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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리랑카 여행 준비 중국 동방항공 상해 경유 티켓 구입, 스리랑카 역사와 가볼만한 곳들
    아시아 여행기/스리랑카 2023. 10. 12.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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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권 발권 & 스리랑카 알아보기

     

    여행을 떠나기 전 그 나라에 대해서 많이 사전 조사나 공부를 해가는 편이다. 많이 아는 만큼 더 보이고 느끼는 것도 많기 때문에 그렇다. '스리랑카'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다소 낯선 곳이었다. 떠오르는 것은 홍차, 혹은 인도의 눈물이라는 수식어 정도?

    ​그런데 언제였던가 TV 어떤 방송에서 나온 스리랑카의 '시기리야'를 보고 홀딱 반해버렸다. 그밖에도 우리가 전혀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자연의 모습들, 신비로운 유적과 아름다운 기찻길 등을 보고 '스리랑카는 정말 매력적인 곳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 가봐야지 싶던 나라였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추석 즈음에 떠나는 항공권을 알아보고 있었다. 가고 싶었던 나라들을 차례차례 알아보는데 하나같이 모두 비행기 표가 무척 비쌌다.

    ​우나의 여행 신조 '가고 싶은 곳에 먼저 가자'였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돈을 하늘에 흩뿌리면서 어딘가를 간다는 건 찜찜해서 다음으로 미루기로. 그러고 어딜 가야할까 고민하다가 번득 스리랑카가 떠올랐다.

    오, 추석인 걸 감안해도 항공권 가격이 나름 합리적이었다. 물론 중국을 한 번 경유했다가 콜롬보로 가는 일정이었지만, 우리가 가고싶은 날짜에는 직항이 없으니 별 수 없었다. 아이슬란드 다녀오고 나서 절대 중국 경유는 안하겠다고 다짐했건만, 막상 다른 대체안이 없다보니 결국 중국 경유로 티켓팅을 하게 되었네.

     


     

    스리랑카 Sri Lanka

     

    스리랑카는 인도 남쪽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2/3 정도 크기의 섬이다. 열대성 몬순 기후로 연중 덥고 비가 자주 내린다.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는 정부터 차를 재배하고 있는 고산지대, 아름다운 열대 해안까지 다양한 자연과 식생을 마주할 수 있는 나라이다.

    스리랑카는 싱할라, 랑카, 락디바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는데 싱할라는 제외하고는 '섬'이라는 뜻의 단어였다. 싱할라(Sinhala)라는 단어는 산스크리스트어로 사자를 뜻하는 'Sinha'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아랍인들은 스리랑카를 '세렌디브(Serendib)'라고 불렀고 그리스인들은 '시엘렌 디바(Sielen Diva)'라고 불렀다. 그러다 포르투칼 식민지 시절 포르투칼인들은 스리랑카를 '실라오(Ceilao)'라 불렸다. 이후 영국이 스리랑카를 점령하며 섬 이름을 영어식으로 '실론(Ceylon)'이라 정했다.

    이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며 정식 국호를 '스리랑카 민주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정하였다. 스리랑카의 스리(Sri)는 싱할라어의 존칭 접두사이며 찬란한, 아름다운이란 의미를 지닌다. 랑카(Lanka)는 섬을 의미하는데 이 둘을 합하면 '찬란한, 아름다운 섬'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스리랑카 지도와 국기 ( 출처 : 주한 스리랑카 대사관 )

     

    스리랑카에 살고 있는 주요 민족은 싱할라족인데 스리랑카 인구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섬에 살던 토착민과 인도계 이주민이 섞여 싱할라족을 이루었다. 그 다음으로 많은 민족은 타밀족인데, 인도와 가깝다는 특성 때문에 이 섬에는 오래 전부터 인도에서 이주해온 타밀족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또한 영국 식민지 시절, 차 재배를 위해 영국이 인도에 살던 타밀족들을 고산지역에 이주시키기도 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싱할라족과 타밀족간의 갈등으로 스리랑카에 내전이 일어나 나라가 어지러웠었다. 테러가 일어나기도 하고 전쟁 중에 많은 민간인들이 죽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민족간 긴장은 계속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내전은 종결된 상태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두 민족간의 갈등은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스리랑카 섬에 살던 토착민과 이주민이 섞여 싱할라족을 이루었고, 이들은 섬에 왕국을 세워 문명을 이루었다. 지리적으로 인도와 가까웠던 탓에 남인도 지역에 살던 타밀족들은 자주 스리랑카 섬을 침략했다. 싱할라족이 세운 왕국을 무너뜨리고 이들을 지배하기도 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영국이 식민지 경영을 위해 전략적으로 싱할라족과 타밀족간의 갈등을 유도하면서 두 민족의 골은 더 깊어졌고, 종국에는 내전이 일어나기까지 했던 것이다.

     

    국명
    스리랑카 민주 사회주의 공화국
    (Democratic Socialist Republic of Sri Lanka)
    언어
    싱할라어, 타밀어, 영어
    민족
    싱할라족, 타밀족, 무어족 등
    화폐
    스리랑카 루피(LKR)
    * 1루피 = 대략 4원 (23.9 기준)
    수도
    행정수도 : 스리 자야와르데네푸라 코테
    경제수도 : 콜롬보
    시차
    3시간 30분
    전압
    230v
    비자
    필요
    (사전신청 추천 http://www.eta.gov.lk)
    종교
    불교(70%),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스리랑카에서 가볼만한 곳들

     

    콜롬보 Colombo 

    스리랑카의 최대 도시이자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콜롬보. 한국에서 스리랑카로 가려면 콜롬보의 반다라나이케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해서 무조건 들리게 되는 도시이다. 콜롬보라는 도시 이름은 싱할라어로 콜람바 쏘타(Kolaambathota), 망고 나무가 무성한 해안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16세기 이후 제국주의 열강들이 스리랑카에 발을 들였고, 이후 콜롬보는 식민지 경영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된다. 현재까지도 콜롬보는 스리랑카의 최대도시로 남아있다.

     

    시기리야 Sigiriya

    피두랑갈라에서 본 사자바위, 시기리야 유적지 사자 관문의 모습 (출처: Sigiriya Fortress)

    스리랑카 중부 정글 속에 우뚝 솟아있는 화강암 위의 궁전 유적과 그 일대를 시기리야라고 부른다. 시기리야(Sigiriya)는 사자바위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바위 정상을 오르는 길의 관문에 커다란 사자상이 있기 때문이다.

    커다란 바위 위에 궁전이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오래 전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 왕국의 왕 다투세나에게는 카샤파와 목갈라나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장남이었던 카샤파의 어머니는 평민이었으나, 목갈라나의 어머니는 왕족 출신이었다. 때문에 카샤파는 장남이었으나 왕위 계승에 불리한 상황이었다.

    카샤파는 결단을 내린다. 쿠데타를 일으켜서 아버지를 폐위시키고 결국 죽음에 다다르게하며 스스로 왕위에 오른다. 재미난 사실은 카샤파의 아버지인 다투세나 왕도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차남 목갈라나는 인도로 도망치는데, 카샤파는 정통성 있는 동생이 살아있고 언제든 섬에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를 떠너 시기리야로 향했다.

    카샤파는 시기리야 바위 정상에 거대한 궁전을 만들어 지냈다.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위엄을 뽐낼 사자의 문도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불안함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약 20년 후 동생 목갈라나가 시기리야에 쳐들어왔고 동생에게 패배한 카샤파는 자결하고 만다. 이후 왕이된 목갈라나는 원래부터 이 일대에 살고 있던 승려들에게 시기리야를 돌려준다. 이후 시기리야는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19세기 무렵 어느 영국인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시기리야 유적지는 바위 꼭대기의 궁전과 아름다운 프레스코화, 거울벽, 사자 관문으로 유명하다. 또한 시기리야 바위 맞은편에 있는 피두랑갈라(Pidurangala)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이다. 피두랑갈라 바위에 올라서서 바라보는 시기리야 바위와 일출이 특히 유명하다.

     

    캔디 Kandy

    불치사와 캔디호수 (출처 : Sigiriya Fortress)

    스리랑카 중부의 해발 500m에 위치해 있는 캔디는 마지막 왕국이었던 캔디왕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캔디는 아름다운 인공 호수와 왕립 식물원, 부처님의 치아를 모신 불치사가 유명하다. 여름에는 이 사원에서 성대한 페라헤라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캔디는 남부 고원지대로 가는 관문이기도 하다. 캔디에서부터 엘라까지 이어진 기차 구간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누와라 엘리야 Nuwara Eliya

    누와라 엘리야의 차밭과 티 펙토리, 호튼 평원 국립공원 (출처 : Love Sri Lanka)

    '빛의 도시'라는 뜻을 지닌 누와라 엘리야, 스리랑카에서 가장 높은 피두루탈라갈라 산(2,524m) 남쪽 해발 1,800여 미터에 자리잡은 서늘하고 온화한 기후의 도시이다. 고지이기 때문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으나, 영국 식민지 시절 더위에 지친 영국인들이 휴양지로 찾고 거주하기 시작하며 도시가 만들어졌다.

    영국인들은 식민지 경영의 일환으로 스리랑카에 커피나무를 심었으나, 전염병이 돌아 모두 죽고만다. 이후 커피를 대신해서 차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특히 중부 고원지대는 차 재배에 적합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 품질이 좋은 홍차가 생산되었다. 특히 누와라 엘리야는 품질 좋은 홍차가 생산되는 지역으로 이름이 나있다. 누와라 엘리야에는 다양한 티 공장들이 있는데, 홍차가 만들어 지는 과정을 둘러보고 차밭을 거닐거나 홍차를 시음해볼 수 있다.

    누와라 엘리야에서 차로 1시간 가량 걸리는 호튼 평원 국립공원(Horton Plains National Park)을 방문해 왕복 9.5km 정도의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트래킹 중 만날 수 있는 세상의 끝(World's End)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절벽과 베이커 폭포(Baker's Fall)가 유명하다.

     

    하푸탈레 Haputale

    하푸탈레는 누와야 엘리야의 남쪽 고원지대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이다. 하푸탈레의 해발고도는 누와야 엘리야보다 낮은 1,400여 미터 정도이다. 넓게 펼쳐진 차 밭과 고즈넉한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누와야 엘리아나 엘라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 스리랑카에서 차 농장을 운영했던 토마스 립톤이 바라보았다는 아름다운 전망대 립톤 시트(Lipton's Seat)가 유명하다.

     

    엘라 Ella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도에 위치한 엘라(Ella)는 여러 고원 도시들 중에서 가장 큰 도시로, 스리랑카를 찾는 전세계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리틀 아담스 피크(Little Adam's Peak)과 엘라 락(Ella Rock) 하이킹, 나인 아치스 브릿지(Nine Arches Bridge)로 유명하다. 많은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엘라 안에는 다양한 펍, 카페, 식당 그리고 호텔들이 있다.

    나인 아치스 브릿지와 리틀 아담스 피크 (출처 : 위키백과)

    나인 아치스 브릿지는 하늘 위에 놓인 것 같은 독특한 다리 구조물과 아름다운 녹색 풍경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이다. 때맞춰 이곳을 방문하면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선로 위를 걸어볼 수도 있으며 몇몇 이들은 다리 위에 걸터 앉아 사진을 담기도 한다.

    리틀 아담스 피크(Little Adam's Peak)은 스리랑카의 성스러운 산 아담스 피크(Adam's Peak, 싱할라어로는 스리파다 Sri Pada)와 닮은 모습에 '리틀'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아담스 피크가 해발 2,000여 미터에 이르는데 반해, 리틀 아담스 피크의 높이는 1,000여 미터 정도이다. 비교적 쉬운 하이킹 코스로 아름다운 차밭과 깊은 계곡과 폭포 등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갈레 Galle

    갈레 해안의 모습 (출처: A.Savin, WikiCommons)

    스리랑카 남부 도시 중 가장 큰 도시인 갈레(Galle). 갈레는 오래 전부터 페르시아인, 아랍인, 그리스인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교역하던 국제적인 항구였다. 인도양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서 동서의 해상 교역 요충지였다. 오랫동안 무어인(이슬람인)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16세기 포르투갈인들이 갈레를 점령하고 요새를 지어 식민지 경영을 시작했다. 이후 17세기 무렵 네덜란드가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이곳을 지배하며 갈레는 급 성장을 했다가, 영국의 식민지 시절 콜롬보에 밀려 쇠퇴하게 되었다.

    갈레라는 도시의 매력은 유럽과 스리랑카의 뒤섞인 문화가 녹아들어 잘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다. 식민지 시절 만들어진 요새와 옛시가지를 거닐며 그 당시 만들어진 교회와 주택, 박물관 등의 건축물들을 둘러볼 수 있다.

     

    히카두와 Hikkaduwa

    스리랑카 남부 도시 갈레에서 14km정도 떨어진 히카두와, 히카두와에서는 아름다운 산호초들과 다양한 물고기들, 커다란 거북이를 만날 수 있다. 난파선이 가라앉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스쿠버 다이빙을 즐길 수 있고, 스노쿨링을 하며 색색깔의 산호초들을 구경할 수도 있다. 단, 몬순 기간에는 파도가 심하기 때문에 4월~12월 중에 방문해야 스노쿨링과 다이빙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여행 참고용 스리랑카 지도

    출처 : srilanka.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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