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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카파도키아 여행 피존벨리와 우치히사르 성, 악마의 눈 나자르 본주(Nazar Boncuğu)지구별 여행자/튀르키예 (터키) 2023. 1. 2. 21:53728x90반응형
지난포스팅
카파도키아의 여름은 더웠다. 우리나라처럼 습하고 녹아 내릴듯이 더운 것이 아니라 바짝바짝 장작 마르듯이 더웠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태양볕이 아주 따가워서 눈을 뜨지 못할 지경.
더위에 지친 우리는 오전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서 쉬면서 샤워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다시 나섰다.
우치히사르 성을 찾아가는 길에 피존벨리에 들렀다. 도대체 이름이 왜 피존벨리일까 궁금했었는데 가보니 말 그대로였다. 비둘기가 떼를 지어 모여 사는 계곡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었다. 언덕을 따라 작은 집들이 줄지어 있었고 우뚝 솟은 우치히사르 성이 멀리 보였다.
피존 벨리에 들어설 때 나무 위에 눈처럼 생긴 장식품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바람에 부대끼는 모습이 으스스해보였다.
우리말로 악마의 눈이라고 부르는 이 파란 장식품은 터키에서는 나자르 본주(Nazar Boncuğu)라고 부른다. 나자르는 '눈'이라는 아랍어 단어에서 유래했고 본주는 터키어로 구슬이란 뜻이다.
바깥쪽은 파란색 유리로 만들어지고 안쪽은 흰색, 하늘색, 검은색 등으로 채워져 있는 모습이 '눈'으로 보인다. 고대 아나톨리아 지방 사람들은 불운을 쫓기 위해 눈 모양의 구슬을 꿰어 착용하거나 집안 곳곳에 걸어 놓았다고 전해진다. 그 전통이 이곳 터키에 쭉 이어진 것이다.
푸른 하늘 위에서 펄럭이는 눈들을 보고 있으니 정말이지 불운이라는 녀석이 무서워서 휙 달아날 것 같았다. 불행을 막고자 저런 조그만 유리 조각에 의지해야 했던 옛사람들의 고달픈 삶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가 지금 보기에 바람에 흔들리는 저 파란 조각들은 나무에 달린 꽃들처럼 이국적이고 아름다워 보일 뿐이다.
멀리 우치히사르 성이 그림처럼 보였다. 파란 하늘에 색칠을 해놓은 것처럼 말이다. 하늘이 너무 새파래서 도화지 같아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우리가 서있는 절벽 앞으로는 울퉁불퉁한 암석들이 저마다 솟아올라 있었다. 낯설어서 그런지 자꾸만 눈이 가는 기이한 풍경들이었다.
길쭉한 통 안에 물이 담겨 있었는데 비둘기들이 와서 홀짝홀짝 물을 마시고 갔다. 비둘기들을 위해 이렇게 물을 담아 놓은 것이구나, 그리고 고개를 돌려 협곡 쪽으로 내려갔는데 엄청난 비둘기 떼를 만났다.
카파도키아에 살던 이들는 오래 전부터 비둘기를 키워왔다. 사람들은 이 황량하고 척박한 땅에서 비둘기들의 똥을 비료로 삼아 포도 같은 작물들을 길렀다. 고기가 부족했으니 비둘기들을 키워서 먹기도 하고 통신 수단으로 쓰기도 했다. 비둘기들의 알과 똥은 카파도키아에 널려있는 성화를 그리고 보존하는데 쓰이기도 했다.
비둘기들은 여러모로 인간에게 유용했기 때문에 이렇게 보살핌을 받고 번성한 것이었다.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비둘기 떼를 바라 보았다. 지금은 성화를 그리지도 않고 좋은 비료도 나오고 핸드폰도 생겼으니 비둘기가 설 자리는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를 이어 이 자리에서 살아온 비둘기들, 계속해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조그만 기념품 가게에서는 이런저런 물건들을 잔뜩 팔고 있었다. 여태 보았던 다른 상점들 보다 가격이 저렴한 것 같았다. 우치히사르 성과 피존 벨리를 담은 그림은 정말 탐이 났다.
아래로 내려와서 더 가까이 협곡을 바라 보았다. 커다란 산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눈앞의 협곡을 뒤덮어가고 있었다. 협곡 아래에는 푸릇푸릇한 나무들이 꽤나 많이 자라나고 있었다. 아주 오래되어 보이던 아름다운 올리브 나무가 기억에 남는다. 이처럼 나무들이 잘 자라나는 것은 비둘기 똥 덕분인가?
절벽 위에 올라 섰더니 어디선가 바람이 설렁설렁 불어왔다. 양 팔을 벌리고 서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껴보았다. 하늘 위를 날으는 새가 된 기분이었다. 날아 오를 수 있다면 저 파란 하늘을 향해 뛰어들고 싶었다.
때마침 비둘기들이 떼를 지어 하늘을 날아다녔다. 내가 새라면 저 멀리 보이는 우치히사르 성에도 금방 닿을텐데. 카파도키아의 여름은 무척 더웠지만, 그늘에 서서 바람을 느낄 때 만큼은 순간 더위를 훅 잊어버렸다.
우리가 갈 우치히사르 성을 이렇게 멀리서 먼저 조망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저 꼭대기까지 정말 걸어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설사 오르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멋진 모습을 멀리서라도 보았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저 울퉁불퉁한 바위 틈바구니에서 사람들이 살아갔고 비둘기도 살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짙어져가는 그림자와 노릇거리는 햇살을 보며 이제 얼른 우치히사르 성에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있으면 해가 질 것 같았다.
어느새 저물어가는 해가 하늘 아래 내려와 있었다. 우치히사르 성에 오르면 멋진 노을이 우리를 반겨줄 것 같아 들뜬 기분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반응형'지구별 여행자 > 튀르키예 (터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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