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휴일 마지막 날, 남편이 간월재에 가보자고 그랬다. 날이 너무 좋아서 하늘이 어찌나 이쁘던지, 미세먼지 하나 없는 맑은 공기에 알록달록 물든느 단풍들까지 어디론가 떠나고 싶기는 했다.
그런데 다만, 바람이 엄청스레 불었는데 뭐, 따뜻하게 입고 가면 되니까!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우리는 잠깐 간월재 입구 쪽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김밥과 도토리묵을 먹었다. 쫀득거리면서 찰기가 엄청난 진한 도토리묵이었다. 둘이 먹기에는 너무 많아서 남은 도토리묵은 싸서 베낭에 넣고 간월재에 오르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산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굽이굽이 진 산 능선과 새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들, 산 위에는 구름 그림자들 때문에 얼룩덜룩했다. 기가막힌 풍경이었다.
길가에는 꽃잎을 활짝 피워낸 구절초들이 많이 있었다. 꽃밭을 거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보라빛 꽃을 피운 여우 꼬리털같이 생긴 꽃향유들도 보였다. 이제 단풍이 드려는지 나무들이 알록달록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는데,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계속 길 뿐이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왔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이제는 도착 했겠지? 기대를 품고 안내판을 보았는데 아직 반이나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랬던 기억이 난다.
걷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엄청 길 뿐이었다. 예전에 영양이었던가? 자작나무 숲을 본다고 한참 걸었던 그 길이 생각났다.
평탄한 콘크리트 깔린 길을 걷다가 잘잘한 돌들이 깔린 길들을 걷고 울퉁불퉁 크기가 제각각인 돌들이 깔린 길을 걷다가, 그렇게 한참 걷다가 보면 어느새 종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끔씩 보이는 먼 풍경을 보며 우리가 많이도 올라왔구나 느끼게 된다. 힘이 들다가도 산을 내려다 보면 너무 멋있어서 다시 걷게 되었다.
이젠 진짜 도착했나? 안내판에 다가가 보니 아직이다. 그래도 곧 도착한다니 열심히 다시 걸어 보았다. 총 5.23km의 길, 결코 녹록치가 않았다. 차라리 급경사의 등산 코스인데 짧은 거리라면, 그곳을 갔을 수도 있겠다.
중간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이스께끼 장수가 있어서 초코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었다. 힘들었던 우리에게 달콤한 휴식이 잠시 주어졌따. 거의 다 와서야 쉬어가는 우리.
사진을 찍을 때 외에는 별다르게 쉬지 않고 꼬박 걸은 결과, 1시간 30분 만에 간월재에 도착하게 되었다. 우와 ,정말 멀고도 먼 곳이구나. 마침내 마주하게 되었을 때 아름다워서 여태 힘들게 걸어온 기억들은 잠시 뒷편으로 사라졌다.
하늘과 맞닿은 것 같은 높다란 곳, 넓은 억새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 엄청 불었는데 그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모습이 마치 바다 위 물결이 일렁이는 모습과 비슷했다. 억새 바다라고 불러도 되겠어!
해가 구름 사이에 가려 하늘에서 사라질때면 억새들은 은빛으로 반작였다. 은색빛깔이 도는 겨울 바다처럼 느껴지던 억새 평원, 억새 평원 사이로 나있는 길들을 따라서 걸어갔다.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그보다 더 억새들이 많으니 즐거웠다.
억새들을 누가 이곳에 심어 놓은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어째 이 들판 위에서만 억새들이 이토록 자라났을까?
안내판 문구를 살펴보니 예로부터 이곳은 억새가 만발했다고 한다. 소금장수나 소장수 등이 이곳을 지나갔고, 근처에 살던 사람들은 소를 끌고와서 억새를 베어 지게에 한 짐씩 지고 내려와 지붕을 엮었다고 한다.
간월재 휴개소는 사람들로 장사진이었다. 라면을 먹으려난 것인지 줄을 길게 서 있길래 우리는 휴개소 가는 건 포기하고 경치나 즐기다가 돌아가기로 했다.
바람이 매서워서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휘날렸다. 파아란 하늘을 눈에 담고 하얀 구름도 눈에 담고 억새들도 눈에 담고, 이제 돌아가자!
돌아가는 길도 한참이었다. 산골짜기라서 그런지 해가 금방 저무는가 보다. 산 뒤로 넘어간 해 때문에 거의 그늘져서 갈 때 훨씬 추웠던 것 같다. 우리가 내려가는 길에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돌아갈 때 추워서 어찌할까 그런 걱정이 들었다.
꼬박 1시간 30분 정도 내려가는 길도 멀었다. 풍경은 이리도 아름다운데 이 풍경을 보기 위해 한참 콘크리트 길을 걸어야하니.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억새 보기에 황매산이 나은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