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문경새재에 가보자 가보자, 그리 말만 하고 드디어 가보게 되었다. 우리는 조금 늦은 시간에 문경새재를 찾아가서 주차장 자리가 여유로웠다. 5주차장까지 있는걸 보니 이곳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사랑받는 곳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우리는 문경새재와 가장 가까운 1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갔다. 붉게 물든 단풍 이파리들이 우리를 먼저 반겨 주었다. 아주 새빨갛게 사과처럼 단풍이 물들어 있었다.
사과 축제가 한창이던 문경새재도립공원, 시월 말일까지 축제가 계속된다고 한다. 근처 과수원에서 나온 이들이 빛깔고운 사과들을 잔뜩 팔고 있었다. 사과를 좀 사갈까 싶었는데 걷는데 짐이 될까 싶어서 말았다.
이곳이 새재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혹자는 예로부터 이곳에 억새가 우거져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무척 높고 험했기 때문에 한양으로 가는 이들은 이곳에 모여 있다가 날이 밝아야 고개를 넘곤 했다고 한다.
제1관문을 들어서기 전에 푸릇푸릇한 잔디밭 위에 사과 나무들이 줄지어 있었다. 붉은 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냄새를 맡을 수도 있고 만져 볼 수도 있으니 참 좋았다. 어여쁜 사과들을 보고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왁자지껄 하하호호,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알록달록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들을 사진에 담았다. 가을하면 떠오르는 풍경들이 여럿 있는데 붉게 물든 단풍과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말고도 주렁주렁 매달린 주홍빛 단감과 붉은 사과의 모습들도 생각이 난다.
알록달록 이쁘게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문경새재 도립공원.
그저 새빨갛고 샛노랗게 변한 모습 보다 이렇게 여러 빛깔로 조화롭게 물든 산의 모습이 더 아름다운 것 같다. 나무마다 이파리가 물드는 색이 제각각이니, 산에 오면 이렇게 다양한 단풍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
가는 곳마다 알록달록한 색동옷을 입은 산이 우릴 반겨 주었다. 요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산 능성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오래된 제1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이제 걷는 걸음에 이리저리 치이는 낙엽들이 꽤나 많아졌다.
안으로 들어서니 왼편으로 초가집 지붕들이 보였다. 저기가 어딜까 싶었는데 문경 오픈 세트장이었다. 안내판을 보니 각종 사극 드라마들을 이곳 오픈 세트장에서 꽤나 많이 촬영한 것 같았다.
사극 드라마를 꽤 즐겨 보았던터라 우리는 세트장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들어서자마자 어느 한옥 담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모과들이 보였다. 이야, 모과나무다! 담벼락 아래에는 떨어진 모과들이 뒹굴고 있었다.
이쁘장한 모과는 하나 주워다가 차에 두어 방향제로 쓰기로 했다.
멀리 보이는 뾰족한 산은 무슨 산일까나? 오픈 세트장을 걸어다니는 내내 보이던 산봉우리. 우뚝 솟은 산봉우리 아래 조선시대 마을이 펼쳐진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복을 입고 왔어야했나?
걸어다니는 내내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포자락 휘날리며 선비가 지나갈 것만 같았고, 지게에 짐을 진 하얀 옷을 입은 이들이 지나갈 것 같았다. 거리마다 왠지 익숙해 보이는 것은 아마도 드라마에서 많이 보았던 탓이겠지?
문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정갈한 담벼락 너머에 있던 붉은 단풍나무의 모습이다. 새빨간 빛깔이 아주 유혹적이었다. 가을을 떠올리면 자동반사적으로 생각나는 붉은 빛이었다.
잘 다져진 흙길 위를 걷다가 조선시대 궁궐이나 관사 같은 세트장에 다가서게 되었다.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곳이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얼마전까지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며 보았던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덕임이가 궁을 떠나던 장면에 나왔던 곳인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서 예전에 보았던 드라마의 여러 장면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 시절 의복을 입은 사람들 몇명만 여기 있으면 정말 조선시대로 돌아간 기분이 들 수도 있겠다. 예전부터 언젠가 한 번 사극 드라마 엑스트라를 해보고 싶군 하고 생각했었는데 세트장에 와보니 그런 생각이 더 들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는 글 적힌 종이가 나무판에 붙어 있었다.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니, 옛날에 태어났으면 나도 까막눈이었겠다. 세종대왕 만만세다.
왠지 드라마 킹덤에서 보았던 것만 같던 풍경. 우리 둘 다 킹덤에서 좀비 떼가 우글거리던 마을 장면을 떠올렸다. 망루 위에 올라 섰더니 작은 계곡이 보였는데, 저기서 좀비들이 마구잡이로 성문을 향해 왔던 것 같았다.
자꾸 생각나는 걸 보니 진짜 드라마에 이곳이 나왔던거 아닐까나?
어둠이 막 내려오고 있을 즈음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없었다. 이 넓은 공간을 우리 둘만 걷고 있으니 조금은 스산했다. 분명 사람 사는 마을 같은데 아무도 없으니 유령 도시를 걷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다.
멀리 보이는 광화문 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드라마에서 궁 출입하는 장면을 찍을 때 이곳을 많이 활용했겠구나! 안으로 들어가보니 또 어디선가 보았음직한 건물 구조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옛 궁정의복을 입고 슥슥 지나다니는 상상을 해보았다.
이제 눈앞에 뭐가 낀 것처럼 세상이 어두워졌다. 더 어두워지면 왠지 들짐승이 훅 튀어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빠른 걸음으로 제1관문을 지나오니 불이 훤하게 켜져 있었다.
사과를 팔던 천막들은 이제 다 폐장을 했거나 철수 중이었다. 문경새재 밑 가게들도 이제 장사를 마무리하고 청소 중인 곳들이 많았다. 이렇게 하루가 가는구나, 우리도 서둘러 차에 올라 어두컴컴한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