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여수에 여행을 온 이유, 향일암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요새 열심히 국립공원 스탬프 투어를 하고 있다. 섬바다 스탬프 5번째에 향일암이 있어서, 사실 도장을 찍으려고 향일암에 왔다.
보통은 트레킹 시작점에 있는 탐방 안내센터에 도장 찍는 곳이 있는데, 향일암은 좀 쌩뚱맞은 곳에 스템프가 있었다. 도장 찍는 곳에서 곧장 향일암으로 갈 수 없는 구조라서 도장만 찍고 나서 다시 차에 올라서 향일암 공영 주차장으로 가야했다.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근처 이디야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테이크 아웃해서 안내판 따라 올라갔다.
처음에는 여기가 향일암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고 이곳은 일출 광장이었다. 다들 일출 광장에서 발길을 멈춘채 '어디가 향일암이야?'라고 이야기했는데 우리도 그러했다. 일출 광장에서 좀 더 올라가야 향일암이었다.
그래도 일출광장에 온 김에 경치나 구경하려고 나무 계단길 따라서 올라가 정자에 가보았다. 정자 위에 올라가니 바다가 시원하게 보여서 상쾌하고 좋았다.
우린 또 근처 김밥집에서 먹을거리들을 사와서 여기 정자에 앉아 푸른 수평선을 바라보며 냠냠 점심식사를 했다. 좋은 경치보면서 먹으니 꿀맛 같았던 김밥.
향일암으로 올라가는 길에 다시 들어섰다. 길 양쪽으로는 갓김치를 파는 가게들이 쭉 이어졌다. 아주머니들이 맛보라며 갓김치를 쥐어 주시는데, 집집마다 갓김치 맛이 다 달랐다. 갓김치를 계속 연이어 먹다가 우리 입맛에 딱 맞는 갓김치를 발견하고 내려오는 길에 사오자고 결의했다.
돌계단에 들어서면 향일암 가는 길의 시작이다. 귀여운 부처상이 계단마다 놓여 있었다. 하나는 눈을 가리고 있고, 하나는 입을 가리고 있고, 또 다른 하나는 귀를 가리고 있었다.
돌계단을 지나서 걷다가 보면 거북머리가 보인다. 섬의 돌출된 부분이 거북이 머리모양 같다고 해서 거북머리라고 부르나 보다. 아까 우리가 있었던 일출 광장이 한눈에 보였다.
향일암이 왜 향일암인가 하니, 해를 향하고 있어서 향일암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일출 명소로 유명해 해돋이 행사때는 이곳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가득 찬다고 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하니, 그 역사가 꽤나 오래되었다. 거북머리를 전망할 수 있는 데크에는 해와 거북이가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향일암은 동백꽃으로 이름난 명소라고도 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오래된 동백나무에 주렁주렁 동백나무 꽃송이들이 매달려 있었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들을 보니 곧 있으면 붉은 꽃들이 나무를 다 채우겠구나 싶었다.
높고 가파른 암벽 사이를 지났다. 해탈문이라 불리는 이곳, 암벽 사이를 지나갈 때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서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신비스럽고도 경건해지는 기분으로 향일암을 향해 걸어갔다.
암벽을 지나고 바다를 바라보며 주황색 철제 난간 계단을 올라가면 향일암에 도착이다. 대웅전은 끝없어 보이는 푸른 바다를 마주보며 있었다.
대웅전 처마에는 거북이가 자리잡고 있었다. 거북이 뿐만 아니라 토끼며 닭이며 여러 동물들의 형상이 보였다.
대웅전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수령이 500년이 넘었다는 팽나무가 한그루 있었고, 그 옆으로 앉아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 잠시 앉아 커피를 마시고 책도 보고 글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와중에 앞에 커다란 나무 위로 초록색 생명체가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동박새였다. 귀여운 동박새가 꽃에 파묻혀서 정신 없이 꿀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털이 쭈뼛쭈뼛 솟은 직박구리까지 인사를 왔다.
대웅전 위쪽으로 올라가면 해수관음상을 볼 수 있었다. 커다란 바위 아래 좁은 길을 따라 걷다가 보면 또 다시 바다가 나타났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던 관음상도 보였다.
얼마 전에 다녀왔던 보리암의 관음상이 떠올랐다. 그곳보다야 규모는 작았지만, 더 높은 곳에 올라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원효대사가 좌선했다는 넙적한 바위도 만났는데,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근데 바위가 정말 반질반질하고 평평한 것이 누구라도 그 위에 앉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해수관음상을 보고 반대편 내려가는 길로 내려왔다.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나뉘어져 있었다. 내려가는 길에 아까 실컷 보았던 거북머리를 또 마주치게 되었다. 향일암은 왠지 거북이로 기억될 것 같은 느낌이다.
다 내려와서는 까먹지 않고 갓김치 파는 가게에 들렀다. 아까 올라오며 맛을 보았던 곳들 중에 제일 입맛에 맞았던 곳에 왔다. 갓김치 또 한 번 맛보고 포장해달라고 해서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 덩실덩실 들고 주차장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