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 협곡을 지나 알 카즈네를 보고난 뒤, 우린 이어진 길을 따라 좀 더 걸어보기로 했다. 알 카즈네를 지나면 오래된 원형 극장과 왕가의 무덤군을 볼 수 있었다.
알 카즈네 뒷편으로 난 협곡 사이의 흙길을 따라 걸어갔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우리의 트레킹, 뜨거운 햇살이 스며들기 전이라 공기가 선선해 걷기에 딱이었다. 그리고 호객꾼이나 상인, 관광객들이 적어 주변 풍경들을 조용히 둘러볼 수 있었다.
줄줄이 펼쳐진 베두인들의 노점들을 구경하며 길을 걸었다. 우린 그중 한곳에 들러 다양한 물건들을 살펴 보았다.
오랜 시간 뒤, 우리가 걸었던 이 길을 떠올리게 할만한 기념품은 과연 어떤 것일까?
눈에 들어온 기념품이 하나 있었다. 대롱대롱 기다란 끈에 낙타들이 매달려 있는 모빌 같은 장식품이었다. 베두인 왈, 색색깔 낙타 장식은 피스타치오 잎으로 만들었다고.
눈에 들어온 하나를 사와서 우리 집 벽에 매달아 두었다.
기념품을 사고 예기치 않게 요르단 동전들이 생겨서 구경할 수 있었다. 동전에 아랍어가 새겨져 있어서 신기했다.
우리가 걷는 길을 보니 아직도 아침 햇살이 닿지 않은 상태였다. 해가 아직 뜨지 않은건가? 베두인들은 나귀를 타고 바삐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줄에 매여있는 나귀들이 보였다.
페트라에서 알 카즈네와 더불어 꼭 보아야 할 알 데이르(수도원). 알 데이르까지는 아주 먼 길이라, 종종 사람들은 그곳까지 베두인들의 나귀를 타고 간다고도 들었다.
커다란 장밋빛 암벽 너머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제 조금 더 있으면 우리가 걷는 길에도 뜨거운 햇볕이 내려 앉겠구나! 장밋빛 바위 아래에는 장밋빛 모래알들이 깔려 있었는데 그 색깔이 참으로 고왔다.
페트라 이곳저곳을 거닐며 많이 보았던 분홍색 꽃, 이름을 모르겠는데 붉은 빛깔의 암석과 잘 어울리는 화사한 꽃이었다. 이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나는 것을 보니 생명력이 강한 친구인 것 같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원형극장이 나타났다. 하늘 위로 떠오른 해가 극장을 비추고 있었다.
아름답구나!
아주 오래 전, 우리가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 속 어디에선가 극장은 붐비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을 것이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사라지고, 이젠 빛바랜 극장만 남았다.
원형 극장의 관중석은 알 카즈네처럼 돌을 깎아 내어 조각하듯이 만들었고 주변 기둥과 벽은 돌을 가져와서 쌓아 만든 것 같았다.
발에 밟히는 장밋빛 모래알들과 우릴 감싸고 있는 바위들을 보니 사람들이 왜 페트라를 로즈 시티(Rose City)라 불렀는지 알 것 같더라.
돌로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서 위로 올라갔다. 계단 위에 올라 왼편으로 걸어가면 왕가의 무덤군에 닿을 수 있었다. 커다란 암산 아래 오래 전 나바테아 인들이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들이 여럿 보였다.
하얀 파도가 치는 것 같던, 물결무늬가 참 아름답던 장밋빛 바위 위에 올라섰다. 그 위에 올라서니 거대한 건축물이 하나 보였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이정도 규모면 꽤 지위가 높았던 이의 무덤이 아니었을라나? 알 카즈네 못지 않게 멋있었다. 그 밑으로는 천막들이 즐비했고 베두인들이 갖가지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왕가의 무덤을 지나서 직진해서 걸어가면 알 굽타 트레일(Al Kubtha Trail)이 이어졌다. 힘겹게 트레일을 따라 걷다가 그 끝에 닿으면 알 카즈네를 조망할 수 있는 멋진 절벽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알 굽타 트레일을 걸었다... 정말 엄청나게 걸었다.)
왕가의 무덤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무덤이 하나 있었는데 형형 색색 빛깔의 우주가 담긴 것 같던 거대한 절벽 위에 조각을 해서 만든 무덤이었다.
이 무덤이 참 아름다워서 우린 한참 이곳에 있었다. 주위에 흩어진 돌들을 주워 모아 보기도 했다. 절벽 위로 보이는 층층이 쌓인 무늬들과 작은 돌맹이들을 보니 오래된 시간이 느껴졌다. 그 옛날 나바테아 인들은 이 절벽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앞에 서있던 우리들의 시간은 찰나에 불과할텐데, 더 소중이 하루하루를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