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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천 화인산림욕장 붉은 메타쉐콰이어 숲
    우리나라 방방곡곡/충청도 2022. 11. 1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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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만에 가을비가 우수수 내렸다.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난 뒤, 하늘에 구름이 꽉 끼어있던 날에 화인산림욕장을 찾았다. 가을, 붉게 물든 메타쉐콰이어 숲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옥천에 위치한 화인산림욕장. 옥천이라는 곳을 이번에 처음 가보게 되었다. 대한민국에 아직 우리가 가보지 못한 곳들이 산더미 같이 많다는 사실에 즐거워진다.




    화인산림욕장은 한 개인이 사유지에 아름다운 숲을 일궈낸 곳으로, 국내 최대 메타쉐콰이어 숲으로 유명했다.

    숲을 가꾸신 할아버지께서 매표소에 계셨다. 우리 둘에게 보기 참 좋은 커플이라며 덕담을 해주셨다. 성인 기준 입장료 3천원을 내고서 숲 안으로 들어섰다.




    하늘로 길게 쭉쭉 뻗은 메타쉐콰이어 나무들. 야자매트가 깔린 길 양 옆으로 높다란 기둥처럼 솟아 오른 나무들이 일제히 우리를 환영하는 것 같았다. 지도에 이 길목 위에 조그만한 글씨로 '메타쉐콰이어 개선문'이라 적혀 있었다.  




    메타쉐콰이어 나무가 끝없이 이어진 숲, 금방이라도 토토로가 튀어 나올 듯한 그런 신비롭고 몽환적인 숲이었다. 이파리에 달린 붉은 이파리들이 모여 세상이 붉게 보였다. 불어오는 바람 따라서 작은 이파리들은 조용히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땅 위에는 흩어진 메타쉐콰이어 붉은 이파리들로 가득했다. 마치 깃털처럼 생긴 작은 이파리들이 모이고 모여서 온 땅이 붉게 보였다. 단순히 붉다고 하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싱그러운 당근색 같기도 했고 잘 익은 레드 오렌지 빛깔 같기도 했다.




    메타쉐콰이어 개선문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진행방향은 왼쪽이었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는 오른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한동안 메타쉐콰이어 숲이 계속 이어졌다.




    숲을 거닐다가 귀여운 청설모도 만나게 되었다. 하늘에서 무언가가 자꾸만 떨어져서 보니 메타쉐콰이어 이파리들이었다. 왜 이렇게 비처럼 우수수 쏟아질까 싶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는데, 청설모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산을 다니며 다람쥐는 많이 보았어도 청설모는 참 오랫만이었다. 이 나무 저 나무를 열심히도 뛰어 다니는데 나무가 너무 높이 솟아 있어서 보는 내가 다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청설모는 걱정이 무색하게 빠른 몸짓으로 자유롭게 나무를 쏘다녔다.




    숲 아래에는 파릇파릇한 고사리들이 많았다. 새파란 고사리 위에 떨어진 메타쉐콰이어 이파리들은 유독 더 붉게 보였다.




    쭉쭉 뻗어 오른 메타쉐콰이어 나무는 꼭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나무가 어찌 이리도 곧고 높게 솟아 오를 수 있는 것인지, 보면서도 잘 믿기지가 않았다. 온통 붉게 물든 무협 영화 속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았다.




    중국의 어느 숲에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서 화석으로만 볼 수 있었다는 메타쉐콰이어 나무. 은행나무와 비슷하게 인간이 심고 가꾸지 않으면 멸종 될 수도 있는 나무라고 들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고 느낄만한 나무였다.




    동네 공원에 길을 따라 한 그루씩 서 있는 모습은 많이 보았는데, 이렇게 숲을 이룬 모습은 처음인 것 같았다. 담양의 메타쉐콰이어 길을 걸을 때도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었다. 아주 깊은 숲 속, 숨겨져 있었던 비밀의 숲을 거니는 느낌이었다.




    가는 길에 벤치가 있어서 잠깐 메타쉐콰이어 나무들을 보며 쉬어가기로 했다. 가방 안에 담아 온 텀블러에 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빼빼로를 꺼내 먹었다. 하늘을 바라보면 메타쉐콰이어 가지들이 춤을 추듯 흔들렸다.




    땅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몇몇 귀여운 이파리들은 주워서 핸드폰 뒷 면에 껴두었다. 오늘을 추억할 당근색 메타쉐콰이어 이파리, 집에 가져가서 일기장 사이에 끼워두어야겠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메타쉐콰이어 숲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소나무 숲이 나오기도 하고 잣나무 숲, 낙엽송, 참나무 숲이 이어 나왔다. 나무들마다 풍기는 향기가 다르고 바닥에 떨어진 이파리들의 모습도 달랐다. 그 다름을 느껴가며 걷는 길이 좋았다.




    우리는 숲에 가득한 이끼들을 살펴 보기도 했다. 자세히 바라보면 그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이끼들이 다 같은 이끼들이 아닌가 보다. 나무 기둥에 찰싹 붙어 있는 이끼들을 만져보면 아주 부드럽고 촉촉했다.


     



    거의 정상에 다다를 때면 걷는 길에 참나무 이파리들이 가득했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갈색 이파리들 사이에는 작은 도토리들이 숨어 있었다. 이파리를 뒤적뒤적이다 보면 도토리들이 아주 많았다.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귀여운 가을 열매였다.




    정상에 올라서는 종을 쳤다. 매표를 하며 받은 지도에는 종을 세번 치라고 적혀 있었다. 하나는 나를 위해, 하나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또 하나는 타인을 위해. 징-징-징- 종을 세 번 울리고서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에도 메타쉐콰이어 숲이 이어졌다. 오르는 길도 내려가는 길도 황홀하기 그지 없었다. 가끔씩 하늘을 볼 때마다 기다란 나무가 바람따라 흔들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옛사람들이 크나큰 나무들을 신성하게 여긴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메타쉐콰이어 숲을 지나며 코 끝을 찌르는 나무 향기가 아주 좋았다. 메타쉐콰이어 나무에서는 피톤치드가 아주 강하게 흘러 나온다고 들었는데, 이 향기가 바로 피톤치드인걸까? 숲을 걷는데 고질적인 비염에 시달리던 나였지만 양쪽 코가 뻥 뚫려서 아주 상쾌했다.




    자연과 함께 살면, 숲에 살면 있던 병도 없어질 것 같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도 도시적인 곳에서 살고 있었다. 숲을 보려면 멀리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고, 자연을 느끼려면 시간을 내서 노력해야만 한다.

    언젠가 자연을 벗삼아 살게 될 날이 오겠지.




    길가에 삼각대를 세워 놓고서 기념 사진을 남겼다. 쭉쭉 뻗은 메타쉐콰이어 나무들이 우리 둘의 사랑을 축복해 주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고운 숲에서라면 누구든 미움도 갈등도 다 사라지고 사랑만 남을 것 같다.




    숲을 둘러보고 다시 매표소로 왔다. 이 숲을 가꾸신 할아버지께서 표고버섯도 팔고 계시길래 갈 때 하나 사가고 싶어서였다. 표고버섯을 사면서 할아버지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이 숲을 언제부터 가꾸게 되었는지, 할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셨는지, 이 숲을 가꾼 이야기들...




    그러다가 할아버지의 책을 사게 되었다. 우리 둘의 이름을 물어보시더니 책 맨 앞면에 직접 싸인을 해주셨다. 할아버지께서 숲을 가꾸기 시작한 것이 32살때였다고 하시니, 우연찮게도 내 나이와 같았다.

    나도 지금 무엇이든 시작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용기를 얻고, 이렇게 멋진 숲을 개방해주신 할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으로 산림욕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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