으로 돌아와서 바리바리 짐을 싸고 체크아웃하고 나왔다. 아직 배는 고프지 않으니 어디를 갈까 하다가 아침 산책을 하다가 발견한 카페 리베볼이라는 곳에 찾아갔다.반응형'우리나라 방방곡곡 > 경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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